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광규 시인의 “금강산” 발간! 서사시를 통해 들여다보는 북녘 금강산의 면면
[인터뷰] 공광규 시인의 “금강산” 발간! 서사시를 통해 들여다보는 북녘 금강산의 면면
  • 김규용 기자
  • 승인 2020.03.09 17:37
  • 댓글 0
  • 조회수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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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육백 행에 이르는 서사시, 시인과 함께 떠나는 금강산 여행
공광규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천하의 명승 금강산. 수많은 이야기가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깃들어있고, 옛사람들 절경에 매혹되어 붓을 들었다가 표현을 잘못할까 봐 붓을 놓았다는 곳. (후략)”

 

공광규 시인의 서사시 “금강산” 표지

[뉴스페이퍼 = 김규용 기자] 시 ‘담장을 허물다’, ‘소주병’ 등으로 널리 알려진 공광규 시인이 서사시 “금강산”을 통해 독자들을 찾았다. 공광규 시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생태적 삶을 그리며 깊이 있는 내면적 성찰로 다가가는 시 세계를 펼쳐왔다.

직접 다녀온 금강산을 약 일만 행에 가까운 시구들로 표현한 서사시 “금강산”은 총 129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광규 시인은 “노래와 책으로만 배운 금강산, 분단으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곳을 2004년 진달래 필 무렵에 갔다.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절경이었다.”라며 “나중에 공부해보니 금강산은 우리 민족이 외세와 환란에 의해 어려울 때나 어려움을 겪은 후 찾았던 순례지이고 성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예로부터 금강산을 제재로 쓴 시와 유산기(遊山記)들은 많지만, 금강산을 집중해서 일만 행에 가까운 시로 쓴 시인은 공광규 시인이 유일할 것이다. 공광규 시인에 의하면 송강이 ‘관동별곡’에서 금강산을 쓴 부분이 76행 정도이고, 율곡의 ‘풍악행’은 600구 3천 자다. 

특히 이러한 내용을 서사시로 풀어낸 계기를 묻자 공광규 시인은 “서사시를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었다. 시업을 오래 한 시인이라면 서사시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했다.”는 말과 함께 “민족문제를 가장 잘 형상화할 수 있는 소재가 금강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강산에는 많은 시와 산문 등 기록문화와 그림, 설화, 역사, 문화유적에서 식물생태까지 민족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 요소가 많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시적 공간은 금강산이지만, 이를 통해 남북이 하나라는 걸 상기하고 남북 간의 대결이나 갈등을 지양하자는 게 공광규 시인의 주된 생각이다. 우리 땅에서 이른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과 같이 치러진 전쟁은 남북 둘 모두에게 폐허만을 남겼다. 

공광규 시인은 “남북이 갈리면 결국 우리만 손해다. 전쟁을 겪으면서 생산시설이 무너지고 기아가 찾아오기도 한다.”라며 “이러한 사실을 각성하지 않으면 슬픈 역사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설명으로 시집 “금강산”을 창작하게 된 계기를 더욱 구체적으로 밝혔다.

공광규 시인의 서사시 “금강산” [사진 = 김보관 기자]

최근 젊은 세대에서는 금강산을 비롯해 남북문제에 관한 논의가 비교적 줄어들고 있다. 이때, ‘금강산’을 주요 소재로 선택한 공광규 시인은 “항상 이슈여야 하는데, 논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슈를 제기하는 것이다. 다른 문인들이 관심 두지 않기 때문에, 주류 소재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선택했다.”라며 “남북관계 해결 못 한 상태에서 누가 이슈로 제기하지 않으면 남북 모두 어려워지고 후손에게 짐으로, 재앙으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일종의 시대적 책임감으로서 민족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록해두는 일의 중요성을 상기한다.

공광규 시인은 시집의 집필과 출판 의도를 “남북, 북남 대중들의 정서와 정신의 근원이 같음을 금강산을 통해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분단이 오래가면 정서와 정신이 달라진다. 지금 언어가 계속 달라지고 있는 것처럼 관습, 문화도 달라질 것이다. 이대로 서로 경쟁하고 대결하고, 전쟁이라도 하게 되면 전처럼 모두 죽어 나가고 한반도는 지옥으로 변한다. ‘후손들을 지옥에 살게 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 “금강산”을 창작하게 됐다.”는 말로 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했다.

이처럼 이번 시집 “금강산”을 통해 ‘남북, 동족 간 대결 없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자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는 공광규 시인은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니 공동의 정서와 정신을 공유하자. 외세가 버티고 있어서 자주적으로 당장 통일은 못 하지만,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멀어지지는 말자.”고 거듭 강조했다.

공광규 시인의 서사시 “금강산” 추천사 [사진 = 김보관 기자]

또한, 집필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나 변화한 부분도 엿볼 수 있었다. 처음 “금강산”의 129편 시 제목은 봉우리나 바위, 담소, 계곡 이름만으로 지어졌으나 이후 제목만 보고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게 제목을 수식해주는 짧은 문장을 병기하는 방식이 채택됐다. 더불어 연이 없거나 한 연을 여러 행으로 구성되기도 했지만,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한 연이 3행으로 바뀌었다. 전체 5부로 이뤄진 “금강산”의 각 부가 시작될 때마다 맨 앞머리에 주인공이나 해설원의 말을 넣어 여행 경로를 안내하는 방식도 고안됐다. 

공광규 시인은 “서사시 ”금강산“의 원고량이 끝없이 늘어나서 멈추기가 어려웠다. 모든 봉우리와 계곡을 샅샅이 뒤지고 싶었는데,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어느 선에서 절제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하는 한편 “민족의 모든 정기와 기운이 금강산에 집약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는 마음을 전했다.

인터뷰 말미 공광규 시인은 “지금까지는 아마 ‘소주병’ 시인이나 ‘담장을 허물다’ 시인으로 나를 떠올렸을 테지만, 이제는 ‘금강산’ 시인으로 불렸으면 한다. 서사시 ”금강산“을 쓰고 나니, 규모가 더 큰 서사시를 하나 더 쓰고 싶어졌다.”는 바람과 ‘금강산’과 ‘서사시’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공광규 시인과 떠나는 한 편의 여행과 같은 시집 “금강산”을 통해 독자들이 북녘의 아름다운 경관과 여러 비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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