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불공정 관행 03] 시인 A “뿌리 깊은 출판 권력과 폐쇄적인 정보 공유가 문제”
[문학계 불공정 관행 03] 시인 A “뿌리 깊은 출판 권력과 폐쇄적인 정보 공유가 문제”
  • 김보관 기자
  • 승인 2020.04.2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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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계약서 작성과 작가 아카이브 구축을 해결책으로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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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A 시인을 만난 것은 마포의 한 카페에서다. 그는 인터뷰에 응한 후 익명을 요구했다. 이는 내용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일이나 뉴스페이퍼는 기사화 이후 취재원이 겪을 문학계 내 사적, 공적 보복으로부터 시인을 보호하고자 요청에 동의했다. 

본지는 편집회의를 거쳐 취재원에 대한 신뢰를 전적으로 책임을 지기로 하고 인터뷰 내용을 공개한다. A 시인은 데뷔 이후 여러 문예지를 비롯한 다양한 지면에서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로 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시인이다. A 시인을 제외하고도 인터뷰에 익명을 요구한 문인들은 적지 않으며 좁은 업계의 소문과 낙인을 염려해 아예 인터뷰 자체를 거부한 경우도 다수다.

A 시인은 “많은 작가가 ‘나도 잘나가는 축에 끼고 싶은데.’, ‘찍히면 안 돼.’하는 생각에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하기를 꺼릴 것이다. 출판사를 비판했다가 청탁이 끊기면 문의할 곳도 없고 새로 지면을 마련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을 이었다. 기성의 문예지나 출판사 외에 다양한 모델이 생겨났다고는 하지만, 자본력의 차이로 인해 많은 독자를 만나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기성의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작가’로 찍혀 청탁이 현저히 줄어든다면 당장 작가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대형출판사 관계자가 커피 마시다 건넨 ‘나중에 우리 쪽에서 내요.’라는 말을 들은 신인 시인은 계약서를 요구하거나 다른 지면에 작품을 발표하기조차 어려워진다. A 시인은 “작가 입장에서 시집이 나오기 직전까지 너무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그도 그럴 것이 주먹구구식의 약속 이후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업계에 ‘출판 관행도 모른다.’, ‘걔는 좀 별로다.’, ‘같이 작업하지 마라.’ 하는 소문이 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출판 권력을 이용한 ‘작가 묶어 두기’ 내지는 ‘출판사 소속 작가 관리’도 언급됐다. A 시인은 “밀어주고 싶은 작가에게 상을 주고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명해진 작가들은 나와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라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했다. 출판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작가나 베스트셀러 작가의 경우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나서서 비판의 목소리를 더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중소출판사나 문예지에서도 불공정 관행은 만연하다. 원고 청탁 과정을 묻자 A 시인은 “원고료를 책으로 주거나 안 주는 문예지도 있다. 작가끼리 사적으로 정보를 공유해서 ‘거기는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나눈다. 청탁서에 원고료 명시가 안 되어있는 경우도 많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이전에는 금액이 안 적혀 있으면 물어보곤 했지만, 이제는 원고료 표시가 없으면 아예 청탁을 안 받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A 시인에 의하면 원고료 지급 기한은 출판사마다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책이 출간되어 집에 책이 도착하는 날쯤이다. A 시인은 “보통 도서 도착 후 하루 이틀 사이에 고료가 입금된다.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들어오겠지.’하고 기다린다.”는 말로 먼저 원고료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작가들의 사정을 설명했다. 문학계에서 금액을 언급하는 일은 무례하거나 천박한 일로 치부 당하곤 했다.

청탁서에 관련 내용이 정확히 명시된 사례도 있었다. 시인은 “웹진 비유나 큰 출판사의 청탁서에는 입금일이 적혀 있고 약속한 날짜가 잘 지켜지는 편이다.”라고 좋은 예시를 들었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공적 단체나 대형출판사 외에는 명확한 계약서·청탁서를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였다.

A 시인은 나아가 “대부분의 해결책은 계약서를 투명하게 쓰고 그것을 지키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여러 대안을 모색했다. 그는 각 문예지와 출판사의 계약 실태를 선거철 ‘정당별 정책 정리표’처럼 공개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그것이 어렵다면 작가 아카이브라도 구축했으면 좋겠다.”고 첨언했다. 각 작가가 발표한 지면, 작품, 활동 정보를 공적 기관에서 일괄 정리해 막 데뷔한 신인이나 청탁을 넣고 싶은 문예지 편집위원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면 현재의 인맥 중심의 정보 공유와 폐쇄적인 청탁 시스템이 좀 더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예술인 활동증명을 관리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실현할 수도 있다. 예술인 활동증명 시에는 각각의 연락처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 활동 내용을 제출한다. A 시인은 “작가 동의 아래 이메일 주소를 포함한 활동 내역을 공유한다면 이를 통해 문예지 청탁 시 여러 작가를 확인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끝으로 작가들의 권익을 대변할 단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A 시인은 “단체는 분명 필요하고 이를 잘 이끌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는 불공정 사례를 감시할 곳이 없다. 문제를 고발하면 드러난 개인이 피해를 겪겠지만, 조직이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고 확신했다. 이처럼 문학계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최근 논의되는 작가 노조 등의 단체 마련과 더불어 공적인 차원에서의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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