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불공정 관행 05] 시인 B, “글쓰기 또한 노동의 일부, 정당한 대가 받을 수 있어야”
[문학계 불공정 관행 05] 시인 B, “글쓰기 또한 노동의 일부, 정당한 대가 받을 수 있어야”
  • 김보관 기자
  • 승인 2020.04.30 20:08
  • 댓글 0
  • 조회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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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적인 원고 청탁과 불분명한 원고료 지급 만연...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봄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던 날, 종로에서 B 시인을 만났다. 옷깃을 여미며 준비해온 메모를 정리하는 B 시인은 조심스레 익명을 요청해왔다. 그는 “이곳에 오기까지 여러 밤 많은 고민을 했다.”며 “내 목소리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는 마음에 용기를 냈다.”고 했다. 좁은 문학계 내에서 혹시 모를 소문이나 압박에 대한 우려로 아주 친한 문인들끼리도 원고료, 청탁, 계약 문제는 나누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걱정 속에서도 인터뷰에 응해준 취재원의 보호를 위해 진행되는 익명 인터뷰는 뉴스페이퍼가 전반의 신뢰성을 보장하며 몇 차례 편집회의를 거쳐 결정됐다. 앞서 만난 A 시인과 B 시인 외에도 여러 문학인이 익명을 요구하거나 인터뷰를 거절할 정도로 문학계 내 권력 문제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었다.

주요 문예지를 통해 데뷔 후 평단의 호평을 들으며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B 시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고압적인 원고 청탁’이었다. 그는 “마치 맡겨둔 것처럼 ‘시 있죠?’ ‘바로 가능하죠?’하고 급하게 연락할 때가 있다. 대뜸 자기를 아느냐고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묻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신인 시인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 자체가 옳은지 그른지 물어볼 데조차 없었다. 

B 시인은 고개를 내저으며 “이제는 내성이 생겨서 ‘그런가보다.’, ‘원래 다들 그렇지.’ 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그간 내가 가만히 있어서 신인들이 더 힘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인 시절 가장 힘든 건 어디 물어볼 곳이 없어 혼자 앓다가 한참 후 술자리에서나 겨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는 말로 인터뷰 자리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계약서’를 철저히 챙긴다는 B 시인에게도 원고 청탁 과정이 항상 원만하지는 못했다. 일부 대형출판사처럼 잘 명시된 사례도 있지만, 재수록이나 저작권과 관련한 사항이 모호한 문예지도 있었다. B 시인은 “한 독립출판 잡지에서 처음 청탁서가 아닌 분명한 계약서를 만났다. 이와 반대로 체계가 하나도 없어 책이 언제 나오는지도 모르고 마냥 기다리거나 다른 곳에 실리는지도 몰랐는데 실리는 경우가 있다.”며 문예지마다 큰 편차를 이야기했다. 

원고료를 받는 시기도 들쑥날쑥했다. B 시인은 “청탁서에 원고지급일을 적어준 곳은 딱 한 곳이다. 이제는 감으로 언제쯤 고료가 들어올지 알고 있다.”고 전했다. 상대적으로 작은 출판사는 별도의 연락이나 기약 없이 수개월 미뤄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B 시인 긴 작품활동 기간 단 하루도 마감일을 어긴 적이 없다. 그는 ‘그런데 왜 고료는 정확히 맞춰주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당연한 의문인데 따진 이후의 일도 작가가 떠안게 된다. 백만 원, 천만 원의 큰 액수가 아니니까 ‘에이, 십만 원가지고.’, ‘좀만 기다려주지. 문예지 어려운 거 알면서.’ 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밝혔다.

시를 쓰는 업계에서 만연한 구두계약 관행도 빠지지 않았다. B 시인 주변에도 많은 시인 후배들이 구두계약을 둘러싼 공포를 겪고 있다고 한다. 시집 계약이 구두로 묶여 있는 경우 적당한 지면이 나타나거나 좋은 공모전의 기회가 생겨도 투고하기 어려워진다. B 시인은 “후배들도 물어볼 곳이 없으니 나를 찾아온 거다. 부디 청탁자와 작가 서로의 이득을 위해 서면 계약서를 작성해주셨으면 한다. 일하는 이의 마음가짐도 달라질 뿐만 아니라, 여러 불공정한 사태들이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기억이 난 B 시인이 손을 맞댔다. 그는 “한 지방지에서는 ‘우리는 5만 원밖에 못 줘요. 하실 수 있어요?’ 하며 연락이 와서는 청탁할 다른 작가의 연락처를 우르르 물어보기도 했다.”며 “청탁자와 작가를 회사와 프리랜서의 자리로 놓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 작가 세계에서만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원고료를 1년 뒤에 받은 때도 있었다. B 시인은 “생계 지출비가 밀려 곤란한 상황 속에서 짜증이 나지만, ‘언젠가 주겠지’ 하고 버티게 된다. 한 문예지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그곳만 연관되는 게 아니다. 문학계는 알게 모르게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고 폐쇄성을 띠어 청탁을 주는 쪽의 눈치를 보게 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바라는 부분은 딱 하나다. 원고료 지급일이 정확했으면 하는 것.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낮은 원고료임에도 차일피일 지연될 때 안내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은 특히 신인을 궁지로 몬다. B 시인은 “지면이 또 다른 지면을 가지고 오는 구조, 즉 발표된 작품을 보고 새로운 청탁이 들어오는 구조라 단행본 계약이 안 된 신인은 노출도를 높이기 위해서 불공정한 제안에도 응할 수밖에 없다.”며 “더 많은 선배 문인들의 목소리와 실질적인 제도 변화가 절실하다.”고 힘을 실었다.

그에 따르면 시 한 편에 삼만 원짜리 청탁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시 세 편에 산문 하나가 십만 원인 곳도 있다. 그러나 결국 작가가 삶을 유지하고 글을 쓰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B 시인은 “시인으로 살수록 시가 주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글을 써서 충당되지 않는 생계비는 결국 강의나 다른 직업을 병행하게 만든다.”고 첨언했다. 

그는 “처음 청탁을 받았을 때는 해당 금액이 적절한지도 알 수 없고 그 자체를 감사히 여긴다.”는 말과 함께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하루살이와 같은 작가는 쉽게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단체 출범 이전에 누구라도 부당함을 인지하고 행동할 수 있는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B 시인은 “정보가 공유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연대든 단체든 규격이 있어야 하니 문학계 선배들이 가이드를 잡아서 후배들의 작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노동계에는 노동법이 있는 것처럼 문학도 명확해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금으로선 하나도 명확한 게 없다. 막상 시인들끼리 모여 고료 이야기를 꺼내긴 조심스러운 데다 참고할만한 데이터베이스조차 많지 않다.”며 “문학도 일종의 노동이다. 노동의 대가를 통해 동기부여가 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나아가 문학생태계 차원에서 새로운 시도를 조명하며 B 시인의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B 시인은 “기성 등단제도를 거치면 많은 관행에 순응하게 되기도 한다. 더 나은 문학생태계를 도모할 수 있는 다양한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이를테면 독립출판, 독립문예지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나 비등단자를 지원해 더 많은 기회를 주고 공존을 통해 더 나은 생태계를 도모하길 바란다.”는 말로 건강한 문학계의 모습을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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