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3) / 소야 소야 착한 소야 - 이종문의 ‘달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3) / 소야 소야 착한 소야 - 이종문의 ‘달밤’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4.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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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3) / 소야 소야 착한 소야 - 이종문의 ‘달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3) / 소야 소야 착한 소야 - 이종문의 ‘달밤’ 

  달밤 

  이종문


  그 소가 생각난다, 내 어릴 때 먹였던 소
  샐비어 즙을 푼 듯 놀이 타는 강물 위로
  두 뿔을 운전대 삼아, 타고 건너오곤 했던

  큰누나 혼수 마련에 냅다 팔아먹어 버린,
  하지만 이십 리 길을 터벅터벅 걸어와서
  달밤에 대문 밖에서 음모〜 하며 울던 소

  ―『웃지 말라니까 글쎄』(시인동네, 2020)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3) / 소야 소야 착한 소야 - 이종문의 ‘달밤’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경북 영천 태생 이종문 시인 자신의 경험인지 지인의 경험인지는 알 수 없다. 소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다. 이 시조의 화자는 소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강을 건널 때 소의 두 뿔을 운전대 삼아 잡고 건넜던 기억. 영화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서부개척사>인가? <광야천리>(원제는 Red River)인가? 말이나 소가 헤엄을 배웠을 리가 없는데 빠지지 않고 건너는 것이 참 용하다. 소 등에 올라타 뿔을 잡고 강을 건넌다면 기분이 어떨까? 소가 아버지처럼 믿음직스럽고 생명의 은인 같을 것이다.

  두 번째 추억은 팔아버린 소가 집을 찾아온 이야기다. 개가 주인을 찾아서 수십 혹은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온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산 넘고 물 건너 찾아온 기록도 많다. 그런데 소가 이십 리 길을? 정말 그런 경우가 있었다면 그 소와 어떻게 다시 헤어지나, 읽는 이 독자의 가슴이 찢어진다. 소만 울었으랴. 식구들도 울었을 것이다.

  젖도 덜 뗀 핏덩이 강아지를 얻어와 10년째 키우고 있다. 인간에 대한 개의 충성심은 그 자체가 감동적이다. 고양이는 좀 도도하다. 그런데 소는 생김새부터 순하고 행동도 충직하다. 인도사람들이 소를 숭배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동물을 남획하고 학대한다. 미국의 한 의사는 아프리카 맹수 사냥이 취미여서 해마다 휴가철에 아프리카로 가서 야생동물 수십 마리를 죽이고 온다. 죽은 동물 옆에서 총을 치켜들고 폼을 잡고 찍은 사진들. 수백 마리를 죽였는데 존경받는 의사란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를 먹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부드럽군. 좀 질기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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