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심아진 소설가의 「낙차」
[미니픽션] 심아진 소설가의 「낙차」
  • 심아진 소설가
  • 승인 2020.04.30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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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차

심아진

  춘자 씨는 입술이 부르트고 입안이 헐었다. 신종 폐렴이 나라를 휩쓸고, 마침내 강남 유명 백화점마저 문을 닫은 여파였다. 확진자와 같은 시간대에 백화점에 있었던 홍 여사가 집에만 머물자, 대기업 부럽잖았던 춘자 씨의 근무 환경이 중소기업 하청 업체만도 못한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인 부부가 나간 후 텔레비전 앞에서 원격조종기를 눌러대며 막대기 커피를 마시던 때의 평화를 더 이상 누릴 수 없었다.
  새터민 출신인 춘자 씨에게 홍 여사는 까다로운 고용주가 아니었다. 입주 도우미로 일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춘자 씨는 홍 여사가 두어 마디 이상 길게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춘자 씨가 보기에 홍 여사나 이사장이 집에 있는 이유는 오로지 집에서 나가기 위해서였다. 나가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가기 위해 잠을 잤으며 나가기 위해 옷을 입었다. 춘자 씨는 집안을 어지럽히지도, 잘 먹지도 않는 성인 두 사람이 사는 너른 집을 관리하는 게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 홍 여사가 집에 있었고, 전에 없이 일찍 퇴근해 따로 저녁 먹기를 원하는 이사장이 있었다. 홍 여사는 아침나절 드레스룸을 서성이다가 이후에는 스마트폰을 쥔 채 거실을 서성였다. 문자를 하거나 통화를 하지 않을 때면 대개 동영상을 보았다. 춘자 씨는 제 전화기로 백종원 동영상 같은 걸 틀어놓고 요리했던 지난날이 그리웠다.
  유튜브를 이리저리 뒤지던 홍 여사가 춘자 씨에게 외쳤다.
  그래, 북한 음식! 그간 궁금했는데, 이 기회에 맛보고 싶네요.
  홍 여사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식재료를 주문했다. 이전에 춘자 씨 혼자 잠깐씩 장을 보며 사들였던 양의 두 배 혹은 세 배쯤 되는 채소며 고기 등이 매일 새벽 문 앞으로 배달되었다.
  춘자 씨는 펑펑이 떡을 비롯해, 옥수수 국수며 입쌀만두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요리했다. 뭐하러 일부러 먹는지 모를 인조고기밥까지 만들어야 했을 때는 코로나19가 춘자에게 억한 마음을 품고 전생에서부터 따라온 두억시니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잘 먹었다면 나름 보람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 여사도 이사장도 춘자 씨가 만든 북한 음식을 몇 번 뒤적이며 맛을 보는 정도에서 그쳤다. 하는 말은 애매했다.
  괜찮네. 어릴 때 먹던 불량식품 맛, 딱 그거네.
  이전에는 홍 여사도 이사장도 집에서 거의 밥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매끼, 맛보는 데 그칠 북한 음식에 더해 실질적으로 배를 채울 다른 음식도 먹었다. 춘자 씨는 종일 씻고 다듬고 볶고 삶아대느라 바빴다. 배송되는 여러 가지 물품들을 정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수신인 정보가 적힌 송장을 뜯어내거나 분별없이 겹겹이 두른 테이프를 떼어 내는 일은 성가셨다. 플라스틱 용기나 박스 등을 납작하게 만든 후 비닐에 넣거나 끈으로 묶는 건, 이전에는 주중에 한 번만 하던 일이었다. 춘자 씨 입에 헤르페스균이 더께 앉을 만했다. 

