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슬”에 묻어나는 “제주 4·3사건”과 역사청산의 필요성 (2)-잔인했던 4월의 실체
영화 “지슬”에 묻어나는 “제주 4·3사건”과 역사청산의 필요성 (2)-잔인했던 4월의 실체
  • 김규용 기자
  • 승인 2020.04.3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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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사진

-초토화 작전

영화 초반에 한 젊은이가 총을 들고 산을 달린다. 그리고 산기슭의 좁은 구덩이에 자리를 잡는다. 이때 어디선가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면서 조금은 익살스럽게 대화를 이어간다. 이념과 사상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그저 폭력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대화가 오간다. 먼저 도망쳐온 만철은 군인에게 잡혀있다 가까스로 총을 훔쳐 도망 온 것이다. 대화 중에 동네 벽에서 뜯어왔다는 종이를 꺼내든다. 서로 읽어보라며 종이를 주며 글도 못 읽는다면서 면박을 주기도 한다. 무동이 ‘소개령’이라 읽으며 ‘초토화 작전’임을 보여주는 단서가 보인다. 그리고 가족도 함께 동굴로 피해야 된다는 대화가 오간다. 

이 “초도화 작전”은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한 UN의 결정으로 기폭제였다. 사건의 발단은 1947년 당시 제주도에는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부역하던 서북청년단이 응원경찰로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해 3월1일 민족주의민족회의가 제주도 각지에서 3·1절 기념행사를 열었다. 제주북초등학교에서 행사를 마친 사람들이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행렬이 미군정과 경찰서가 있는 만덕정 앞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한 어린아이가 가두행진을 구경하기 위해 길가에 나와 있었다. 이때 가두행진을 저지하기 위해 기마경찰이 말을 달리며 어린아이를 치었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친 기마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말을 달렸던 것이다. 이에 격분한 가두행진을 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경찰을 쫒으며 돌을 던졌다. 그러자 경찰은 겁을 먹고 경찰서로 말을 달렸다. 이때 쫓겨 오는 경찰을 발견한 경찰서에서 경찰서를 습격하는 것이라 오인하며 총을 겨누고 발포를 한 것이다. 이 발포로 근처에서 구경하던 어린아이와 젖먹이아이의 어머니가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이 둘을 포함해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자 격해진 당시 상황을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말리며 당일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은 명확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도망친 사람들이 소개령을 읽고 있는 장면이다.-영화장면 중
도망친 사람들이 소개령을 읽고 있는 장면이다.-영화장면 중

그렇지만, 이를 미군정이 무시하면서 제주도에 있던 민과 관을 포함한 직장 95%가 파업에 동참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를 무시하며 당시 미군에게 아첨하며 당시 경무부장이 되었던 조병옥에게 사건처리를 맡겼다. 그리고 제주에 온 조병옥은 총파업사건과 3·1일 경찰서 발포사건을 제주도민의 폭동이라고 호도했다. 그러면서 폭동의 책임자를 검거한다며 서북청년단에게 명령하여 1년간 도민 2,500여명을 검거했다. 그리고 고문과 학대, 치사를 통해 제주도민들에게 반감을 사고 있었다.

1948년 3월 초에 3명의 젊은 청년들이 검거되며 심한 고문과 학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남조선로동당의 총책이었던 김달삼은 잔혹한 짓에 못 이기며 당원회의를 거쳐 무장봉기를 결정한다. 그리고 4월 3일 새벽 2시를 기해 일제히 350여명의 당원들이 경찰서 12곳과 서북청년단 숙소, 그리고 우익인사들의 집을 공격했다. 이들의 명분은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며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공격으로 인해 경찰 4명과 8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남조선로동당은 이 사건으로 인해 이들도 결코 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게 됐다. 

