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8) / 의사와 환자 - 문저온의 ‘문진’
문진
문저온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얼마나 오래되셨나요?
전에도 이런 적이 있으셨나요?
증상을 터놓은 이가 있으신가요?
얼마나 아프신가요?
어떨 때 심해지시나요?
그럴 때 어떻게 하시나요?
자주 긴장하시나요?
마지막으로 화를 낸 게 언제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자주 찾아가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무엇이 당신께 힘이 되어 주나요?
이 상태가 지속될 거라고 믿으시나요?
자신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시나요?
제가 당신께 어떤 사람이길 바라시나요?
―『치병소요록』(시인동네, 2019)

<해설>
경남 진주의 한의사 문저온 시인의 첫 시집은 ‘서사시집’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는데 시집의 제목 그대로, 치병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과 꿈이 오롯이 담겨 있다. 또한 42편의 시마다 부제가 두 줄씩 달려 있는데 이 시의 경우 “의사가 환자에게 병에 대하여 물음./ 병은 나보다 정확하다.”이다. 총 15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질문들은 여러분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질문이 진행될수록 점점 이상해진다. 일곱 번째 연부터는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일반적인 질문이 아니라 환자가 된 시인이 의사한테 바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가장 좋아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시를 쓸 때입니다. 자주 찾아가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휴일에는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갑니다. 무엇이 당신께 힘이 되어 주나요? 좋은 시요. 제 시가 실려 있는 문예지요. 이 상태가 지속될 거라고 믿으시나요? 죽는 날까지 해야죠. 환자 얼굴 보다가 죽느니 시 쓰다 죽고 싶어요. 자신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시나요? 한의원 집어치우고 시나 쓰고 싶어요. 제가 당신께 어떤 사람이길 바라시나요? 제 이 영혼의 병을 의사선생님이 알기나 해요? 저를 치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아아, 그렇다. 이규보가 말했던가. 시마(詩魔)에 들리면 약이 없다고. 치료해줄 의사가 없다고. 시가 요즈음 통 안 나옵니다. 날 죽여주세요. 날 잡아 잡수세요. 내 피를 드세요. 드라큘라 씨. 이런 말을 문저온 시인은 피가 뜨거워져서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