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특집] 한강의 소년이 온다 리뷰
[5.18 광주민주화운동 특집] 한강의 소년이 온다 리뷰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20.05.21 21:59
  • 댓글 0
  • 조회수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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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우기가 빨리 온 건가...

"아우렐리아노, 마콘도에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

마콘도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벌어진 부엔디아 가문의(미제국주의에 의한) 100년간에 걸친 비극의 이야기(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는 어떤 상징성에 값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여기, 

소설 속 주인공들의 고독은 그대로 콜롬비아의 고독이자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며, 궁극적으로 하나의 유전자로 과거의 기억과 상처를 지닌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보편적 고독임을 암시한다

여기, '그 도시의 열흘'을 아프게 기억해야 하는 소설 속의 공간에서도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니까 에서 비는 하나의 관습적 상징으로서나 현실적 의미로서나 비극을 풀어나가기 위한 훌륭한 소설적 미장센인 거다

이 비의, 비극의, 고독의 중심에 '소년' 동호가 있다

자, 이 작품이 이야기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니 서사공부를 쫌 하고 넘어 가자

소설을 포함하여 지금 서사는 이 시대의 보편적 정보전달방식인 이야기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어딜가나 이야기를, 목소리를 접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성'은 서사의 주요한 특징이다 즉 이야기가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와 이야기꾼이 있어야 한다 자, 여기 이야기만 있는 것이 극이고 이야기꾼이 있는 게 서사다 그러니까 극이 플롯에 집중되고 있다면, 서사는 인물에 집중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하나의 서사적 개입을 특징으로 하는, 그리하여 이야기꾼이 전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꿈과 욕망, 의지가 실리게 된다

이런 서사에는 크게 '지배서사'와 '저항서사'가 있다 저 <삼국지> (한 왕실 부흥)와 <일리아스> (민족주의)를 보더라도 지배서사가 대부분 권력자들의 피지배자들에 대한 권력관계를 재생산, 유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면, 저항서사는 지배서사의 진실을 탈은폐, 폭로함으로써 지배서사에 똥침을 날리고자 한다 

자, 그러먼 오늘 하나의 저항서사로서 우리가 광주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기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광주가, '그 도시의 열흘'이 지닌 의미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정신의 질료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정신의 질료!

그것은 부당한 권력에 대한 용기있는 저항정신이 아니고 무엇이며, 그것은 또한 개인의 희생을 무릅쓴 고귀한 희생정신이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관점에서 놓고 볼 때, 열다섯살 중학교 3학년이 무엇을 알까마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양심에 따라 희생을 무릅쓰고 바친 댓가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희생은 잊혀질 수 없고 잊혀져서도 안 되는 부채의식으로 너와 나의 심층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리하여 여기, '너'는 나의, 서술자(이야기꾼)의 목소리를 지니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비가 올 것 같아"

비점은 바로 이 서두에 있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정말 비가 쏟아지겠어"

샤먼의 공수처럼, 그러니까 무당이 죽은 혼의 목소리를 내뱉는 것처럼, 서술자는 하나의 도풀갱어로서 어린 새(=너=동호)의 페르소나가 되어 동호의 목소리를 뱉어 놓는다

그리하여 서술자는 어린 새, 동호의 눈으로 '그 도시의 열흘'의 진실을 보고 확인하고 증언하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군은 도청을 사수하다 의연하게 죽었다고...

그러나 그 죽음은 너무 억울하다고...

그것은 바로 지배서사에, 언론에, 매스컴에, 가담항설에 다만 폭도들의 소행이라고 광주의 진실이 왜곡distorted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억울하게 맞아죽고 부서져죽고 터져죽고 불타죽고 한 영혼들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검은 숨'이 되어 하나의 유혼이자 고혼이자 원혼이 되어, 어린 새가 되어 아프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는 아프다고

왜 책임자가 여즉 살아 있느냐고

민주주의!

이것은 우리 모두가 지겨야 할 소중한 가치가 아니었느냐고 그러니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이 건드리고 있는 진실의 뇌관이다 

그러나 여즉도 '그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바로 여기에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한 광주의 서사는 계속되어야 하고, '그 진실'을 드러내는 너와 나의 이야기 또한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죽은 동호가 '어린 새'로, 아니 잠들 수 없는 '죽은 숨'으로 소설가에게 빙의되어 나타난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본다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의 저항서사로서 국가를 위한 목적과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개인의 목적 사이의 '불화'와 '대립'에 대한 저 소크라테스 이래 숙명적인 주제에 대해 광주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광주'가 '광주'인 까닭은 고귀한 희생을 치르고 얻어낸 값진 교훈으로, 그것은 마치 부엔디아 가문의 고독이 콜롬비아의 고독이자 권력과 어쩔 수 없는 길항관계에 있는 모두의 고독인 것처럼, 꼭 그처럼 광주가 던진 인간의 존엄에 대한 질문은 곧 그대로 우리들 모두의 질문이며, 권력과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류 보편의 세계사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보았다

......

난 그렇게 본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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