이 때문에 제주도민 학살사건이 제주 4·3사건이라 부르지만, 이 사건과 도민을 학살한 사건이 제주 4·3사건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는 것을 옳지 않다. 왜냐하면 제주 4·3사건이라 명명하는 것은 남조선남로당이 우익단체를  가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시발점으로 제주도에 피바람 닥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제주의 무고한 도민을 학살한 것이 이와 결이 다르다. 그렇기에 제주의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당한 것은 제주 4·3으로 얽어매는 것은 오른 판단이 될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이를 제주4·3사건이라 명명해버린다면, 피해자들이 마치 가해를 먼저 했던 것으로 오인되기 때문이다.
  
1948년 4월 3일 경찰과 우익인사가 공격을 당하자 미군정은 경찰력을 더 강화한다. 그렇지만 결국 5월 10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주도 3곳의 선거구 중 2곳이 불타고 만다. 그 결과로 투표수 과반수 미만으로 2곳에서 선거가 실패한다. 결국 전국 200여개 선거구에서 20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어야 했으나 198명만 선출됐다. 이후 미군정은 6월에 재선거를 실시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하고 만다. 이후 이승만은 7월 24일 대통령으로 선 취임하며 제주를 사상이 불순한 ‘붉은 섬’으로 낙인찍었다. 그리고 1948년 11월 군과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에게 ‘초토화 작전’이란 명을 내린다. 

오라리방화사건 항공사진(사진=제주4.3진상조사)
오라리방화사건 항공사진(사진=제주4.3진상조사)

당시 포고문의 내용은 ‘섬 해안선을 기준으로 5km 안쪽에 거주하면 무장대로 인식하고 무조건 사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폭정에 힘들어했던 주민들은 경찰과 군의 말을 곶이 들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군과 경찰은 사람들에게 한 번의 설득도 없이 결국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때 가장 잔악하게 활동했던 인물들이 바로 서북청년단이다. 이들은 미군정과 이승만을 등에 업고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을 다니며 잔인한 행동을 하였다. 김구 선생을 암살한 범인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소속이었다. 안두희도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도 형을 산지 1년 6개월 만에 사면됐다. 제주도 학살사건은 1954년 9월 21일까지 약 6년간이나 지속됐다.  

영화로 다시 돌아와 무동이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머니와 식구들을 피신시키려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어머니는 “나 안 간다. 나까지 가면 짐 되서 안 돼. 아이엄마 몸도 무거운데...” 그러면서 너나 빨리 식구들과 피신하라 한다. 그러자 답답해진 무동이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요.”라는 말에 “이럴 때고 저럴 때고 간에 너희들이나 얼른 가라”며 “왜놈들 있을 때도 공습이니 뭐니 하면서 이리 숨고 저리 숨고 했는데 그때도 별일 없었으니 걱정 말고 서둘러 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거나 가지고 가라”며 지슬(감자)를 챙긴다. 그러자 무동은 “지금 지슬이 문제입니까?”하며 자리를 뜨며 장면이 바뀐다. 

오멸 감독은 이 장면에 어머니와의 대화를 넣었던 것은 아마도 당시 상황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을 대표한 것 같다. “그때도 별일 없었으니...”라는 말을 곱씹어보자. 어머니는 일본이 물러가고 내 나라에서 뭔 일이야 있겠냐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상이나 이념과는 전혀 동떨어지며 힘들지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국민이었던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저런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죽었던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저런 사람들을 죽여야 했던 당위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김상사가 움직이는 발을 발견한다.-영화장면 중
김상사가 움직이는 발을 발견한다.-영화장면 중

-신위(神威)

