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6) / 박경리 소설의 애독자 - 김동호의 ‘주갑이를 아시나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6) / 박경리 소설의 애독자 - 김동호의 ‘주갑이를 아시나요’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4.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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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6) / 박경리 소설의 애독자 - 김동호의 ‘주갑이를 아시나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6) / 박경리 소설의 애독자 - 김동호의 ‘주갑이를 아시나요’

  주갑이를 아시나요

  김동호


  달빛을 탁본하는 거나 주갑이 떠올리는 거나
  한 대목 억장을 풀어 왼 들판을 적시던 이
  마음 둑 아무 때고 허물며 둑 안까지 넘쳐오던

  남루로 가렸어도 잘 바랜 속 백포(白布) 같던
  황량(荒凉)에 운(韻)을 쳐서 풍정 슬몃 실을 줄 알던 
  사랑도 기가 찬 사랑 제멋대로 흔들리던

  영혼의 시장기 달랠 미음 같기나 한
  ‘가장 정이 가는 사람’ 작가가 그랬다던
  내 안에 바람 이는 날엔 그가 철철 그립다

  ―『꽃통곡, 엉엉 붉어라』(달아실, 2020)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6) / 박경리 소설의 애독자 - 김동호의 ‘주갑이를 아시나요‘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주갑이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인물이다. 김동호 시인은 이 소설을 읽다 주갑이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꼈는지 ‘주갑이 독백’을 부제로 한 「철새와 눈물」이라는 시조도 썼다. 『토지』에 나오는 또 다른 인물인 평사리의 젊은이 송관수를 형상화한 「관수의 말」, 조준구의 아들 조병수를 형상화한 「소목장 조병수」, 동학혁명과 의병활동에 뛰어든 목수 윤보를 형상화한 「윤보목수」도 시조집에 실려 있으니 『토지』를 감명 깊게 읽었음에 틀림없다. 

  주갑이는 『토지』의 제1부에 나오는데 타고난 소리꾼으로 아주 순박하고 낙천적이다. 전형적인 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용정에 찾아온 기생 기화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모하게 되지만 그 감정을 마음속에만 간직하고는 강우규 노인을 따라 만주를 떠돌며 독립운동에 참여한다.

  김동호 시인은 가슴에 맺힌 것이 있으면 노래를 한 곡조 뽑으며 시름을 달래는 주갑이라는 인물에 매료되었다. 작가 박경리도 ‘가장 정이 가는 사람’으로 주갑이를 언급했을 정도다. 주갑이는 남을 챙기는 타입이다. 불가에서도 측은지심을 높게 치는데,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덕목이 측은지심일 것이다. 우리는 본성이 타인 “영혼의 시장기 달랠 미음” 같은 것이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다들 자기만 알고 자기만 챙기는지, 시인은 내심 한심하다는 생각에 이 인물을 롤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닐까. 「철새와 눈물」에서는 주갑이의 말, “사람이 저저이 가야 헐 길을 간단가? 철새가 날개 하나로 제 길을 간께로 저 하늘 저 철새들 보면 눈물 절로 흐르덜 않겄소.”를 인용하고 있다. 늘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달래고, 위로하고, 배려하는 인물로 주갑이를 보았음에 틀림없다. 그를 본받고 싶은데 잘 안 되는 모양인가.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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