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7) / 너무 일찍 지다 - 차목련의 ‘목련꽃 이울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7) / 너무 일찍 지다 - 차목련의 ‘목련꽃 이울다’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3.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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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7) / 너무 일찍 지다 - 차목련의 ‘목련꽃 이울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7) / 너무 일찍 지다 - 차목련의 ‘목련꽃 이울다’

  목련꽃 이울다
  
  차목련


  지는 꽃그늘이 눈에 밟혀
  피는 꽃
  눈망울을 보지 못한다

  그대가 나에게로 오실 때에는
  더디게 더디게 오시는 이여

  삭풍의 골짜기 돌고 돌아
  땅에서 하늘까지
  빛으로, 빛으로 손 내밀다
  흔적만 스치듯 떨궈 놓고
  오는 듯 가버린 이여

  찰나에 목메어 놓친 사람이듯
  시든 꽃잎을 주어든다

  피는 꽃 향내보다
  지는 꽃 살내음이 깊다는 것
  너 이울기 전에는 아주 몰랐다

  ―『달섬문학』제14집(달섬문학회,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7) / 너무 일찍 지다 - 차목련의 ‘목련꽃 이울다’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목련은 꽃봉오리가 참 예쁘다. 활짝 피었을 때도 예쁘다. 대부분 흰색 꽃인데 봉오리는 소담하고 꽃은 화사하다. 하지만 꽃이 금방 땅에 떨어지고 색깔이 시커멓게 변한다. 그만 꽃나무 아래가 지저분해진다. 너무 빨리 지기 때문에 목련이 지면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다. 

  차목련 시인은 자신의 이름이어서 그런지 ‘피는 꽃’보다도 ‘지는 꽃그늘’에 더 마음이 쓰인다. ‘그대’라고 부르는 연모의 대상은 사람인가? 꽃인가? 아니면 계절인가? 봄은 그렇게 더디게 오더니만 “흔적만 스치듯 떨궈 놓고/ 오는 듯 가버린 이”다. 서운하고 야속하다. “찰나에 목메어 놓친 사람이듯/ 시든 꽃잎을 주어드”니 그 마음이 또 얼마나 아팠으랴. 그런데 보기와는 달리 목련의 꽃 향내는 별로 나지 않는다. 시인은 목련의 “지는 꽃 살내음이 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목련꽃잎이나 사람 목숨이나 다 짧고 덧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지는 목련꽃에서 살내음을 맡아내는 시인의 혜안이 놀랍다. 

  시인은 목련을 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것을 느낀다. 꽃은 금방 지지만 좋은 시는 오래오래 남으니까. 루쉰의 산문집 제목이 생각난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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