이렇게 시작한 영화는 제사 형식을 빌려 ‘신위(神威 ; 영혼을 모셔 앉히다)’로부터 시작된다. 영화 촬영 장소인 돌문화공원의 팽나무아래에서 벌거벗은 군인이 얼차려를 받고 있다. 그리고 김 상사는 볼일을 보다 우연히 자신의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며 발이 움직이는 것이 목격한다. 그리고 발이 움직이는 장면을 무심히 바라보다 백 중사에게 그“잘 하자”라고 가볍게 말한다. 그러자 백 상사는 “네”라고 대답하며 총을 보관한 장소로 와 총을 한 자루 집어 든다. 그리고 화면은 총을 둔 곳을 비추지만 들려오는 한 발의 총성은 그를 쏘았음을 암시한다. 김 상사의 무심하게 던진 한 마디에 죽어가는 사람에게 다시 총을 쏘는 장면은 김 상사의 힘과 권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앗아가는 비정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장면이 바뀌며 김 상사가 팽나무 아래로 온다. 그리고 한 겨울 추위에 벌거벗고 추워 떨고 있는 박 일병을 발견한다. 자신이 폭도를 한명도 잡지 못한 것에 대해 얼차려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명령한 내용을 기억 못하고 있다. 엉뚱하게 백 상병이 자신이 그랬다는 말로 넘어가지만, 평소에 그가 약에 취해 자신의 행동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잡으면 되잖아”라고 말하며 백 상병의 뺨을 때린다. 이후 백 상병은 물동이에 물을 담아와 벗고 있는 박 일병에게 뿌리며 얼차려가 끝이 난다. 이 상황은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인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벌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박일병과 신병 동수가 대화를 하는 장면-영화장면 중
박일병과 신병 동수가 대화를 하는 장면-영화장면 중

그리고 박 일병이 옷을 입고 군화를 신는 장면에서 신병 동수가 다가온다. 그러자 박 일병은 “너 사람 죽일 수 있어?”라며 묻고 신병 동수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박 일병이 동수에게 “여기 있으면 죄 없는 사람들 다 죽여야 돼.”라고 대사로 죄 없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감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죄 없는 민간인 학살에 반발한 군인들이 무장대에 가담하는 사건도 있었다. 당시 제9연대장 김익렬은 무장대와 화평정책으로 사건을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군정에 의해 화평정책을 주장하는 김익열이 해임되고 박진경이 연대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매우 잔혹한 정책을 통해 결국 부하에 의해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군인들의 살벌한 분위기와는 별개인 것처럼 동굴에 숨어든 사람들은 너무도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진다. 원식이 삼촌은 집에 두고 온 돼지 밥을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살벌한 분위기를 인식하지 못한 채 집에 가서 돼지 밥을 주고 와야겠다고 일어서려 한다. 그러자 동굴안 사람들이 만류하며 금방 상황이 끝나고 내려갈 것이라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이윽고 순덕어머니가 순덕아버지를 책망하며 잔소리를 해댄다. 전날 동굴을 찾지 못하고 산기슭에서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어보니 순덕이 학교로 책을 찾으러 내려간 것이다. 그래서 만철과 상표에서 순덕을 찾아오라며 부탁한다.  
 

순덕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박일병-영화장면 중
순덕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박일병-영화장면 중

신묘 (神墓)

