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불공정 관행 01] 이소연 시인 “불투명한 청탁 시스템 개선과 DB 구축이 시급”
[문학계 불공정 관행 01] 이소연 시인 “불투명한 청탁 시스템 개선과 DB 구축이 시급”
  • 김보관 기자
  • 승인 2020.04.22 20:15
  • 댓글 0
  • 조회수 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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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이자 시인으로서 겪은 단행본, 문예지 청탁 과정
이소연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이소연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최근 이상문학상 사태가 불거지며 문학계 불공정 관행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상문학상 사태에서 제기된 저작권 양도 문제부터 원고 청탁 과정에서의 주먹구구식 계약 과정까지, 당연한 듯 여겨져 왔던 관습과 인식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에 뉴스페이퍼는 문학 현장의 여러 작가를 만나보고 그들이 경험한 불공정 사례와 개선 방안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순서로 만난 이소연 시인은 문예지 “포에트리 슬램”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를 출간했다. 이소연 시인은 편집위원으로서의 고충과 시인으로서 겪은 경험담을 고루 들려주었다.

이소연 시인이 시집을 낸 걷는사람 출판사의 경우 단행본 계약 시 구체적인 출판 시일과 함께 저작권, 전송권 등 관련 내용이 비교적 세심하게 안내됐다. 처음 계약할 때 관련 내용을 담은 문서가 전달되고, 출간 시기에 맞춰 최종 계약서를 작성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뉴스페이퍼의 취재 결과, 대부분 출판사에서는 이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대형출판사 중 한 곳인 문학동네의 경우 신춘문예와 같은 ‘등단제도’를 통해 갓 데뷔한 시인 중 일부에게 최대한 빠르게 연락해 구두로 계약을 맺는다. 뉴스페이퍼의 취재에 따르면, 편집자가 신인에게 연락해 ‘시집을 내자’라고 이야기한 뒤 별도 계약서 작성 또는 계약 사항 명시 없이 출간 시기를 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대형출판사는 물론 중소출판사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소연 시인을 비롯한 다수 문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출간 순서는 구두계약 순서와는 무관하며 때에 따라 그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출판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신인의 경우 출간이 미뤄지면 어디 문의할 곳도 없는 데다 점점 자기 작품을 탓하게 되는 굴레에 갇힌다. 시집을 내기로 계약이 되어있으니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은 불가능하지만, 갈수록 늦어지는 소식에 ‘내 작품에 문제가 있는 걸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출판사 편집위원으로 있는 선배 시인의 암묵적인 압박까지 더해지면 남은 선택지는 ‘기다리는 일’뿐이다. 정보의 불균형에 출판 권력이 더해져 불공정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학동네 측은 “편집자 개인이 신인에게 연락해 시집을 내자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기획위원들의 회의를 통해 만장일치제로 출간 확정을 내린 후 편집자들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시집 출간 의향을 묻도록 한다. 출간 시기는 별도의 과정을 거쳐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소연 시인은 “근래 독립출판과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활발히 생겨나고 있지만, 이를 겪어 본 사람이라면 그 환경의 열악함과 어려움을 더욱이 체감한다.”라며 “문학계 권력화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광고 마케팅 효과와 시집 판매량 등을 생각하면 메이저 출판사에서 호명되고 싶은 인정욕구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부분이다. 이는 몇 번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된다.”라고 부연했다. 

시인은 “누구 하나가 나쁜 사람으로 지목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해결해야 한다.”라는 말로 대안을 제시했다. 서면계약서의 의무화와 더불어 구체적인 계약 내용 명시가 더욱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비단 단행본만이 아니라 문예지 청탁 과정에서 계약서를 대신하는 ‘청탁서’ 역시 원고료의 액수, 지급 기한, 저작권·출판권·전송권 등의 조항이 제대로 표기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소연 시인은 그간의 경험을 떠올리며 “황당한 경우가 정말 많다.”고 운을 뗐다. 술자리에서 건넨 ‘나중에 청탁 좀 받아주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수개월 뒤 추가 연락 하나 없이 메일을 보낸다던가, 초기에 이야기한 금액과 차이가 나는 원고료가 지급되는 경우, 원고료 지급이 아무런 안내 없이 차일피일 미뤄지거나 책으로 원고료를 대체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신인 때는 적절한 노동의 대가조차 건네지 않고 당연한 듯 글을 싣거나 대담에 초청하기도 했다.

이소연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

더불어 이소연 시인에 의하면, 편집위원이 수많은 문인의 연락처를 모두 알 수 없음은 물론이고 정리된 데이터베이스가 없어 오프라인상에서 일면식이 있거나 겹치는 지인이 있는 경우의 청탁이 용이하다. 이는 청탁 시스템의 폐쇄성과도 연결되어 신진 작가를 찾는 지면과 새로운 청탁을 기다리는 작가 모두에게 불리하다. 

공적인 청탁 시스템이나 인물 DB가 없으므로 한정된 인맥 안에서 청탁이 이뤄지고, 신인 작가는 어떤 제의를 받든 그 금액과 대우가 적당한지 아닌지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결국, 문학계 전반에 존재하는 불합리함의 근저에는 청탁 시스템의 불투명성과 정보 공유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소연 시인은 나아가 “문학이란 고결하고 숭고한 것이라는 ‘문학 엄숙주의’를 깨고 보면 문학도 하나의 ‘정당한 노동’이다. 돈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면 이상하거나 천박하게 여기는 인식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는 말로 원고료에 대한 활발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많은 권리를 양도할수록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고, 관련해 적절한 안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끝으로 근래 논의되고 있는 ‘작가 노조’와 관련해서 시인은 “실현 가능해지려면 일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는 한편 “권력화를 경계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 자체로 권력이 되기도 한다. 권력 자체가 나쁜 게 아니고 그 권력을 어떻게 쓰는지가 관건이다. 권력이 생기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문화는 건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새로운 대안 권력과 시스템을 만들어 낼 때, 원만한 토론의 장이 열림과 동시에 불공정한 관습이나 관행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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