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4) / 인류가 도둑이지 - 김바다의 ‘큰 도둑’
큰 도둑
김바다
꿀벌이 모아둔 벌꿀 훔치고
아기 젖소 먹을 우유 빼돌리고
닭이 품을 달걀 살그머니 꺼내오고
닭, 돼지, 소도 마음대로 잡아먹고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도 납치하고
지구가 간직한 보물들
다이아몬드, 금, 은, 구리
석탄, 석유, 천연가스도
뭉텅뭉텅 꺼내 쓰고 있지
아, 또 있다!
햇빛과 바람과 비가 만든 작품들도
냉큼냉큼 따서 먹지
큰 도둑은
감옥에도 안 가고
지구에서 떵떵거리며 살아가지
―『동시발전소』 제4호(2019년 겨울호)
<해설>
유사 이래 인간이 지구상에서 나쁜 짓을 참 많이 해왔는데 이 동시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뭇 동식물한테서 훔친 것이야 그렇다 치고,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도 이제 금세기 안으로 거의 동이 날 것이다. 22세기에는 어디서 에너지를 얻을까? 풍력? 조력(潮力)? 태양 에너지? 70억 인간이 쓰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원전 사고가 계속 일어날 텐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버금갈 사고가 일어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시인은 에너지 자원 개발에 나선 도둑은 큰 도둑이고 꿀벌 통을 바꿔치기하는 자는 작은 도둑으로 보았다. 과일 서리는 요즈음에는 도둑으로 몰릴 수 있겠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를 유발해 다른 생명체에 크나큰 해를 끼친 큰 도둑은 감옥에도 안 가고 떵떵거리며 산다. 중동의 석유재벌들이 특히 그럴 것이다.
우리 어른은 아이들에게 자원 개발과 에너지 확보의 방법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 느리게 사는 삶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옛날 사람들은 「귀거래사(歸去來辭)」 유의 글을 많이 썼다. 요즈음 낙빈낙도(安貧樂道)를 주장했다가는 인터넷 댓글에서 몰매를 맞을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