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1) / 생자의 옷 - 진영대의 ‘이승의 옷 한 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1) / 생자의 옷 - 진영대의 ‘이승의 옷 한 벌’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3.3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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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1) / 생자의 옷 - 진영대의 ‘이승의 옷 한 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1) / 생자의 옷 - 진영대의 ‘이승의 옷 한 벌’

  이승의 옷 한 벌 
  —故 노명순 시인에게  

  진영대


  생사의 벽이 무명베처럼 
  숭숭 구멍 뚫려
  다른 세상의 소리까지
  다 들릴 것 같은데

  이승의 옷 한 벌
  빳빳하게 찹쌀 풀 먹여가며
  살아가는 것인데 
  풀 먹인 옷으로
  목덜미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며
  깃 세우고 살다 보면
  팔꿈치 삐져나오기도 하는 것인데
  풀기 빠지면
  다시 감물 먹여 입고
  춤을 추며 사는 것인데

  빈 무대 위에
  감물 먹인 옷 훌렁 벗어놓고
  돌아오지 않는다
  생사의 벽이 무대 암막 같아서
  암막을 열면 다시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을 것 같다

  ―『길고양이도 집이 있다』(시와에세이, 2020)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1) / 생자의 옷 - 진영대의 ‘이승의 옷 한 벌’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10년 전인 2010년에 고인이 된 노명순 시인을 생각하며 쓴 시이다. 그녀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노명순 시인은 시극 일인극의 대가였고 타고난 춤꾼이었다. 마임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춤을 곁들인 퍼포먼스를 하면 딱딱한 행사장 분위기가 한껏 고양되었다. 아무개 원로시인 흉내를 내면 행사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문인들 사회에서 그녀는 소중한 존재였다. 

  진영대 시인은 노명순 시인의 옷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인극을 할 때 한복이든 양장이든 꼭 복장을 준비해서 오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내 경우, 어머니와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나서 가장 난감했던 일이 옷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태우기 아까운 옷도 있고 태우기 어려운 옷도 있고 남 주기 거시기한 옷도 있고 멀쩡한 옷도 있고. 

  진 시인이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노 시인이 무대에서 입었던 ‘의상’이었다. “풀 먹인 옷으로/ 목덜미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며/ 깃 세우고 살다 보면/ 팔꿈치 삐져나오기도 하는 것”은 비단 노 시인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는 ‘풀 먹인’ 옷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 옷은 만들기도 어렵고, 입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복 복장을 하고 너울너울 춤을 추던 노 시인의 공연을 나도 본 기억이 난다. 생사의 벽, 저 무대 암막 뒤로 교통사고로 일찍 가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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