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5) / 신화가 된 화가-정근옥의 ‘백년의 신화 1’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5) / 신화가 된 화가-정근옥의 ‘백년의 신화 1’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3.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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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5) / 신화가 된 화가-정근옥의 ‘백년의 신화 1’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5) / 신화가 된 화가-정근옥의 ‘백년의 신화 1’

  백년의 신화 1
  -2016 이중섭전

  정근옥


  서귀포 바닷가에 아이들은 물고기를 만지며 
  슬픔도 모르고 놀고 있다
  캔버스가 없어도 서러움은 없어
  골판지와 은박지 위에
  미친 듯이 그의 붓은 춤추었다
  바다와 산을 닮은 색조, 긴박하게 춤추면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은 
  푸른 하늘 바라보는 게 한 마리를 들고 뛰어놀다가
  순박하게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거리에 선 종려나무 바람에 몹시 흔들리는 날
  달 속에 놀던 까마귀는
  예언의 종소리를 울리며 서산을 넘고 있다
  짙은 포옹의 따스한 입김을 남기고
  아내는 현해탄을 넘어 떠나고
  아이들도 바람에 쫓겨 간 저녁노을처럼 떠나고
  뱃길 가르고 떠나간 
  바다만 쉴 새 없이 철썩거리는데
  자식이 없는 여름은 슬프기만 하다*
  구름 위에 떠다니는 영혼
  백년 신화 뭇별이 되어 찬란히 빛나고 있다

  * 이중섭의 「질하」 시구에서 

  ―『자목련 피는 사월에는』(넓은마루, 2020)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5) / 신화가 된 화가-정근옥의 ‘백년의 신화 1’ [이미지 퍈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렸던 이중섭전의 이름이 ‘백년의 신화’였다. 정말, 100년 만에 그는 신화가 되었다. 살아생전에는 철저하게 가난했고 처절하게 불행했던 화가였지만 사후에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다. 그의 그림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전람회는 연일 만원이었다. 2005년의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열렸던 이중섭전도, 2015년 삼청동 현대화랑에서의 이중섭전에도 가보았는데 그때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정근옥 시인은 이중섭의 생애를 더듬고 있다. 제주도에 가면 이중섭 생가(머물었던 집), 미술관, 이중섭거리가 있다. 제주도 체류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못했지만 그나마 네 식구가 오순도순 가장 행복하게 살았던 기간이었다. 이중섭은 고향이 평안남도 평원이다. 한국전쟁 중에 원산에서 배를 구해 부산으로 피난을 간 이유는 소를 즐겨 그리는 화가를 북한 당국이 그냥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모습, 농부가 들판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리라는 강요에 응할 수 없어 북한을 탈출한 것인데 피난지 부산에서 그는 항구의 하역작업 인부였다. 화구를 살 돈도 없었고 그림을 사주는 사람도 없었다. 두 자식을 굶기는 날이 늘어 영양실조 상태가 되자 제주도로 갔던 것이다. 서귀포 바닷가에서 게도 잡고 조개도 캐고 미역도 따고……. 하지만 쌀 구할 돈은 벌 수 없었다. 

  부산으로 다시 왔지만 가난한 화가는 골판지와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물감을 살 돈, 화판을 살 돈이 있으면 아이들 먹을거리를 사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중섭은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그리움의 몸살을 매일 앓는다. 보다 못한 친구들이 배편을 구해주어 일본에 1주일 다녀온 이후부터 그는 영혼이 마구 헝클어져 여러 곳 정신병원을 전전하고 식음을 전폐한다. 만 3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화가의 불행한 생애는 이 시와 두 번째 시에서 총정리된다. 시인은 이중섭전을 보고 와서 감동에 몸을 떨며 이 시를 썼던 것이리라. “아이들도 바람에 쫓겨 간 저녁노을처럼 떠나고/ 뱃길 가르고 떠나간/ 바다만 쉴 새 없이 철썩거리는데/ 자식이 없는 여름은 슬프기만 하다”를 읽자니 두 눈에 찌르르 뜨거운 전기가 온다. 

  이중섭은 죽기 얼마 전에 자신의 스케치북에 일본에 있는 두 아들을 생각하며 시를 썼다. “능구렁이를 탄 여인이 등천하는 것이다./ (…) / 거기 패잔병들의 위엄을 세우려는 적군이 있다./ (…) / 자식이 없는 여름은 슬프기만 하다”라는 시 「질하(疾夏, 병든 여름)」를 쓸 때의 암담한 심사가 내 영혼을 마구 흔든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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