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슬”에 묻어나는 “제주 4·3사건”과 역사청산의 필요성 (1)-잔인한 4월의 서막
영화 “지슬”에 묻어나는 “제주 4·3사건”과 역사청산의 필요성 (1)-잔인한 4월의 서막
  • 김규용 기자
  • 승인 2020.04.30 23:50
  • 댓글 0
  • 조회수 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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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월의 노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작사, 김순애 작곡- 사월에 노래

살 에이는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넘어 또 다시 4월의 봄이 되었다. 누군가는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한다. 또 누군가는 잔인한 달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사람이 살면서 만들어진 삶의 편린과 이어진 하나의 뫼비우스띠처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지지 않는 굴레일 것이다. 청록파 박목월 시인이 시를 쓰고, 김순애가 곡을 붙인 가곡 ‘사월의 노래’를 살펴보면 혹독한 겨울을 넘어 만물이 소생하는 사월에 대한 예찬이다. 이렇듯 대부분에게는 4월은 만물이 소생하며 사람들도 생기를 찾고 낭만적인 계절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기억의 편린으로 어느 해 4월은 아주 잔혹한 달로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도 있다.

제주 4·3사건에서 비롯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70여 년이 훌쩍 넘어버린 시간이 흐르며 지나간 옛 이야기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삶의 대부분을 두려운 기억의 파편을 붙잡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렇기에 뼈아픈 과거사를 현대 역사해석 테이블에 올려놓고 철저하게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역사문제는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일이 아닌 그 사회 구성원과 후손들 모두의 일인 것이다.

▲영화 ‘지슬’이 말하는 제주도 학살사건 

오멸 감독의 작품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2013년)”은 우리가 말하는 제주 4·3사건이 배경이다. 제주 4·3사건은 김영삼 정부까지는 묻혀진 역사였다.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 비로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국가가 국민을 배신하며 강제로 묻어버린 아픔이었다. 1978년 현기영 작가가 ‘순이삼촌’이라는 중편 소설을 펴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고초를 받았을 만큼 금기어였다. 영화 ‘지슬’은 이러한 사건을 다루며 2013년 부산 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뜻한다. 

오멸 감독은 사건의 배경 당시 서민들의 대표 음식이었던 감자를 통해 평범한 일반 주민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가 흑백으로 제작되며 요즘 세대에게는 익숙지 않은 화면이다. 감독은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라면 검은색 옷을 입는다. 그렇기에 색깔이 들어갈 수 없고 제주도는 또 아름다운 섬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섬으로 기억하지만, 정작 그 속에 담긴 아픔과 고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흑백으로 제작된 이유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오멸(본명 오경헌) 감독은 1971년생으로 제주특별자치도 태어났다. 데뷔작으로 2009년 '어이그 저 귓것'라는 첫 장편영화로 이름을 알렸다. 영화 “지슬”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리고 제1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대상을 비롯해 제3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국제비평가연맹 한국본부상, 제19회 브졸아시아국제영화제 황금수레바퀴상 등 무려 8개를 수상했다. 오멸 감독은 특히 제주도와 관련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세월호사건을 다룬 영화 ‘눈꺼풀’을 제작해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사건의 잘잘못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눈꺼풀을 도려내서라도 바라봐야하고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그날과, 그 어린 영혼들에 대해 순수한 애도의 마음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아픔.”이라는 관객의 평가도 있었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는 제기- 영화장면중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는 제기- 영화장면중

▲오멸 감독은 이 한 장면으로 영화의 모든 내용을 이야기했다.

오멸 감독은 영화 “지슬”을 흑백 영화로 제작했다. 이는 하나의 레퀴엠(진혼곡)이다. 이 영화에는 이념이며 사상은 없다. 다만 광복을 맞았지만, 기존의 고통이 연장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이념이 없는 이는 무작정 ‘초토화 작전’에 밀려 큰넓퀘(동굴)로 피한다. 

영화의 시작은 제주도의 돌단으로 만들어진 부엌문이 열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윽고 희뿌연 연기사이로 나오는 군인이 바로 김 상사다. 김 상사는 부엌문을 열어 놓고 다시 연기가 자욱한 부엌을 통해 방으로 들어간다. 화면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지듯 제기들이 흐트러져 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제기들을 넘어 방으로 들어가는 한 군인이 고 중사다. 

이윽고 김 상사도 방안으로 들어가며 방안을 살핀다. 김 상사가 안으로 들어서며 자리에 앉자 김 상사의 뒤쪽으로 마침내 드러나는 널브러진 여인의 시체가 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앉는다. 그리고 옆에서 칼을 갈고 있던 고 중사에게 김 상사는 칼을 좀 줘보라고 한다. 그리고 손에 들고 들어왔던 배를 잘라 나누어주며 칼을 건넨다. 그리고 오묘하게 웃음을 던지는 김 상사의 얼굴이 서늘한 공포를 안겨준다. 그러며 화면은 눈 덮인 지붕위로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감나무를 비추며 둘이 배를 나누어 먹고 있는 소리가 오버랩 된다.

김상사와 고중사 뒤로 보이는 죽은 여인 -영화장면 중
김상사와 고중사 뒤로 보이는 죽은 여인 -영화장면 중

영화 “지슬”은 제주4·3사건을 다루었지만, 영화 본질은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고통을 크기를 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되었지만, 4·3사건에서 말하는 같은 이념과 사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도입부에 잠깐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을 뿐 역사적 사건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빨갱이’이가 싫다며 무참히 사람을 죽이는 가해자와 그 피해자만 존재한다. 그러나 가해가 말하는 ‘빨갱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높의 계급으로 김 상사가 등장한다. 그는 어쩌다 제정신인 사람으로 항상 약(마약)에 취해 있다. 

영화 속에 등장인물 김 상사를 당시 제9연대 정보참모 탁성록 대위를 상징한다. 영화 속에서 김 상사는 직접적인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당시 직접 사람을 처형할 수 있는 살인면허를 가지고 제주도로 왔던 탁성록은 아이러니하게도 음악가 출신이다. 탁성록은 해군군악대 창설에 참여했다가 국군 장교로 특채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까지 진주 논개 디지털문학관에 그가 논개를 노래한 음악이 실려 있다가 진주의 역사의식 문제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음악가 출신으로 너무나 잔인했던 탁성록은 희대의 살인귀로 알려지고 있다. 

탁성록이다. (사진=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
탁성록이다. (사진=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

모티브일 듯 여겨지는 실제 탁성록은 항상 마약에 취해 있었다. 사람을 무참히 살해해 ‘인간’이란 표현도 아까운 인물이었다. 제주도의 제9연대 정보참모로 왔던 탁성록의 잔혹성에 대한 증언은 너무나 많다.

"연대 정보참모가 탁성록인데 그 사람 말 한마디에 다 죽었습니다. 그 때 헌병에게 잡혀가면 살고, 탁 대위에게 잡혀가면 민간인이고 군인이고 가릴 것 없이 다 죽었습니다. "(당시 9연대 보급과 선임하사 윤태준 증언)

“탁성록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예쁜 여자들만 여러 번 바꿔가며 살았는데 나중에 제주를 떠나게 되자 동거하던 여인을 사라봉에서 죽이고 갔다. 그는 사형권을 가진 사람이었다.”(최길두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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