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규 시인 인터뷰] 너의 울음 소리가 밀려왔다
[최백규 시인 인터뷰] 너의 울음 소리가 밀려왔다
  • 문종필 문학평론가
  • 승인 2020.05.1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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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일시 : 2020년 3월 
참석자 : 문종필(인터뷰어, 문학평론가), 최백규(시인)

 

최백규 시인의 시를 읽으면 끝과 끝을 떠올리게 된다.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가 1954년 7월 뉴욕에서 찍은 아래의 사진도 그중에 하나다. 젊은 두 남녀가 손을 살포시 쥐고 있는 이 사진은 “네 손이 닿지 않은 곳은 다 묘지였다 / 죽어서도 너와 계속 살았다”(「묘적계」)라는 시인의 발언과 끝에서 만난다. 물론 이 ‘순간’이 늘 항상 변하지 않고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백규 씨의 시 속 화자들은 이 계절에 없는 누군가를 평생 잊지 못해 심각할 정도로 아파한다. 이로 인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무의식적으로 쳐다본다. 화자는 “채 짙거나 마르지도 못한 화초”(「유체」)로, 때론 “주머니 속 잔돈”으로, 부르튼 입술을 어루만지며 살아간다. 그 원인을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희고 뜨거운 밥상을 수백 번 물릴 때까지 한 줄도 그대를 잊지”(「해적방송」) 못하는 화자의 관성(정서)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를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시인에게 당신은 “손을 뻗으면 닿을”(「처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에는 닿을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백규 씨는 ‘단절’을 경험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생기 있게 삶을 유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러한 습관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시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천국과 지옥과 삶과 죽음의 이미지들은 필연처럼 느껴진다. 

백규 씨는 20대의 젊은 시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평자는 요즘 유행하는 청춘 담론을 끌고 와 그의 뒤틀림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프레임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는 끊어짐에 대해 논하고 있으니 말이다. 단절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기도 해서 우리는 손쉽게 그에게 귀를 열게 된다. 중요한 것은 듣는 과정 속에서 공감과 연민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열리지만 즐겁다(?)는 것이다. 그는 흔한 것을 흔하지 않게 노래하는 재주가 있다.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이 힘이 그의 첫 시집을 오래도록 지켜줄 것 같다. 아픈 상처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문종필: 최근에 동료들과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를 출간하셨어요. 백규 씨의 시 「해적방송」의 한 구절을 빌려와 시집 제목을 정하셨는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백규: 동인지는 동인을 만들기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어요. 여러 이유로 무산되다 이번에 내외적인 타이밍이 잘 맞아 최선의 그림이 완성되어 다행이라 생각해요. 출판사에서 시집 형태로 나오는 게 결정된 후 가장 먼저 회의했던 사안이 제목이었는데 수십 개 후보 중 인쇄 직전까지 정하지 못하다 마지막에 선정되었어요. 그런데 결국 첫 회의 때 김언 선생님께서 시집 전체에 그리움의 정서가 깔려 있다며 제안해주신 제목으로 하게 되었네요. (웃음) 저희는 자전적인 색채가 강한 시를 많이 쓴다고 생각하는데 예술 하는 20대가 겪는 일들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잖아요. 동인의 말에도 적었듯 어둠 속에서 찰나의 밝은 것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만든 시집이에요. ‘뿔은 미래를 지향하는 창작동인입니다’라는 슬로건도 마찬가지로 거창한 포부라기보다 현재 이 순간을 잘 살아남자는 의미가 강해요. 그런 연장선에서 저는 시간이 흘러도 간절하고 힘들었던 지금의 우리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제목을 받아들였는데 아마도 멤버들은 다르게 생각할 거예요. (웃음)

문종필: 동인 시집 제목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저도 동료 시인들에게 가끔 시집 제목에 얽힌 미담을 많이 듣게 돼요. 카카오톡 투표 프로그램을 통해 시집 제목이 정해졌다는 이야기,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른 출판사 사장이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단숨에 제목이 정해졌다는 이야기, 별 신경 안 쓰고 정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었다는 이야기 등등. 저의 경우는 최근 어느 시인의 시집 해설을 쓰게 되었는데 20개 정도의 시집 제목을 보내주며 어떤 것이 좋겠냐며 물어보기도 했어요. 예외도 있겠지만 시인들이 시집 제목을 정할 때 많은 고심을 하는 것 같아요. 곧 출간될 시집에 대한 바람이 투영된 것이니 당연히 기분 좋은 상상이겠죠.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백규 씨께서 ‘뿔’ 동인이 지향하는 지점을 설명하면서 “거창한 포부라기보다는 현재 이 순간을 잘 살아남자”는 의미가 강하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이 ‘순간’을 ‘잘’ ‘살아남자’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에서 잘 살아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백규: 아무래도 저에게는 첫 책이다 보니 멤버들이 저의 시에서 제목이 나왔으면 좋겠다 배려해주기도 했어요. 언제나 고맙게 생각해요. 이 순간을 잘 살아남자는 건 말 그대로 먹고사는 문제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는 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동인 멤버들은 각자 동거인과 살거든요. 이러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부분이 필요한데 걱정과 낙관이 동시에 존재해요. 어린 예술인으로서 멘탈적인 부분을 관리하기도 어렵고요. 평소에도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힘들지 않은지, 문제는 없는지 안부를 물으며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잘해보자 다독여줘요. 셋 중 누군가 슬럼프일 때 항상 곁에 내 편인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축복이에요. 얘네가 없었다면 저는 절대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인터뷰를 읽고 계시는 분들 모두 최지인, 양안다 시인 많이 사랑해주세요. (웃음)


