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8) / 이장의 동창생들 - 김인옥의 ‘동창회’
동창회
김인옥
니 우리 핵교 초매 왔을 때 있잖아요
순뎅이 사나 새끼들 가찹게 앉고 싶어서
을매나 심 자랑 해댔는지
이모 집에서 두 해 다니다 졸업한 나에게
같은 반이었던 이장은 말을 놓지 못한다
니 아직도 혼자잖아 기래 가지고 뭔 장가를 가나
경애야 자가 메루치 만치로 맥새가리 없이 보여도
이 근방 옥시기 밭 몽지리 자 꺼고
얼매 있으면 막국시 집도 차릴 기야
마흔 중반에 혼자 된 이모 딸 경애와 대머리를 두고
이장이 입 방정을 떨자
막국수 집 사장이 될 거라는 노총각
막걸리 사발 단숨에 비우고는
머쓱하게 툭 내뱉는다
자가 무슨 말을 하나
니 이장이면 다나
술이나 마세
딸꾹
불편한 눈빛 스치는 산골 마을회관
열 오른 시골뜨기들
술잔만 만지작거리는 국민학교 동창회
―『문학 에스프리』(2020년 봄호)

<해설>
시골뜨기들의 동창회 자리다. ‘초등학교’가 아니고 ‘국민학교’여야 한다. 이 시의 화자는 여성인데 도시에서 전학 온 아이였다. 얼굴도 희고 예쁘고, 옷도 신발도 달랐으리라. 이 아이한테 시골 소년들이 다 반해버린다. 그 내용이 앞의 두 연을 차지하고 있는데, 정작 하고 싶은 것은 화자의 자화자찬이 아니다. 이장이 된 동창이 마흔 중반에 혼자가 된 화자의 이모의 딸과 동네 알부자인 노총각을 맺어주려고 이래저래 애를 쓰는 것이 이 시의 중심축이다. 노총각은 민망해서 이장한테 대거리를 한다.
시골 동창회에서야 일어날 법한 일이다. 이 모든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 사투리다. 무뚝뚝하지만 그 말에는 인정이 있고 해학이 있다. 강원도 사투리가 이렇게 구수한 것임을 이 시를 통해서 알았다. “딸꾹”이 재미있다. 이장을 하는 이에게 술이나 마시라고 했지만 노총각은 내심 기분이 좋았는지 다소 흥분했는지 딸꾹질이 난다.
우리 시에 부족한 것이 바로 이런 인정미였다. 강원도가 낳은 최고의 문인 김유정 소설의 특징이 인정미와 골계미였다. 김인옥 시인은 등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시를 쓰고 있으니 설악산의 능구렁이 같다. 앞으로 강원도의 소설가 하면 김유정이, 시인 하면 김인옥이 떠오를 수 있도록 흙냄새와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를 썼으면 좋겠다. 고향이 속초인 재호(在豪) 시인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