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0) / 참아야 했을까 - 이소율의 ‘보폭이 넓은 여자-나혜석’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0) / 참아야 했을까 - 이소율의 ‘보폭이 넓은 여자-나혜석’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3.1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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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0) / 참아야 했을까 - 이소율의 ‘보폭이 넓은 여자-나혜석’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0) / 참아야 했을까 - 이소율의 ‘보폭이 넓은 여자-나혜석’

  보폭이 넓은 여자
  ―나혜석
  
  이소율


  조금만 참지 그랬어요
  그림과 아이들이 있잖아요
  과도기의 선각자로
  여자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었잖아요
  정조는 취미다
  말해놓고
  운명의 줄에 걸려 피멍이 들잖아요

  조금만 참지 그랬어요
  운명의 줄넘기
  너무 높이 너무 멀리 뛰었어요
  여자보다 인간
  어머니보다 예술가로 살고 싶었잖아요

  조금만 참지 그랬어요
  불사르던 불꽃 재가 되어
  아이들 사는 문전을 헤매고 있잖아요
  결국 어머니였잖아요

  ―『익명적 중얼거림』(현대시학, 2018)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0) / 참아야 했을까 - 이소율의 ‘보폭이 넓은 여자-나혜석’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나혜석의 생애는 워낙 기구하여 이 자리에서 다 쓸 수는 없다. 최초의 서양화가, 3ㆍ1운동 때의 5개월 옥고, 변호사 김우영과의 결혼, 일본과 조선의 미술전에서 계속 입상, 세계일주 여행, 네 아이의 엄마, 개인 미술전시회 개최. 여기까지는 승승장구였다. 야수파 화풍을 공부하겠다고 프랑스에 체류했을 때 남편은 독일로 떠났고 천도교 교령 최린이 파리로 여행을 왔다. 파리 시내 안내를 부탁한 최린과의 데이트가 문제였다. 

  결국 이혼을 당했고, 아이들을 볼 수 없었고, 행려병자로 53세의 나이로 죽었다. 넋이 나간 상태로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니자 동네 꼬마들이 따라다니며 미친년이라고 놀려대는 장면은 비극의 극치다. 그 당시 조선 땅에서 나혜석을 응원하고 옹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소율 시인은 비참하게 생의 말년을 보낸 나혜석에게 조금만 참지 그랬냐고 말한다. 억울한 것이 좀 있더라도 그림과 아이들을 위해 참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녀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지만 나혜석은 굴종 대신에 저항을 택한 사람이었다. 「이혼고백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중략) 조선남성들 보시오. 조선의 남성이란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고,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절규였다. 포효였다. 본인 한 사람의 희생이 씨앗이 되어 이 땅 여성의 권익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리를 잡아 나갈 수 있었다. 시인의 동정심은 이해가 가고도 남지만, 한국 근대사의 선각자 나혜석의 역할이 부정되거나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혜석의 ‘넓은 보폭’이 무지몽매한 조선의 가부장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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