신묘(神墓 : 영혼이 머무는 곳)가 시작된다. 원래 제사용어로는 신묘(神廟 : 신을 모시는 곳)라 하여 ‘사당 묘’ 자를 쓴다. 어떤 의미를 주고 싶었던지 감독은 ‘무덤 묘’자를 썼다. 감독은 이것을 알고 치환하여 사용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무덤조차도 갖지 못한 희생자들의 영혼에게 무덤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기자와 오멸 감독의 전화 인터뷰에서 ‘무덤 묘’를 쓴 이유에 대해 물었다. 감독은 “제주도 자체가 무덤이잖아요.”라며 제주도 자체를 커다란 무덤으로 보고 있었다. 일부러 ‘무덤 묘’를 사용하며 제주도 학살의 역사에 대해 꼬집은 것이었다. 겉으로 아름다운 제주의 섬이 사실은 학살로 인한 공동묘지였던 것이다. 이 ‘묘’자의 의미는 설명을 듣지 않은 관객이라면 간과하거나 의미 없이 제사형식의 일종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신묘의 첫 장면은 박 일병이 순덕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그리고 쫒아오는 군인들이 어서 쏘라는 말에도 결국 순덕을 쏘지 못한다. 그 순간 순덕은 도망치지만 결국 붙잡혀 끌려간다. 이때 순덕을 찾으러 왔던 만철과 상표는 순덕이 끌려가는 것을 목격한다. 군인에게 잡혀온 순덕은 처음 고 중사에게 능욕을 당한다. 고 중사는 이북에서 공산주의자에게 핍박을 받은 사람이다. 감독은 ‘서북청년단’을 염두에 두고 인물 설정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서북청년단은 북에서 쫓겨 온 청년들이 만든 단체다 이들은 서북청년단을 결성하고 갖은 잔인한 짓을 다했던 단체다. 영화에서 고 중사는 가장 잔인한 면을 보이는 캐릭터다. 처음에 칼을 갈고 있었던 모습이나 영화 속에서 가장 잔인함을 보여주며 서북청년단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상병에게 따져묻는 박일병-영화장면 중
백상병에게 따져묻는 박일병-영화장면 중

장면은 백 상병이 부엌에서 대출 거터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이때 신병 동수는 박 일병에게 밥을 줘도 되냐고 백 상병에게 묻는다. 백 상병은 동수를 발로 걷어차며 “밥쳐 묵으려면 폭도들 목을 따오라고 이 xx들아”라며 소리친다. 이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박 일병이 백 상병을 똑바로 쳐다보며 “저 여자도 폭도입니까?”라고 따져 묻는다. 이는 당시 무고한 사람임을 알면서도 폭력을 행한 것과 특히 아녀자들에게 몹쓸 짓을 한 것에 대한 감독의 목소리 인듯하다. 당시 서부청년단은 무장대에 가담한 남편이나 오빠를 대신해 아녀자들에게 온갖 못할 짓을 다했다. 이를 고발하듯 감독은 박 일병이 백 상병에게 대들 듯 묻는 말로 대신 한 것이다.

장면이 바뀌고 고 중사가 칼로 어린 순덕의 벗겨진 몸 위로 칼을 살 갓 위로 서서히 스치며 위협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너 같은 빨갱이 새끼들이 제일 싫어. 너 같은 빨갱이들은 씹어 먹어도 내 맘에 안차”라고 말한다. 그리고 화면은 순덕이 고통을 당하는 듯 소리만 들려준다. 감독은 직접적이진 않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했다. 이러한 방법은 영화 전반적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잠시 후 김 상사가 순덕이 있는 헛간에서 정길을 밖에 세워두고 어린 순덕을 능욕한다. 이때 밖에서 물을 들고 있던 정길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리고 화면이 크로즈업(close up)되며 정길이 서서히 고개를 들다. 정길의 결의에 찬 눈이 화면에 머문다. 

박일병과 동수가 얼차려를 받고 있다.-영화장면 중
박일병과 동수가 얼차려를 받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영화장면 중

백 상병에게 대들었던 이유로 박 일병과 신명은 얼차려(일명 ‘원산폭격’)를 받는다. 이때 얼차려를 받으며 나누는 둘의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 신병 : 그나저나 아까 그 여자 그냥 쏴 버리지 그랬냐?
박 일병 : 그러게 그냥 쏴 버릴걸... 아냐 그래도 사는게 더 나아
신병 : 야 저게 사는 거냐? 차라리 죽는 게 더 낳겠다.
박 일병 : ㅆㅂ 니가 죽어봤어?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 그래도 사는게 더 나을지도 몰라. 폭도는 무슨...
신병 : 폭도가 있긴 있는 거냐?
-중략-
박 일병 : 동수야 우리 같이 탈영하자.
신병 : 탈영?
박 일병 : 다른 부대도 많이 했대. 우리 같이 탈영하자.
신병 : 잡히면 사형이야.