문종필: 백규 씨가 쓰신 여러 시편 속에서 ‘당신’의 부재를 자주 확인할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있던 세상에서 나만 살아도 될까 그곳에서 이곳을 보면 네가 홀로 너무 외로워질 텐데 괜찮을까”(「유해」)라는 구절은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와의 이별이 쉽지 않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어요. 시적 화자가 ‘당신’을 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어요. 백규 씨에게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최백규: 등단 당시 이민호 선생님께서 ‘그의 시를 관통하고 있는 화두가 있다면 죽음이 아닌가.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형도의 시를 떠올렸다. 계륵처럼 뱉지도 삼키지도 못했던 기형도의 죽음 이미지 다발이 최백규의 시에서도 똑같이 징그럽게 똬리 틀고 있다.’라고 평해주신 게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그 말대로 저는 20대를 거쳐오며 주변의 죽음들을 수없이 목도했어요. 제일 가깝게는 아버지께서 몇 년간 투병하다 돌아가시고 친구들마저 세상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억들이 ‘너’ 혹은 ‘당신’의 이름으로 시에 스며든 것 같아요. 이제 와 돌아보면 죽음은 삶의 문제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는 유일한 기제잖아요. 미래에 닥칠 분명한 사건이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가능성이지만 모두가 두렵고 슬퍼하는 죽음의 역설을 빌려 세계와 인간 사이 갈라져 버린 아득한 간극을 이어주고 싶어요.

문종필: 이민호 선생님께서 백규 씨의 시를 보며 기형도 시인을 떠올리셨군요. 아버지와 친구들의 죽음을 통과하시기도 하셨고요. 이러한 경험이 백규 씨의 살갗에 붙어서 ‘너’와 ‘당신’으로 변주되는 것 같아요. 백규 씨의 첫 시집을 아직 읽어 보지 못했지만 이 에너지가 첫 시집을 세게 움켜잡을 것 같아요. “죽음의 역설을 빌려 세계와 인간 사이 갈라져 버린 아득한 간극”을 이어주고 싶다는 말은 무엇인가 주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백규 씨의 여러 시편 속에서 등장하는 화자는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어요. ‘의도’와 ‘드러남’이 수학적으로 맞아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저는 백규 씨의 이 행위를 오래도록 응원하겠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백규 씨의 「기우」를 읽어보도록 할게요. 

 

심장이 흐린 날이다

길가에 죽은 고양이에도 희망이 없다 내장 뜯는 쥐가 있다

빈방에 썩고 싶지 않아서
철새 무리가 솟구친 자리만 한나절 되감는다
열을 앉히듯 수국이 헐거워져도 누구 하나 비참하지 않도록
해가 높고
가축들이 망루를 지나 목초지로 가로지를 적에는 발바닥에 묻은 모래나 털고 일없이

기다린다

세상의 모든 고아들이 한 식탁에 모여 앉아 식은 밥알 씹듯
사람들은 한 아름의 치욕과 허탈을 삼킨다

상처가 벌어질 때마다 아득해지는 이곳과 천국의 간극

밤에 나갔다가 낮에 쌀을 사 들고 돌아오는 골목에서 매일
바람이 죽어가는 것을 본다

꽃을 삼켜도 여름은 울지 않았다

 

-「기우」 전문 

 


문종필: 두 번째 질문과 만나는 질문이기도 할 텐데 백규 씨의 여러 시편에서 종교적인 파편을 찾을 수 있어요. 묵직한 방식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시집 여러 곳에서 이 흔적과 만날 수 있었어요. 백규 씨에게 종교적인 ‘흔적’ 무엇인가요? 

