
“쿵!”
별안간 신영의 몸이 앞으로 곤두 박혔다. 반사적으로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건만 워낙 충격이 커서 가슴께가 얼얼했다. 정신을 차려 목부터 움직여보니 악 소리가 절로 났다. 늘 다니는 퇴근 길 네거리에서 파란 불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달려오던 뒷 차에 받힌 듯싶었다. 뒷거울에 푸른 소형 택배 트럭 한 대가 꽁무니에 바짝 붙어 서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차에서 뛰어내린 남자가 황급히 다가왔다. 한 손으로 뒷목을 붙든 채 차 유리를 내리자 꾀죄죄한 작업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안을 기웃거리며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어디 다친 데 없어요?”
“목을 다쳤나 봐요. 일단 차를 저 쪽에 붙여주세요.”
푸른 신호등이 켜졌다. 신영은 네거리를 건너 노변에 차를 붙였다. 남자가 그녀 뒤를 따라 노변에 차를 붙이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조심조심 목을 가누며 차를 내려서 다가갔다. 남자가 큰 걸음으로 마주오더니 다짜고짜 고함을 지른다.
“아줌마 그렇게 별안간 서면 어떡해요? 좀 주의하시지 않구요. 차 다 망가졌잖아요.”
바로 몇 분 전, 길 건너에서 주눅이 든 것 같던 양순한 모습은 간 곳 없고 남자의 목소리며 태도가 딴 사람처럼 싹 달라져 있었다.
“아니 아저씨야말로 조심하셔야죠. 내가 서있는데 와서 받아 놓구 왜 그러세요?”
“내가 언제요? 이 아줌마가?”
표변한 남자의 기세에 낭판이 떨어진 신영은 있는 힘을 다해 마주 악을 썼다.
“아저씨, 아무래도 우리끼린 안 되겠네요. 가만 계세요. 난 내 보험사를 부를 테니 아저씨도 아저씨 보험사를 부르시죠. 보험사끼리 해결하라고 해야겠어요.”
“안돼요! 절대루요, 난 보험사는 못 불러요!”
“왜요? 전 분명히 정차 중이었는데 저보고 별안간 섰다면서요? 보험사들이 따져서 금방 해결할 건데 왜 그러세요? 전 불러야겠어요. 거기 꼼짝 말고 기다리세요.”
신영이 와락 전화기를 열자 남자는 당황스러운 듯 180도 태도를 바꿨다.
“보험사 안 된다구요. 지발, 아줌마. 제 얘기 좀 먼저 들어봐요. 저 택배사 취직한지 얼마 안됐는데 주인이 알면 쫓겨나요. 보험사 말고 제가 다 물어드리면 되잖아요.”

남자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사정했다. 막무가내 애원이었다. 방금 시치미를 떼던 사람 같지 않게 마구 통사정을 하는 모습에 신영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오죽 절박하면 멀쩡한 남자가 저럴까 싶었다. 20년 가까이 차를 끌고 출퇴근하며 상대방에게 과실을 덮어씌우려고 안면을 바꾸는 사람들을 더러 봤지만, 그 남자의 하는 양은 그렇게 보기만도 어려웠다. 더구나 시골티를 못 털어버린 듯한 남자의 초췌한 모습에 측은지심까지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신영은 몇 번 다짐을 받은 후 그가 내미는 명함을 받아 쥐었다. 남자는 고맙다며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까맣게 그을은 이마에 조글조글 자리 잡은 주름살로는 마흔 살 중반은 넘었을 것 같은데 겨우 삼십대 후반이다. 그 나이가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 명함 귀퉁이에 제 주민등록번호를 꼭꼭 눌러 적어주면서 자기가 먼저 전화를 걸 테니 절대로 직장에 전화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수 없이 했다.
다음날 정비소에서 알려준 신영의 차 수리비는 자그마치 60만 원이 넘는 액수였다. 신영은 그 남자의 행색으로 보아 병원비는 고사하고 주인 몰래 수리비나마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남자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액수를 듣고 한숨을 내뿜더니 한참 만에 더듬더듬 신세한탄 같은 대답을 했다.
“아줌마. 실은 내가 돈이 없어서요. 홍천서 농사짓다 여기 온지 얼마 안 되거든요. 시골 형님한테 가서 빌려 와야 하는데 매일 일 나가야 하니 다녀올 수도 없어요.... 아직 첫 월급을 못 타서 그러니 아줌마가 먼저 차를 찾으시고 일주일 후 첫 월급 타서 드리면 안 될까요? 지발 그렇게 좀 해주시면 그 은혜 잊지 않을 거여요.”