감독은 당시 군인과 경찰들이 양심의 가책을 많이 받고 있을 만큼 잔혹한 현실을 말했다. 실제 당시 경찰들 40여명이 학살과 만행을 보다 못해 무장대에 합류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여수 제14여단에게 내려진 제주토벌 명령에 군인 2,000여명이 반기를 들며 순천까지 점령한 사건이 있었다. 여순사건이다. 그러나 결국 여·순에서도 정작 반기를 든 군인들보다 민간인 수천 명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여순사건은 군인들이 반기를 든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던 제주학살사건과 결을 같이하고 있어 역사적 재조명이 꼭 필요한 사건이다. 감독은 이 대사로 당시 시대적 사건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메타포(은유)적인 표현을 써 활용했다.

겁탈당하고 있는 순덕의 밖으로 정길이 서있다.-영화장면 중
겁탈당하고 있는 순덕의 밖으로 정길이 서있다.-영화장면 중

신병 동수는 늦은 밤 잠자는 박 일병을 깨우고 굶고 있었던 박 일병에게 감자를 전해준다. 그리고 깊은 밤 헛간에 있던 순덕에게 박 일병이 찾아간다. 이때 순덕을 찾으러 왔던 만철과 상표가 담장 밖에서 주위를 살피고 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들려오는 총성에 모두 놀라며 자고 있던 군인들이 깨어나며 일제히 경계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군인들은 총성의 근거지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군인이 헛간으로 다가가자 총이 발사된다. 이때 백 상사가 헛간 돌담구멍으로 총구를 넣고 순덕을 겨냥한다. 그리고 순덕이 두려움에 울면서 사살된다. 그리고 화면에는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 순덕과 옆에 총에 맞은 박 일병이 누워 있다. 화면은 쓰러진 박 일병의 손 근처에 머물며 옆에 떨어진 지슬(감자)을 비춘다. 설명은 없지만, 박 일병이 순덕에게 감자를 전해주려 했음을 암시했다.

이때 담장 밖에 있던 만철은 죽은 것이 순덕이 아니라며 상표를 데리고 동굴로 향한다. 사실 순덕을 찾으러 왔던 만철은 순덕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철은 죽은 사람이 순덕이란 것을 알고 있다. 사랑했던 사람이 죽은 슬픔과 울분을 가슴으로 삭이며 울음을 억지스럽게 참는다. 그리고 동굴로 뛰어가는 언덕 밑으로 벌거벗고 죽어있는 순덕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마치 언덕을 봉분으로 하여 순덕의 주검을 언덕 밑에 위치시켜 놓는다. 이처럼 감독은 신묘에서 ‘사당 묘’가 아닌 ‘무덤 묘’를 쓴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암시했다. 그리고 감독은 비단 순덕만이 아니라 당시 학살로 희생당한 희생자를 순덕으로 치환하여 무덤을 만들어 준 것이다.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영화장면 중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영화장면 중

오멸 감독은 영화 속 많은 부분을 연기와 암흑으로 표현하며 내용을 상징화했다. 보이지 않지만 마치 본 것처럼 뇌리에 남도록 형상화 한 것이다. 이러한 형상화가 극대화 된 곳은 사람들이 살고 있던 집을 불태우고 학살하는 장면에 돋보인다. 짙은 안개와 같은 연기로 군인들이 뛰고 이어 보이는 장면으로 실상을 직감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예는 연기 속에서 횃불을 들고 들어서는 군인, 총을 겨누며 화면에 등장하는 군인, 칼을 들고 뒤따르는 군인 등의 장면을 통해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소리와 사람이 살해되는 잔혹한 장면은 없다. 그러나 영화는 무척 끔찍한 느낌을 주며 몰두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은 고 중사가 집에 있던 민간인을 직접 찌르는 장면이 전부다. 고 중사는 영화 도입부부터 칼을 갈며 잔혹성을 암시했다. 민간인에게 이를 악물며 찌르며 갑자기 홱 하고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고 중사의 얼굴은 피범벅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섬뜩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후 장면에 고 중사가 당시 서북청년단을 형상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독은 고 중사를 제일 무서운 캐릭터로 만들며 서북청년단의 당시 잔인했던 악행을 고발한 것이다.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대통령에게 부역했던 서북청년단은 도민들에게는 탁성록과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고중사의 살해장면-영화장면 중
고중사의 살해장면-영화장면 중

