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3) / 더불어 살아가기 - 설태수의 ‘우리들의 샹그릴라 117’
우리들의 샹그릴라 117
설태수
빨강 열매들 가지마다 수북한 산수유.
대로변 교회 입구에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 중 열매에 눈길 보내는 사람 없다.
찬바람에 내일은 영하의 날씨란다.
열매는 흔들리지만 빛깔은 흔들리지 않는다.
신도들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교회 다니는가.
습관적인가.
낙오될까봐?
저렇게 예쁜 빛깔로 바람에 의연한데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다니는지.
엄마와 가던 아이가, 예쁘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데
성경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모양.
그렇거나 말거나 빨강 열매들 정말 신났다.
―『우리들의 샹그릴라』(예술가, 2019)

<해설>
샹그릴라는 ‘지상낙원’으로 번역하면 좋을 것이다. 조지프 로크라는 미국의 식물학자가 있었다. 1924년에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나시 족의 근거지 리장을 방문한 뒤 27년간 거주하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이 도시에 관한 글을 기고했는데 제임스 힐턴이 그 글을 보고 소설을 썼으니, 『잃어버린 지평선』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숨겨진 낙원의 이름이 샹그릴라이다. 리장은 지금은 티베트의 불교 성지다. 경치가 아주 맑은 곳이라고 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낙원, 천국, 이상향, 파라다이스 같은 곳에서 살고 싶어한 것일까? 사후세계가 영원하고, 먹을 것이 풍족하기를 바라는 꿈이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들게 했을 것이다. 진시황의 병마용 갱(坑)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고대사회에 순장(殉葬)의 풍습이 널리 퍼지게 했을 것이다. 영생의 꿈은 권력자의 폭력과 관계되는 경우가 많았다.
설태수 시인은 이른 봄에 산수유 열매를 보았나 보다. 대로변 교회 입구에 피어 있는 산수유 빨간 열매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다. 열매는 흔들리지만 빛깔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 시구가 재미있다. 그리고 의문을 가져본다. 사람들은 왜 교회에 가는 것일까 하고. 신앙심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습관적으로? 낙오될까봐? 어떤 이유로 나가든지 간에 남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되는 것이 종교생활 아닌가. 우리 교회만을 섬기고 우리 교회 교인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은 예수님의 말씀과도 안 맞고 기독교 교리와도 안 맞는 것이다. 타인을 위한 배려가 필요한 이때, ‘우리 교회’가 바이러스 전파의 온상이 되면 ‘우리’와 타인이 함께 고통받게 된다.
엄마와 함께 가던 아이가 산수유를 보고 예쁘다고 외친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성경에도 분명히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읽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기독교인이어야 한다고 시인은 대한민국의 몇몇 교회에 대해 이 시를 통해 한마디 했다. 들고 가는 성경이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라고.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