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5) / 산불이여 제발! - 윤홍조의 '불탄 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5) / 산불이여 제발! - 윤홍조의 '불탄 산'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4.0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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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5) / 산불이여 제발! - 윤홍조의 ‘불탄 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5) / 산불이여 제발! - 윤홍조의 ‘불탄 산’ 

  불탄 산 

  윤홍조


  저 살비듬, 살비듬……
  눈앞 훤히 생살을 도려낸 상흔 앞에
  벌겋게 벗어 내린 알몸의 치부 앞에
  난 보고도 못 본 듯 그만, 고개 돌리고야 만다

  지금껏, 있는 듯 없는 듯 애써 나를 지켜온
  우직한 내 마음의 지킴이
  울울창창 그 푸르디푸른 말씀의 침묵을
  이 땅의 오랜 대물림 서슬 푸른 기개를
  도대체 누가
  백주창탈하듯 
  확, 
  한순간 불질러버렸나

  저 움푹움푹 살이 파인 만성의 탈모
  민머리 훌러덩, 불탄 산 볼 때마다 
  내가 그만 번지고 번진 불씨
  확, 저질러버린 듯
  쥐구멍, 쥐구멍 숨을 곳만 찾는,
  한낮에도 눈앞이 캄캄한
  이 죄의 나날들!

  ―『푸른 배꼽』(천년의시작,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5) / 산불이여 제발! - 윤홍조의 ‘불탄 산’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산불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이른 봄, 한창 건조한 시기에는 하루에만 해도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산불이 일어난다. 제1연은 산불이 나 태울 것 다 태운 참혹한 광경에 대한 묘사다. 제2연에서는 산불이 나기 전, 울울창창했던 숲의 모습을 그린다. 숲이란 것이 있으면, 으레 거기 있는 것이거니 하면서 별 생각 없이 바라보고 우리는 숲길을 올라간다. 나무 하나하나를 생명체로 인식하고 그것들의 서슬 푸른 기개를 인지했는가? 그냥 무심히 바라보았던 것이 산이요 덤덤히 바라보았던 것이 나무들이었다. 제3연에 가서 시인은 우리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실화도 있고 방화도 있다. 예전에는 산에서 불을 피워 밥을 해먹기도 했었고 종종 담뱃불에 의해 불이 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숲이 울창해진 지금 불은 더 크게 일어나고 더 크게 번진다. 산불이 난 호주의 사진을 보았다. 철조망 앞에서 코알라가 소신공양이라도 한 듯 선 채로 까만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호주는 6개월 이상 산불에 시달렸다. 큰비가 오기 전에는 소방대가 할 일이 없었다. 불을 끄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불길이 마을로 안 내려오게 방비할 뿐 불을 끄겠다고 숲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 바람에 귀여운 코알라와 캥거루 등이 5억 마리 이상 죽었다. 비가 며칠 계속 오자 비로소 진화되었는데 그러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호주를 덮쳤다. 

  시집의 제목도 그렇고 표지 색깔도 그렇고 시인의 자연에 대한 열렬한 옹호의 메시지가 뚜렷하다. 식목일이 내일모레다. 호주에서는 방화범이 8명 구속되었다. 자연발화가 많았지만 방화도 이번에는 유독 잦았다는 얘기다. 인간이 자연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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