이하는 당시 서북청년단의 악행에 대한 증언이다.

그 날 지서에서는 소위 ‘도피자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총살터로 끌려갈 적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요. 이윤도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윤도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습니다. 도평리 아기들이 그때 죽었지요.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꼴을 보니 며칠간 밥도 못 먹었습니다" (외도지서 특공대원 고치돈 증언)

"서북청년회 출신 정 주임은 너무도 잔인했어요. 여자들 옷을 벗겨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도 다 봤습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날 여자들의 옷을 벗긴 채 망루 위에 오랜 시간 앉혀 놓았습니다. 난 벌벌 떠는 그들이 불쌍해 코트를 벗어 덮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삼양지서 옆 밭에서 남자고 여자고 수십 명씩 잡아다 죽였습니다. 차라리 총으로 쏘아 죽일 것이지 그 마을 대동청년단원들에게 창으로 찌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김제진 제주경찰학교 10기생 증언)

"정기보고를 하러 지서에 갔더니 남편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한 명이 끌려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 주임은 웬일인지 총구를 난로 속에 넣고 있더군요. 그리고는 젊은 여자를 홀딱 벗겼어요. 임신한 상태라 배와 가슴이 나와 있었습니다. 정 주임은 시뻘겋게 달궈진 총구를 그녀의 몸 아래 속으로 찔러 넣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정 주임은 그 짓을 하다가 지서 옆 밭에서 머리에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습니다. 우리에게 시신 위로 흙을 덮으라고 했는데 아직 덜 죽어있던 상태라 흙이 들썩들썩 했습니다." (고봉수 대한청년단 분대장 증언) 

어둠으로 가득한 화면에 동네사람들의 모습이 떠 다닌다.-영화장면 중
어둠으로 가득한 화면에 동네사람들의 모습이 떠 다닌다.-영화장면 중

-음복(飮福)
      
영화는 이제 음복(飮福 : 영혼(귀신) 남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전개된다. 음복의 첫 장면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깨에 총을 맞은 신병 동수와 옆에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앉아있다. 그리고 동수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만철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이때 어린아이가 연신 손을 흔들어대며 동수에게 총을 쏘려는 만철을 말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동굴 사람들이 만철에게 다가오며 만철에게 뭐하냐고 묻는다. 그러나 대꾸도 하지 않는 만철은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긴다. 순간 무동은 총을 잡아채며 아래로 내린다. 그렇지만 총은 고장으로 격발이 되지 않는다. 그러자 사람들은 미제도 고장 나냐며 장난처럼 말을 한다. 영화에서 단 한마디도 없지만, 당시 해방군이라 좋아했던 미군에 대해 점령군으로 활동하자 이 한마디로 야유 섞어 비난한 표현으로 보인다.

동굴로 장면이 바뀌며 조금은 경쾌한 음악과 함께 동굴 안에 옹기종기 앉은 사람들이 작게 보인다. 그리고 검은 화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을 조금 밝게 표현하며 화면을 둥둥 떠다닌다. 그리고 처음엔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시작하여 점점 대화가 들리기 시작한다. 감독은 이러한 기법을 통해 영화에 대해 관객들에게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점점 커지며 화면에 정착된다. 이윽고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나온다. 이때 무동은 “군인이라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라며 동수가 동굴에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자 만철은 “무슨 소리예요. 지금 군인들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데... 저 군인 빨리 죽여야 해요.”라고 주장한다. 이때 다른 사람들이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지펴진 장작불을 끄고 자자고 한다. 그러면서 군인에 대해 더 이상 언급을 피한다. 차마 감독은 아이와 어머니를 살렸던 군인에게조차 결국 면죄부를 주지 않은 것이다.   

