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10. 묘사냐 서사냐, 왜 이야기인가
[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10. 묘사냐 서사냐, 왜 이야기인가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20.04.30 0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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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숙하는 루카치 형님께서 언제 '묘사냐 서사냐'를 썼다 역시 루카치였다 그는 참 세계 평론계의 오롯한 북극성이 아닌가 머 이놈 저놈 벤야민도 있고 가라타니 고진도 있지만서도 루카치를 당하랴 증말이지 그놈은 내가 상대할만한 놈이지 않은가 하여 나는 조선판 '묘사냐 서사냐'를 써 보았다

......

박정희는 언론을 통제했고,
전두환은 언론을 통폐합시켰고,
이명박은 종편을 탄생시켰고,
박근혜는 드라마를 좋아했다.

대체 권력자들은 왜 이야기를 싫어했을까

하나의 서사로서 이야기가 봇물처럼 흘러 넘치는 시대, 대체 이야기의 본질이 무엇인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동어반복의 뜻이 없지 않지만 우리는 그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알고 싶어하는 서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 셰헤라자드의 천일야화가 있지만서도 여기, 매우 흥미있는 우리의 이야기 한 대목이 있다

"신라 제 48대 경문왕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나귀의 귀처럼 되었다 왕후와 나인들은 모두 알지 모했으나 오직 관을 만드는 복두장이 한 사람만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에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죽으려 할 때 도림사의 대숲 속의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나무를 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그 후 바람만 불먼 댓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왕은 이 소리를 싫어하여 이에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었더니 바람이 불면 다만 그 소리는 "우리 임금님 귀가 기다랗다"고만 했다"

이것은 삼국유사 제 2권 '기이편'(솔출판사)에 실려 있는 짧은 이야기 한 토막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이야기지만 이 작은 이야기 속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빽빽한 석류알처럼 박혀 있다

자, 그렇다먼 대체 이 작은 이야기에 머가 그리 마니 박혔다는 것인가 이야기도 하나의 기호로 서술자가 '약호맺기encoding'를 통해 의미를 숨겨 놓았으니 '약호풀기decoding'를 통해 어떤 의미가 박혀 있는지 알아 볼 수 있다

서사는 하나의 욕망이고 꿈이고 의지다

우선적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은 먼가를 알고 싶은 이야기라는 서사의 세계가 도대체가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세계라는 점이다 그것은 죽음으로써만이 능히 제어할 수 있는 본능의 세계다

여기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왕으로 대표되는 권력자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싶어하고, 복두장이로 상징되는 피권력자는 권력자의 약점을 알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기호놀이는 하나의 권력 게임이다 즉 기호는 항상 그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승 일연의 시각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서술은 하나의 초점이자 퍼스펙티브이고, 하나의 전망을 보여주는 담화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서사가 팽팽한 긴장으로 넘치고 있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즉 왕은 자신의 약점을 은폐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고, 복두장이는 이 약점을 탈은폐시키려는 기도try에 목을 매고 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자

"왕은 이 소리를 싫어하여 이에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었더니 바람이 불면 다만 그 소리는 "우리 임금님 귀가 기다랗다"고만 했다"

이 대목을 보건대, 일단 왕으로 대표되고 있는 권력자가 승리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그게 아니다 대체 왕은 왜 복두장이의 소리를, 정확히는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싫어했을까 그러먼서 "우리 임금님의 귀가 기다랗다"는 말은 왜 용납했을까 즉

가, '우리 임금님의 귀가 기다랗다'

나,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다'

는 왜 하나는 수용되고, 다른 하나는 거부되었을까 바로 여기에 서사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먼 믿을까

자, 좀 객관적으로 사회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제 48대 경문왕은 통일신라 하대의 임금으로, 그는 성대를 지나 내분이 일고 균열이 일던 시기의 통치자였다 곧 나라의 통어가 어렵던 시기의 지도자였다 여기, 그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는 것은 임금이 마치 당나귀처럼 고집이 세어져서 신하들의 충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국정을 농단했다는 풍자다 과연 그 이후로 처용(헌강왕)이 나타나 풍속이 문란해지고 견훤, 궁예 등 지방호족이 득세하고 저 박근혜 같은 진성여왕이 나오고 얼마 안 가 통일신라가 망하고 말았다

그러니,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 같다는 것은 복두장이, 대나무로 상징되는 백성들의 풍자요 비판인 것이다 마치 이솝 우화처럼, 직접 말하기보다는 이렇게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비유를 써서 자신들의 견해를 '암시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풍자comedy이고 알레고리인 것이다.

