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4) / 애주가의 권주가 - 김순진, ‘열세 가지 복’
열세 가지 복
김순진
술 마시는 자는 복이 있나니
술 따르는 자는 복이 있나니
술안주 만드는 자는 복이 있나니
술안주 먹여주는 자는 복이 있나니
술값 내는 자는 복이 있나니
술 취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2차 쏘는 자는 진실로 복이 있나니
술도 안 마시며 끝까지 함께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노래방 쏘는 자여, 그대는 주님의 진실된 자녀라
그만 먹고 집에 가자는 자는 주님의 목자라
대리운전 부르는 자여 네가 진실로 주님 마음을 아느니
택시 태워 보내주는 자여 천국사람들 마음이 그러할지라
이튿날 해장국 사주는 자여 천국을 예약하리니
온 세상이 너희들 것이니라
酒여, 당신의 은혜와 능력을 믿사옵나이다
―『더듬이 주식회사』(문학공원, 2020)

<해설>
윤동주의 시 「팔복」을 패러디했다고 각주에 써놓기는 했지만 윤동주의 시 자체가 예수의 산상수훈을 패러디한 것이다. 아, 벗들과 저녁식사를 반주를 곁들여서 하고, 2차 호프집에 가서 실컷 마시며 떠들고, 노래방까지 갔던 날이 까마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노래방에서 카수 장석남 시인의 배호 노래를 메들리로 듣던 것이 도대체 몇 년 전이었나!
세상이 역병으로 흉흉하다 보니 이런 시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술이란 것은 마음을 흥분시키고, 그 흥분이 마음을 터놓게 한다. 평소 얄밉게 생각되던 녀석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사랑의 묘약, 바로 술이다. 취흥에 대해 쓴 당나라 때의 시만 모아도 수백 편이 될 것이다. 이백과 두보, 이하의 시에 다 「將進酒」가 있다.
이렇게 좋은 것이 술이지만 알코올 중독자가 적지 않다. 이 사회의 암적 존재가 음주운전자들인데 국회의원 출마자 가운데 87명이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87명 중 몇 명이 당선될까? 국회의원들만 보면 대한민국의 앞날이 암담하다. 술이나 퍼마시고 싶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