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39) / 봄꽃들의 혼례를 축하 - 백성수의 ‘꽃들의 결혼식’
꽃들의 결혼식
백성수
봄바람 날리면 시작되는 꽃들의 결혼식
식장은 봄으로 가득하다
햇빛을 받아 꽃가루에 섞어 뿌리는
그 빛을 받아먹고 꽃잎이 재잘거린다
등나무 줄기 아래 꽃다지 주례사
정장을 한 다래나무 곁에 하얀 면사포 쓴 조팝꽃
홀아비꽃대 멀리서 바라보고 개나리 춤사위에 빠졌다
도도한 양귀비 자태에 미나리아재비 가슴 설레고
등대풀 위 개미 한 마리 방명록에 가지취향 눌러 담고 있다
꽃봉오리 만개하는 수일 동안 제 어미의 뿌리를 질근질근 씹어 먹는
그 순간 꽃들의 이파리가 모두 나비로 변해서
더듬이로 꽃술을 핥으면 온몸에 꽃향기 바람에 날리는
봄바람 멈추면 끝나는 꽃들의 결혼식
―『2020 캘린더/ 더 나은 내일, 희망의 교정』(법무부 교정본부)

<해설>
이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와 신랑, 그리고 주례 선생님, 신부와 신랑의 부모, 하객이 모두 꽃이다. 들판인지 꽃집인지 온갖 봄꽃들이 모여 결혼식을 하고 있다. 시만 읽어도 그 색깔이 얼마나 현란한지, 그 향기가 얼마나 짙은지 어지럽기까지 하다. 어느 봄날의 우리나라 들 풍경을 인간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인 결혼식에 빗대어 그리고 있어서 그런지 ‘축복’과 ‘축하’의 감정으로 가슴이 벅차다.
이 시를 쓴 이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죗값을 치르고 있는 수용자다. 교도소 안에서만 볼 수 있는 문예지 『새길』에 투고하여 선정되었고,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수용자들의 시만으로 일력을 만든 『2020 캘린더』에도 실렸다. 지금은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투옥되기 전에 원예업을 했을까? 수용자들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교도소 내 일터로 가는 것을 ‘출역 나간다’라고 표현하는데 그중에 원예도 있다. 도예, 취사, 제지, 피복, 자동차 정비 등 다양하다. 꽃을 가꾸면 확실히 마음 수양이 된다고 한다. 정성을 기울이면 식물들이 반응을 하기 때문일까. 이렇게 멋진 결혼식을 언어로 치렀으니 마음이 편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시를 쓰면서 백성수 씨는 밝은 내일을 꿈꾸었을 것이다. 출감 이후 화초를 가꾸며 살아갈 분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