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0) / 표정을 숨겨야 한다 - 서안나의 ‘마스크’
마스크
서안나
얼굴은 실행하는 것이다
나의 세상은 눈동자만 남았지
턱을 지우고 코와 입술과 뺨을 지우면
마스크
내가 확장돼
마스크를 쓰면
세상의 상처가 다 보여
마스크는 나의 의지
모두 아픈데 모두 웃었어
의사가 말했지
실패가 가장 완벽한 치료법이라고
실패한 웃음을
마스크 속에 숨겨둘게
외부를 번역하면 바이러스 맛이 나
마스크 속에
내가 되고 싶은 내가 있어
미소가 부딪쳐
당신이 버린 얼굴이 부딪쳐
마스크는
나에게 집중하는
표정의 기술
나는 표정이 많아
나는 출구가 많아
―『MUNPA』(2020년 봄호)에서

<해설>
마스크 확보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필요한 생활용품이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 상황에 돈을 벌겠다고 빼돌리거나 매점매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내 잇속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뺨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얼굴을 가리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턱, 코, 입굴, 뺨을 지우고 눈동자만 남아서 상대방을 살피는 외계인 같은 우리. 당신 확진자요? 음성이요 양성이요? 신천지요 그냥 교회요? 대구에 갔었나요, 청도에 갔었나요? 한국에서 왔소? 당신 코리언이오? 뭐 이런 세상이 되었나.
대구사람이 말했다. “길에서 마스크 안 한 사람들 보면 짜증부터 치민다”(<중앙일보 3월 5일자 6면)고. 사람은 타인의 표정을 보고 심리상태를 파악하는데 이젠 그럼 안 되는 것이다. 모두 아픈데 모두 웃는 이 모순된 상황이, 의사가 “실패가 가장 완벽한 치료법”이라고 말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이 도대체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나는 표정이 많은데, 그 어떤 표정도 보여줄 수 없다. 나는 출구가 많은데, 지금은 그 모든 출구가 막혀 있다.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타인에게 자신을 ‘실행’하는 것이거늘 그것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비극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