제주도에서 찍어온 도틀굴 사진= 김보관 기자
제주도에서 찍어온 도틀굴 사진= 김보관 기자

다시 동굴 안에서는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야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이들과 여자들이 살수 없다며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만철이 망을 보며 발견했던 군인들이 산 쪽으로 갔다며 무동에게 말한다. 무동은 이 말을 듣고 어머니를 모시고 온다며 집으로 향한다. 이때 화면은 피범벅이 된 얼굴로 방에서 나오며 마루에 걸쳐 않는다. 그리고 침을 탁 뱉으며 한숨을 쉰다. 그리고 살짝 뒤를 돌아보자 얼굴에 피가 튀어 쓰러진 한 할머니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네는 나이가 몇이나 됐나?”라며 고 중사에게 물어온다. 무동의 어머니다.

이 말에 고 중사는 “알아서 뭐하게요?”라며 되물어온다. 그러자 무동 어머니는 “나도 자네 나이만한 아들이 있는데...”라며 힘없이 말한다. 고 중사는 “그래요. 내 어머니도 빨갱이 손에 가셨소.”라며 표정없이 대꾸한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고 중사를 통해 “내 어머니도...”라는 표현을 쓰며 역설적 암시를 했다. 자신이 칼을 찌른 무동어머니에게 “내 어머니도 빨갱이에게 죽었다”라며 결국 자신도 빨갱이라는 것을 메타포적인 표현을 한 것이다.  결국 감독은 여기서 당시 ‘빨갱이’이라며 학살당했던 사람들이 사상적이나 이념과는 상관없는 민간인이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무동의 어머니가 고중사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영화장면 중
무동의 어머니가 고중사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영화장면 중

그리고 이어진 무동 어머니가 던진 한 마디는 민간인의 죽음을 암시하며 의미심장하다. 무동 어머니는 곧 죽음을 예감한 듯 거친 숨을 내쉬며 “빨갱이가 뭐이기에”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는 아무 죄 없는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당시 상황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동의 어머니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처음 산으로 피하자던 무동에게 일제강점기 때도 살아남았다며 광복을 믿었다. 그러나 광복이 되자 사상적인 이분법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인물이 된다. 그러면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사상적 이분법을 들어냈던 당시 권력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무동어머니와 대화하던 고 중사는 부하에게 “여기 불 좀 놔 드리라우”라며 지시한다. 그리고 무동어머니는 방안에 흩어져 있던 감자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끓어 안는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라며 자식의 안위를 걱정한다. 
  

타버린 집에서 어머니를 발견하며 오열하고 있는 무동-영화장면 중
타버린 집에서 어머니를 발견하며 오열하고 있는 무동-영화장면 중

무동이 다 타버려 기둥만이 창처럼 위태롭게 솟아있는 집에 도착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직감한 무동은 흐느껴 울며 집으로 서서히 들어선다. 그리고 타버린 바닥에 어머니의 주검을 발견하고 슬피 운다. 가슴에 얽혀져 풀어지지 않는 슬픔을 담고 어머니의 주검에 절을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주검을 수습하기 위해 옷깃을 들추자 잘 구워진 감자가 굴러 내린다. 무동은 더욱 흐느껴 울기 시작하며 화면이 갈무리 된다. 그리고 동굴로 돌아온 무동은 어머니의 죽음을 차마 알리지 못한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가슴으로 울어대며 어머니가 죽으면서까지 감싸않았던 잘 익은 감자를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며 ‘음복’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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