최백규: 어릴 때부터 죽음이 너무 궁금했어요. 죽음은 하나인데 왜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 이후는 저렇게 많은지 항상 의문을 가졌어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미션스쿨 고등학교와 기독교 재단 대학교로 진학했고, 군대에 있을 때 잠시나마 군종병 비슷한 일을 맡은 적도 있어요. 그 과정에서 여러 종교 서적만 접하다 막상 실제 죽음을 마주하고 나니 ‘사실 이 책을 쓴 사람들도 잘 모르면서 어차피 다들 모르니까 쉽게 말하는구나’ 하고 삐딱하게 받아들여졌어요. 종교와 현실 사이의 모순을 마주하며 ‘왜 신은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부 죽이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일까’ 같은 반발심도 생겼고요. 결국 신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줄 것이 죽음밖에 없다면 그 전에 내 시 속에 모두 살려놓겠다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문종필: “결국 신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줄 것이 죽음밖에 없다면 그전에 내 시 속에 모두 살려놓겠다”라는 백규 씨의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언어는 결국 물질성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백규 씨의 말처럼 어떤 흔적은 언어를 통해 영원히 소멸되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며칠 전 1902년생인 김소월 시인의 시를 읽었는데 이 사람은 여전히 젊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몽상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백규: 저는 제가 겪은 일밖에 못 적거든요. 데뷔 초에는 약점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대부분의 예술에서 명작이라 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작품에 얼마나 담겨 있는지가 중요하잖아요.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노력해 여러 선배들처럼 죽고 나서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오래 살아 숨 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문종필: 백규 씨는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백규: 사라져가는 것들을 저만의 방식으로 붙잡아두고 싶어요. 그렇게 적힌 제 시들은 ‘죽음’이라는 대주제로 정리할 수 있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마주칠 수밖에 없는 죽음이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은 청춘들이 사랑하는 방식으로 시 창작을 이어나가고자 해요. 청춘과 사랑이 빛나는 이유는 그것이 죽음이라는 벽까지 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문종필: 누구라도 마주칠 수밖에 없는 죽음, 그 속에서 살아남은 청춘들이 사랑하는 방식에 무게를 두셨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신체가 낡아가고 있다고 느끼는데, 마음만큼은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청춘은 생물학적인 나이와는 상관없는 거겠죠? (웃음)  

최백규: (웃음) 물론이죠. 저도 죽을 때까지 청춘이고 싶어요.

 


문종필: 이곳의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창작행위를 통해 ‘쓸모없음’이 ‘쓸모 있음’으로 변주되는 것 같기도 해요. 「비행」 「천국 흐리고 곳곳에 비」에서는 강한 힘이 느껴졌어요. 백규 씨에게 땅을 밟고 있는 이곳의 현실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백규 씨께서 생각하시는 동안 저는 「비행」을 읽어보기로 할게요. 

 

목련도 모가지를 분지르는 사춘기였다

너는 웅크리고 앉아 꽃 덤불이나 뒤적거리며 홀로 우거진 목련나무를 견디고 있다

버려진 관에 스스로 들어가는 나를 구경했다 마른 팔과 다리는 가지런히 접어 넣기에 알맞아 보였다 새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죽어갔다 다가가 보니 입안 가득 빛을 피운 미래가 누워 있었다

언젠가 이 낙화가 멈추면 우리도 영영 추락할 거라 예감했다

갈 곳 없는 학생들은 빈 공사장으로 모였다 그늘에 널린 몸을 아무도 해치지 못하도록 끌고 왔다 친구들은 멀리 버리거나 태우자 했다 시들어가는 식물의 뿌리를 대하듯이
나는 서투른 우리를 모아 올린 대성당이라 칭했다 그곳에서 짧은 기도를 청하고 오지 않는 종말과 천사를 기다렸다

이대로 마지막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잊어버리지 말라는 인사가 혀에서 떨어지지 않아 목이 말랐다

어깨에 쌓인 첫눈을 털어내는 온도와 닮은 이름을 덥히면

꿈에서
헤집어진 늑골엔
머릿속이 뒤흔들릴 정도로 화사한 4월이 펼쳐졌다

희박한 빗소리로 울고

선잠에서 벗어나듯 아침이 오고 있었다 공터를 돌아다니며 소리쳐 보았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목련도 관도 공사장도 그대로 있는데 세상에서 나만 사라진 듯했다 몽롱한 채로 열꽃의 잔해를 털었다

너는 타오르는 목련나무를 맹렬히 노려보고 서 있다

너무 뜨거워 설핏 녹아버릴까 봐 겁이 난다 캄캄한 동굴 같은 눈으로 나를 전부 집어삼킬 것만 같다 죄악감을 태우는 냄새가 번지기 시작한다 흰 날갯짓이 돋아나듯이

누가 계속 올라와야 할 시간이라 부르고 있어서

목련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 나갈 것이다

 

-「비행」 전문 

 

최백규: 창작행위를 통해 ‘쓸모없음’이 ‘쓸모 있음’으로 변주되는 것 같다는 말이 와닿네요. 저의 예술관도 비슷해요. 시 또한 현실을 현실이 아닌 것으로 적는 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 현실이 아닌 것만이 다시 현실을 바꿀 힘을 가질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누군가는 쓸모없다고 말하는 예술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아닐까요? 반드시 쓸모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비행」 등 앞서 말씀하신 시들은 Lorde의 데뷔 앨범 『Pure Heroine』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Team」이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하는데 뮤직비디오나 ‘And you know, We’re on each other’s team’ 같은 가사들이 제 시에서도 구심점이 되어주었어요. 제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예술을 하는 이에게 도움을 받은 것처럼 저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분들도 존재하고 그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거라 믿어요. 목련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 나가는 우리는 모두 서로의 팀이잖아요. (웃음)

문종필: 말이 필요 없습니다. 주먹 인사 하겠습니다. (꽝!) 곧 봄이 다가오는데 같이 힘 있게 걸어가기로 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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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문학평론가. 웹진 <문화 다> 책임 편집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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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규

시인. 1992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2014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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