듣자니 젊은이 사정이 딱했다. 요새는 사기를 이렇게도 치나? 뭔가 찜찜하면서도 속는 셈 치고 들어주기로 했다. 도회지라고 와서 취직하자마자 사고 친 걸로 봐서 운전도 익숙치 못한 것 같은데 왜 하필 택배사에 취직을 했는지. 신영은 이번 달 생활비에서 수리비를 뭉청 빼고 한 푼이 아쉬운데도 자꾸 말려들어가는 자기가 우습기도 했다. 목 부상이 저절로 가라앉아 다행이긴 했다. 일주일이 지나 남자가 말한 바로 그 첫 월급날 밤이 되었다. 그런데 남자는 전화로 또 통사정을 해 왔다.
“아줌마. 나 정말 면목이 없구먼요. 돈이 모자라서요. 저... 그걸 석 달에 나눠 보내드리면 안 될까요? 지발 부탁이구먼요.”
“아니 분명히 오늘 주신대 놓구서요?”
신영은 화가 나서 버럭 언성을 높였다.
“글쎄 그게요 회사 차 외상으로 고친 거 갚고 나니까 이달치 밥값이 모자라서요... 면목 없지만 봐주시는 김에 한번만 지 사정 좀 봐주세요.”
딱 거절을 하고 싶었지만 밥값이 모자란다는 데야... 도리가 없었다. 신영은 또 어물쩡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이튿날 남자는 20만원을 부쳐왔다. 막상 돈을 받아들자 신영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한 달 치 밥값도 모자라는 사람에게 악착같이 수리비를 월부로 받아내는 게 떳떳치 못한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어영부영 한 달이 흘렀다. 또 20만 원이 왔다. 두 번째 돈을 받아 쥔 신영은 더 착잡했다. 실은 처음 20만 원을 받던 그 순간까지도 남자가 노변에 차를 붙이고 딴청을 피우던 기억이 개운치 않게 마음에 남아 있었다. 어려운 사람을 의심의 눈으로만 보았던 것이 미안했다. 전화를 해서 그만 보내랄까? 아냐. 자기의 과실을 돈으로 분명히 지불해봐야 운전 버릇을 고치지. 그런 동정심이 만용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세 번째 약속 날에서 달포가 지나도 남자는 돈을 보내오지 않았다. 그 대신 며칠 후 늦은 밤 또 전화가 걸려왔다.
“저어 제가 좀 급한 사정이 생겨서요 그 돈을 요번 날짜에 못 보내서 죄송하구먼요 몇 달만 연기해줄 수 없을까 하구요...”
지옥이라도 헤매는 것 같은 그 힘없는 음성을 듣는 순간 이 아저씨가 또 사고를 쳤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신영의 뇌리를 스쳤다.
“아저씨 혹시 또 사고치신 거 아녜요?”
남자는 전화통을 든 채 한참을 묵묵부답이었다. 신영이 답답해서 되물었다.
“대답 좀 해 보세요. 정말 또 사고 내신 거 맞죠?”
“그게요.... 내가 초짜라서... 길도 서툴구요. 실은 또 큰 사고를 쳤구먼요. 돈 변통하러 시골 가거든요. 그래서...”
“아이구 아저씨두 조심하시지 않구요. 어디서 또 그러셨어요? 사장님이 알면 큰 일 나잖아요?”
신영은 받을 돈이고 뭐고 남자의 처지가 조바심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벌써 알아버렸어요. 택시한테 걸렸거든요. 곧장 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어버린 걸요.”
“어머 어떡해요? 그럼 거기 그만 두신 거에요? 그런데 무슨... 돈을 보내시긴요? 됐어요. 내 돈 남은 거 그만 두세요.”
“그럼 안 되는데요. 저...”
“아저씨! 처음 저더러 뭐라셨어요. 내가 잘못 했다면서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녀요. 지가 잘못했죠. 우리 사장님이 사고 나면 그럭허는 거라구...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아줌마에게 폐만 끼치구... 제가 죽일 놈이여요.”
“아니 뭐 그런 사장님이 있대요? 하여튼 아저씨 제 돈 마음에 두지 마시고 가세요. 아셨죠?”
그날 밤 가까스로 남자를 달래다시피 해서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데 신영은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그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그녀의 귓전을 맴돌았다.
“돈 벌면 아줌마 돈 갚아야하는데... 나 이제 다른 거 해 볼라구요....”
“아이구 아저씨. 운전 그만 둔 거 잘 생각하셨어요. 제 돈 그만두고 제발 잘 사시기나 하세요!”
고경숙
소설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 1967년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88년 <한국문학>에 <어머니의 천국>으로 등단.<푸른 배낭을 멘 남자>, <새가 된 아이>, <슬픈 청첩장>, <그 여름의 귀환> 등 다수 발표. <여성동아>에 <이 사람을 기른 어머니> 연재.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 중동 현대문화센터 출강. 소설집 <별들의 감옥>(2020). ggs8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