  일요일에 이사장과 홍 여사가 다투었다. 춘자 씨로서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골프는 야외에서 하니까 괜찮잖아.
  골프만 치냐? 사람들이랑 어울리면 밥도 같이 먹어야 하는데.
  그럼 계속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거야?
  마스크 끼고 산책이라도 다녀와. 공원 정도는 다녀와도 괜찮을 거야.
  춘자 역시 홍 여사가, 아니 두 사람 모두 공원에라도 다녀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부는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월요일, 홍 여사가 춘자를 드레스룸으로 불렀다.
  이 드레스 어때요?
  치맛단이 여러 겹인 자주색 드레스는 홍 여사가 라틴 댄스인지 뭔지를 배우러 다닐 때 입는 옷 중 하나였다. 홍 여사가 뱅그르르 돌며 다시 물었다.
  이 옷에, 이 구두 괜찮아요?
  곱슴다.
  이건요?
  홍 여사가 구두를 바꿔 신으며 또 물었다.
  곱슴다.
  춘자는 모처럼 홍 여사가 춘자의 의견을 궁금해하니만큼 성의있게 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곱슴다’에서 한 번은 끝의 ‘다’를, 한 번은 가운데 ‘슴’을 올려 강조했을 뿐이다. 사실 춘자는 새터민 친구중에서도 옷을 가장 못 입는 축에 속했다. 친구들 말에 의하면 도무지 미적 감각이 없다는 거였다. 같은 옷을 두고도 춘자가 골라 입으면 북한에서 입던 인민복만 못하다고들 했다.
  화요일, 홍 여사는 종일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글쎄 말이야.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나, 뭐. 한 번은 약간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럼 언제? 도대체 언제까지? 식기 세척기에서 그릇을 꺼내 정리하던 춘자는 홍 여사의 한숨이 길게 이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통화를 마치고 어지럼증이 이는 듯 비실비실 부엌으로 온 홍 여사가 커피를 주문했다. 홍 여사는 갓난아기 젖 찾듯 종일 시커먼 커피를 찾았다. 
  수요일, 이사장의 와이셔츠를 애벌빨래하고 있던 춘자 씨가 문득 정수리 싸한 걸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홍 여사가 문가에 기대 서 있었다. 춘자보다 나이가 많지만 십 년은 젊어 보였던 홍 여사의 얼굴이 모처럼 춘자와 비슷해 보였다.
요즘은 셔츠가 깨끗하죠? 어때요?
  춘자는 화들짝 놀랐다. 그간 이사장의 셔츠를 빨 때마다 이런저런 자국들을 보았다. 홍 여사는 깃과 소매만 문지르라 했지만, 춘자는 세심히 다른 얼룩들도 살폈고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않았다. 홍 여사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있었다니 어쩐지 섬뜩했다.
깨끗합니다.
  홍 여사가 피식 웃으며 문가를 떠났다.
  목요일, 춘자 씨가 익힌 낙지의 속을 채우고 있었다. 홍 여사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낙지랑 오징어는 다른데, 북한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라고 한다지요. 왜 그럴까?
  춘자 씨가 어찌 알겠는가. 우물거리고 있는데 홍 여사가 또 물었다.
  여기 동생이랑 넘어왔다고 했죠? 다른 가족들은요?
  춘자 씨는 두어 번 탈북을 시도했다가 곤욕을 치른 후 기어이 몸져누운 어머니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춘자 씨는 되도록 북한말을 쓰지 말라던 하나원 교육자들의 당부를 잊고 부지불식간 말했다.
  일 없슴다.
  금요일, 홍 여사가 갑작스레 춘자의 이름에 관심을 보였다.
  저기요. 아무래도 춘자라는 이름 너무 촌스러워요. 봄이 어때요? 
  …….
  봄이 좋은데……, 아니면 보미?
  …….
  동생 있다고 했죠? 동생 이름은 뭐예요? 설마 추자?
  춘자 씨는 춘심이가 들었으면 홍 여사를 ‘호랑말코’라 욕하며 팔팔 뛰었으리라 생각했다. 추자, 추녀. 춘자 씨는 속으로 조용히 키득거렸다. ‘보미가 좋겠다’며 손뼉이라도 칠 기세였던 홍 여사는 나중에 춘자를 부를 일이 생기자 언제나처럼 ‘저기요’라는 말을 썼다.
  토요일, 춘자 씨는 홍 여사의 지시대로 대청소를 했다. 이사장이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는 방만을 제외하고 모두 소독제를 뿌리고 진공청소기를 돌렸다. 그리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데도 이사장은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스팀 청소기에서 올라오는 더운 김 때문에 춘자 씨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청소 후에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거친 이불보며 베게 커버 등을 다렸다. 춘자 씨는 물집이 잡힌 입술 가장자리를 저도 모르게 혀로 핥았다. 혀에도 까슬하게 혓바늘이 돋아 있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방에 들어간 춘자 씨는 동생과 잠시 통화를 한 후 시체처럼 쓰러져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드레스룸에서 아악, 아악, 비명이 새어 나왔다. 너무 피곤해서 늦잠을 잔 춘자 씨가 허둥지둥 달려가 보니 홍 여사가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가리고 있었다.
  저기요. 그거, 그거 좀 눌러서 꺼주세요.
  홍 여사가 가리키는 건 저만치 옷장 앞에 떨어져 있는 스마트폰이었다.
  이거요?
  네, 빨리요. 빨리.
  춘자 씨가 유튜브 동영상을 멈추자 홍 여사가 벌건 눈을 들고 춘자 씨를 바라보았다.
  어쩌지? 보고야 말았네, 보고야 말았어.
  홍 여사가 선반에 가득한 가방들로 고개를 들었다가 얼른 도로 내렸다. 춘자 씨는 반들반들 윤이 나는 가방들을 볼 때마다 참 곱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연두색, 주황색, 하늘색이 아니었다. 세련되고 그윽하고 섬세하달까? 저 가방을 들고 나가야 할 텐데 그러지를 못하니까 숨이 막히는 거지. 춘자 씨는 생각했다. 춘자 씨도 홍 여사가 나가지 않아 정말 죽을 맛이었다.
  글쎄 내 와니들이, 내 버킨 백, 켈리 백 들이……. 아, 보고야 말았어.
  홍 여사가 어깨를 떨며 울기 시작했다. 춘자 씨는 조금 전 스마트폰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여러 마리 악어들이 배를 드러낸 채 거꾸로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게 왜?
  홍 여사가 춘자 씨에게 기대며 애처롭게 물었다.
  저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아아, 정말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아아……. 
  춘자 씨야말로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얼어붙은 대동강을 건너다 군데군데 널린 시체를 봤을 때도 이처럼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춘자 씨가 가만히 홍 여사의 어깨를 토닥였다. 홍 여사가 무너지듯 춘자 씨에게 쓰러져서는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춘자 씨는 망할 역병이 사람 참 여럿 까부라지게 한다고 생각했다.

 

심아진
소설가.
1999년「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21세기 문학])로 데뷔 . 소설집『숨을 쉬다』, 『그만, 뛰어내리다』, 『여우』, 장편소설 『어쩌면,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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