그런데 대체 '가'와 '나'는 무슨 차이가 있길래 임금은 '가'를 용납하고 '나'를 혐오했을까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서사, 그러니까 이야기의 세계가 사실과 다른 차원의 세계형식임을 엿볼 수 있다 즉 사실의 세계가 재현된 모방mimesis의 세계이고 평면의 세계라먼 서사의 세계는 사실의 재구이자 굴절된 서술diegesis 세계임을, 그리하여 사실을 가공하여 만들어진 서사의 세계는 대상세계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따라서 서사의 세계는 은폐된 세계를 탈은폐시키는 서사 폭탄, 이야기 혁명의 언어로 기능하게 는 것이다 

다시말해, '우리 임금님의 귀가 기다랐다'는 묘사(소)가 산수유나무로 상징되는 노예들이 맹목적으로 순종하고 마는 종놈의 수사학을 보여준다먼, 그러니까 종놈의 수사학이 묘사라는 것은 대상에, 동일성에 사로잡혀 있는 조화의 언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서사(소)는 대나무로 상징되는 민중들의 '주체적인' 풍자정신을 적시하고 있다 대체 '누구는 무엇이다'는 서사적 기술이 주체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은' 또는 '누구는' 하는 세계가 벌써 대상에 대한 거리를 두고 있는 주인의, 주체의, 차이의 분류학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다' 라는 분류를 통해 임금의 귀가 당나귀처럼 매우 크다는 사실과 함께 또한 그런 당나귀처럼 매우 고집이 세다는 것이니 이 을매나 믓진 비유이고 약자가 강자에게 날리는 통쾌한 풍자인가 이솝 우화가 왜 비유로 가득차 있는지, 자고로 비유는 약자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생활의 무기였던 셈이다

천인소지먼, 무병이사라

만인에게 손가락질 받으먼 병 없이도 죽는다

는 격언 또한 을매나 무서븐 촌철인가

What matters is narrative

중요한 것은 서사다 그러니까 묘사가 대상에 중심이 가 있다먼 서사는 그 중심이 인간으로 시점 이동한다 '대상'에서 '인간'으로 그러니 서사는 주체의 학문이다

자,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풍자기능으로서의 주체적 성격을 지닌 서사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그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대개 비판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공자를 비롯 아리스토텔레스, 다산 등 대체로 당대의 권력에 붙어먹던 최고의 정치엘리트들이 왜 한결같이 시('가')를 옹호하고 소설('은')의, 이야기의, 서사의 세계에 대해 '적의hostility'를 드러내고 있는지를 인자 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그럴까 현실에 적용해 보자 가령, 이명박 정부 당시 전문가와 국민의 압도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4대강 사업을 놓고 보자

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보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보 추진은 불도저식(무대포)이다

'가'와 '다'가 객관적 현실을 그대로 순응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먼, '나'와 '라'는 '가'와 '다'에 비해 주체적 해석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서사성narrativity'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조너선 컬러의 말(<문학이란 무엇인가>)대로,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상에 대해 가르치고, 세상이 어티케 움직이는지 보여주고 있"다 

대체 왜 '서사성narrativity'인가 정보가 차고 넘치는 시상, 그 누군가가 던진 서사의 그물망에 걸려들지 말고 저 어댑터블한adaptable 오디세우스처럼 임기응변에 능한 유연한 분별력을 지녀야 그나마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화, 희극, 소설 등 전래의 서사성 짙은 민중들의 이야기전달 방식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말해 있는 그대로의 즉자의, 점의 세계가 아닌 심미적 거리를 지닌 대자의, 선의, 레니어한 세계인식, 이것이 바로 건강하게 생을 유지해 가고 있는 대중적 서사가 지닌 저항 바이러스의 세계다

난 그렇게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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