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2) / 운명의 신 - 정원도의 ‘고모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2) / 운명의 신 - 정원도의 ‘고모네’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3.1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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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2) / 운명의 신 - 정원도의 ‘고모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2) / 운명의 신 - 정원도의 ‘고모네’

  고모네 

  
  정원도


  작은고모 시댁은 신서동 저수지 아래
  혼례를 올리자마자 살림을 정리한 고모네
  농토는 무한정 무상으로 준다는 꿈의 북간도로 
  이주해 갔다는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

  한 동네 살던 큰고모 네는
  월남전에 자원해 머나먼 정글을 헤치고 
  베트콩과 싸우다 살아온 고종형이
  목숨 걸고 벌어온 돈으로 
  젊은 혈기에 오토바이나 즐기다가

  밤새 내리던 부슬비에  
  길가에 세워둔 군용트럭에 받힌 후
  가래 끓는 숨 몰아쉬다가 
  어이없게 목숨을 버린 이후로 

  소가 밟아도 꺼지지 않는다던 
  가산은 단숨에 탕진 되고

  고모부 한참 기세등등할 때 얻은 
  소실 고모 댁도
  역전에서 국밥집해서 돈 잘 번다더니 
  기차 경적소리와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부』(실천문학사, 2017)에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2) / 운명의 신 - 정원도의 ‘고모네’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두 고모가 있었다. 작은고모 댁은 화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북간도로 이주하여 소식이 끊겼나 보다. 큰고모의 아들, 즉 화자의 외종이자 고종사촌인데 화자보다 항렬이 높으므로 ‘고종형’이 된다. 형이라고 부르면 되는 그분은 베트남 참전용사였다고 한다. 당시 참전용사는 미군에 준하는 봉급을 받았고 생명수당까지 받았으므로 돈을 꽤 벌 수 있었다. 고종형은 목숨 걸고 벌어온 돈으로 가게나 차릴 것이지 오토바이를 타고 놀다가 사고로 죽었다. 정글을 누비면서 최소한 다섯 번은 죽었다 살아났을 텐데 보슬비로 미끄러워진 도로를 쌩쌩 달리다가 사고가 났다고 한다. 그것도 길가에 세워둔 군용트럭에 받혀서. 고종형을 데려간 ‘운명의 신’을 저승사자라고 할까 염라대왕이라고 할까. 

  운명의 신은 고종형을 데려간 이후에도 큰고모 댁을 떠나지 않았다. 고모부의 소실 고모 댁도 어느 날 종적을 감추었다. 고모부도 영락했으리라. 

  시집 『마부』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시가 많이 나오는데 수많은 사람의 운명에 대한 일리아드적인 기술이라 시집 한 권이 장대한 드라마다. 1960년대, 70년대 대구 반야월과 1980년대, 90년대 포항공단의 이야기를 듬뿍 들을 수 있다. 다들 가난했고, 정이 많았던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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