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사는 세 시인의 낭독회 ‘봄꽃안착’! 조율, 정우신, 이병국 시인과 독자들 함께해
인천에 사는 세 시인의 낭독회 ‘봄꽃안착’! 조율, 정우신, 이병국 시인과 독자들 함께해
  • 송진아 기자
  • 승인 2020.04.19 02:12
  • 댓글 0
  • 조회수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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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을 다루는 동네책방 ‘서점안착’에서 열린 봄날의 행사
좌측부터 정우신 시인, 조율 시인, 이병국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좌측부터 정우신 시인, 조율 시인, 이병국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송진아 기자] 지난달 인천의 동네책방 ‘서점안착’에서 세 명의 시인이 만났다. 서점 인근에 사는 조율, 정우신, 이병국 시인은 각각의 생애를 담은 시편들과 시시콜콜하고 진솔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마주했다.

낭독을 들은 후 박수치는 조율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낭독을 들은 후 박수치는 조율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본명으로 동화를, 필명으로 시를 쓰는 조율 시인은 작년 2019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에 선정된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속 표제작을 첫 번째 낭독시로 소개했다. 20대 초반 첫 출근을 앞두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그녀가 파견직 노동자로서의 힘든 삶을 지낼 때, 유일한 돌파구는 ‘글’이었다. 

이제껏 비가 왔던 모든 날들을 수납한다

욱여넣을 문갑 한 칸 찾을 수 없다
당분간 엄마가 아침 드라마를 괜히 끊는다
햇볕 찾아오는 어느 날 가사까지
지어올 리 없다

오늘을 오늘처럼 사는 처세술서
한 권쯤 갈아 마셔야 가늘게 산다
마르지 않은 수많은 어제들 말리느라
건조해져 어제조차 건너올 수 없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중에서.

“쓰는 행위가 내겐 치유이자 타인의 삶을 향한 관심이다.”라고 말하는 조율 시인의 어린 시절 ‘지하 단칸방’의 기억이 담긴 시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는 말실수에서 착안한 독특한 문장으로 시집의 타이틀을 겸했다. 시인은 “지하방에서 본 흐린 하늘과 무언가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서늘한 시간의 기억을 담았다.”는 말로 시를 설명했다.

시를 읽는 정우신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시를 읽는 정우신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인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정우신 시인은 ‘밀항’이라는 시로 자신이 만나 온 인천의 바다, 월미도, 지하철역의 풍경을 재현했다. 시인이 “인천에서 자라면서 나이에 따라 쌓인 여러 기억을 층층이 겹쳐놓고 이미지로 구현”한 시 ‘밀항’의 출발선에는 세월호 아이들을 기리는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더 살아야 한다
생각하면

모든 비유가 쓸모없는 것 같다

냉동 창고에 떨어진 생선 눈알로
축구를 하는 아이들

나는 거짓말을 한다
바닷속 풍경이 풀어지는 것 같지?
너희처럼 아른거리는 것 같지?

-‘밀항’ 중에서.

정우신 시인은 “항구의 반짝이는 빛과 항로를 보며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며 “육지도 바다도 아닌 경계에서 유랑하는 아이들을 이야기하려다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책방 ‘서점안착’의 한 정거장 거리에 산다는 그는 최근 ‘차세대 예술가’로 선정되어 “도넛 시티”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낭독회 당일에는 시집 “비금속 소년”으로 독자들을 찾았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병국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야기를 전하는 이병국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시와 평론을 쓰는 이병국 시인 역시 인천 출신으로 고향을 다룬 시 ‘강화’를 통해 어릴 적 기억의 파편을 겹쳐놓았다. 낭독을 마친 시인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강화에서의 삶, 어렸을 때의 삶이 문학적 자산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기원을 돌아보고 조합하고자 쓰인 시다.”라는 말로 작품을 소개했다.

페달을 돌리면 시간이 자꾸만 거꾸로 갔다 담 너머로 둘둘 말린 신물을 던지며 골목을 누비던 나는
멀찌감치 떠돌고
한 달 이만 오천 원을 받으면 오천 원은 적립금이라고 돌려줬다 점장은 받은 돈을 자기 뒷주머니에 넣고
도둑질은 나쁜 일이라 배웠다 나도 따라 뒷주머니에 수금한 돈을 넣었다 영수증은 찢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점장이 오 학년 일반 교실 뒷문을 열었고 나는 삼층에서 뛰어내렸다

(중략)

생각하는 사이,
나는 나이를 또 먹어 곧 아버지보다 형이 될 거였다 곧장 형이라고 대거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환마마보다도 무섭다는 비디오 경고문을 빨리감기하듯 내 속에서 비워진 말들이
지금에 쌓여 있듯이
귀갓길에 뒤를 돌아보며 허둥댔다 쫓아올 이 없는 여기가 한 걸음 앞에서 헛돈다

단단해져야지,
말하는 나는
잃어버린 자전거에 앉아 있다

그러고 보면 발이 닿지 않아서 좋았다

- ‘강화’ 중에서.

그는 “국민학교 시절 신문을 돌리고 2만 5천원을 벌면, 적립금이라는 명목으로 5천원이 공제됐다. 이를 직접 수금한 돈으로 몰래 채웠다. 그때의 기억과 그 무렵 아버지의 모습 등을 떠올리며 시를 썼다.”며 창작에 얽힌 사연을 밝혔다. 

이병국 시인은 이어 “1년에 한 번 아버지 기일에 강화를 찾으면 산이 사라지고 대형 교회가 들어섰다. 그런 변화를 보니 나라는 존재의 기원이 없어지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단단해져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란 중의적 표현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낭독회 중인 서점의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낭독회 중인 서점의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세 시인의 세심한 이야기에 서점에 모여앉은 독자들은 저마다 소감을 밝히거나 특히 인상 깊은 시를 골라 ‘앵콜’ 시 낭독을 요청했다. 희곡을 쓴다는 한 관객은 ‘글을 쓰다 길을 잃을 때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이병국, 정우신, 조율 시인이 각각 자신의 비법을 전하기도 했다. 그중 시 10년, 평론 20년의 습작기를 거쳐온 이병국 시인은 과거 글을 쓰다가 벽에 부딪혔을 때를 회상하며 ‘잠시 멈추고 쉬어가기’를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자신을 국어 선생님이라고 밝힌 관객은 “사실 처음 시집을 펼쳤을 때는 ‘어렵다’, ‘해석이 잘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시인의 목소리로 배경을 들으니 문장, 단어 하나하나가 더욱 잘 와닿아 마음이 울컥했다.”라며 “아이들의 교과서에도 시인의 해설이 있으면 좋겠다. 혼자 읽을 때는 몰랐던 걸 알게 되고 그 순간부터 집중하게 되는 감사한 시간이었다.”라는 말로 낭독회의 의미를 되짚었다.

낭독회 중인 서점의 모습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낭독회 중인 서점의 모습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이날 ‘서점안착’에서 열린 낭독회에는 동네를 거닐다 통유리창 너머의 모습을 보고 들어온 주민을 포함해 다양한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봄날, 시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시간을 채워나갔다.

정우신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정우신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이병국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이병국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저에게 ‘시’는 ‘곁의 문학’이에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변혁의 가능성을 품고 있을 수도 있고 서정의 형태로 다른 이에게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줄 수도 있죠. 제가 생각하는 ‘시’는 어떤 상황에서든 누군가의 곁에 나란히 앉아있는 존재예요.”

-낭독회 중 시 ‘토렴’을 소개하는 이병국 시인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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