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시] 김연덕 시인의 '사냥 전에'
[신작 시] 김연덕 시인의 '사냥 전에'
  • 김연덕 시인
  • 승인 2020.04.30 23:46
  • 댓글 0
  • 조회수 2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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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전에

나뭇잎 위에 같은 나뭇잎이 쌓이고
바람은 종종 바꾼다
그것들의 순서를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잊은 것이 있고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날개 
덫을 능가하는 숲의 가능성

길은 멀고 멀었다
내달려도 넘어지지 않았다
질퍽해진 잎이 밑창 가득 달라붙었지만
감정을 
어떤 기준을 개척하는 
안락한 기분

과녁은 화살촉에 앞서 자라고
깨진 랜턴에서 수천 개의 빛이 흘러나온다

빛과 함께
여러 갈래 흩어지는 길

놀다 흘리는 피는 무섭지 않다

갖고 놀던 카드에도 새 그림이 있었다

z

죽은 건 숲에 다 가두었는데

화를 내거나 노래를 부를 때마다 조금씩 몰려와 온몸을 두드려대는 
두 발, 두 어깨, 두 송이 버섯
만진 이상 얌전히는 돌려줄 수 없는

기름종이 아래서도 베껴지지 않는 것

나는 점괘가 나빠 이름으로 불린 적 있다
미신처럼
카드와 카드가 뒤섞이길 기다린다

잊었던 새가 날면
숲이 열린다

z

시트 위로 날리는 깃털

발하는 조각과 스러지는 조각이 
랜턴을 채운다

남은 빛은 뒤통수에 사로잡힐 것

정해진 대로 가야 하는데 꿈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z

카드를 섞는다

가정해보는 건 위험하지 않다


시작 노트


두려움과 우스움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거리라고 부를만한 차이가 정말 있는 것일까 궁금할 때가 있다. 
두려우면 비장해지고 비장해지면 이상한 웃음이 난다. 삐걱이는 표정과 자세. 구석까지 스며드는 빛나는 우스꽝스러움. 지워진 내 표정은 늘 시간이 조금 늦게 알려준다. 
숲, 버섯, 카드놀이, 빛, 사냥.  
때문에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과 공간이, 비현실이, 늦게 도착한 나에게는 가장 생생한 현실이 된다.
내가 만든 현실에서 나는 숨기도 하고, 잠들기도 하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기도 한다. 사랑을 기다리다 과녁처럼 들키기도 한다.

약력
2018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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