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7) / 20세기의 큰 비극 - 이채민의 ‘크라코프, 폴란드’
크라코프, 폴란드
이채민
진눈깨비 흩날리는 11월
적막의 무덤 아우슈비츠 철조망 앞에 섰다
홀로코스트, 누구의 목숨이 아닌
우리의 목숨이 찔리고 부서지고
태워져 사라져 버린 곳
훅, 끼쳐오는 죽음의 냄새 속에서
아이를 안은 여인이,
레이스 양산을 든 소녀가,
빨간 샌들을 치켜든 꼬마가,
두 손 맞잡은 쌍둥이 소년이, 걸어 나온다
산등성이만 한 아픔도 견줄 수 없는
철청렁한 신음을 두르고 온다
속죄조차도 용서될 수 없는 역사를 잊으려
온몸 떨고 있는 야젠비크 나무 아래서
고쳐 서보고, 돌아서 보아도
사람인 것이 한없이 미안했다
―『오답으로 출렁이는 저 무성함』(미네르바, 2019)

<해설>
20세기 최대의 비극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독일 나치 정권의 유태인 학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채민 시인은 폴란드 크라코프에 있는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에 가보았나 보다. 제3연에 나오는 시어 홀로코스트(holocaust)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대참사를 가리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 시의 경우는 후자이다. 시인은 크라코프에 있는 철조망 앞에 서서 이곳이 “누구의 목숨이 아닌// 우리의 목숨이 찔리고 부서지고// 태워져 사라져 버린 곳”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인류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인 것이 한없이 미안했다”는 마지막 연도 시대, 인종, 국가 모든 것이 다르지만 그대들은 그때 그렇게 갔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미안하다는 뜻이다. 이런 마음을 불가에서는 측은지심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선심이라고 한다.
집단이 집단에게 가하는 대량학살의 양상은 스탈린 치하 수용소군도에서의 고문과 처형, 폴 포트에 의한 크메르 루즈 대학살, 이디 아민에 의한 우간다 자국민 학살 외에도 칠레와 아르헨티 군사정부의 고문정치, 유고 내전 당시의 코소보 인종청소, IS(이슬람국가)의 자살테러 등 수도 없이 많다.
폴란드 크라코프에서의 참상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엘리 위젤의 수기 『검은 밤』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노동력이 없는 어린애들을 독가스로 죽여 화장해 버리는 참상이 1940년대에 있었다. 전쟁 상황에서는 이런 광기가 통용된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다. 국방력이 전쟁 억제력인데 걱정이 많이 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