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법정스님의 「스스로 행복하라」에서 답 찾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법정스님의 「스스로 행복하라」에서 답 찾기.
  • 강윤슬 에디터
  • 승인 2020.05.26 19:31
  • 댓글 0
  • 조회수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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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불안하고 우울한 사람들

[뉴스페이퍼 = 강윤슬 에디터] 2020년, 세계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 19라는 인류 대재앙을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되었다. 페스트를 연상시키는 이 전염병의 위험에 우리는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현실을 살게 되었다. 누군들 이런 미래를 꿈꿨을까? 사람들은 갑자기 모이지도 못하고 각자의 집에서 고립되다시피 하며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되었다. 봉쇄 노선을 택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그래도 양반이라지만, 봉쇄 조취를 취한 여러 나라의 경우, 경제 상황도 그렇지만 외로움 등으로 인한 정신건강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나는 원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요 몇 년간 계속 집순이로 지내던 탓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억지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심리적 거리감이나 스트레스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혼자 있음에 마음이 외로워지거나 쓸쓸해질 때면, 나는 법정 스님의 책을 꺼내 읽곤 한다.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유」등을 읽고 있노라면 다른 사람과 꼭 함께 있음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고,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낼 수 있음을 깨닫곤 한다.

샘터 제공
샘터 제공

 

아뇨, 저는 출가를 꿈꾸지 않는데요?

열반 10주기를 기념하여 샘터 사에서 나온「스스로 행복하라」는 법정 스님의 기존 강연에서 하신 말씀과 글 등을 수록한 것으로 기존의 글과 맥을 같이 한다.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행복, 자연, 책, 나눔으로 법정 스님께서 강조하셨던 것들을 다루고 있다. 법정 스님의 글을 즐겨 읽었지만 강연에서 하신 말씀 ‘지금 출가를 꿈꾸는 이에게’ 등은 새로이 와 닿았다.

출가라니, 갑자기 웬 출가?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란 소위 세속의 삶을 버리고 집에서 나와 성자의 수행생활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가끔 지긋지긋한 번뇌를 안겨주는 세속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도 진정 출가를 할 생각은 없었던 나였다. 그랬기에 ‘나는 출가를 꿈꾸지 않는데?’ 하면서 읽기 시작한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출가를 꿈꾸지 않는 사람에게 출가를 꿈꾼다고 말하니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길상사 불교문화 강좌 내용이었단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피할 수 없는 번뇌의 삶에 지친 사람이 세속의 삶을 버리고 종교에 귀의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게 출가 같아 보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음”의 강한 의지의 표명이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종종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닌데?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만 그런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한창 가다보면 이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워질 때가 있곤 하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이럴 때 출가 정신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는 출가란 “소극적 도피가 아닌 적극적 추구로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없기 때문에 내 의지로써 내 삶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그런 재구성의 시도로 여기에서 말하는 ‘출가’란 “끝이 없는 탈출이며, 수행이란 일종의 장애물 경주”라고 한다. 아니 끝이 없는 탈출은 그렇다 쳐도 장애물 경주라니? 그냥 사는 것도 힘든데 왜 굳이 끝없는 장애물 경주를 해야 하는 것이지?

왜냐하면 이 ‘출가’라는 것은 본래의 나를 찾기 위해 타성에 젖어드는 것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곧잘 타성에 젖기 쉽기 때문에 날아가는 새의 끊임없는 날갯짓처럼 “일회적인 행위가 아니며, 결코 일회적으로 끝날 수 없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곧 그것을 고집하는 집착이 되고 우리를 옭아맨다. 모든 집착을 버리는 과정이란 고통스러운 과정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진정 자유로움을 되찾는 삶이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189)”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꼭 이것이어야만 한다.’는 집착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하고, 이런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괴로워진다. 무엇이어야만 한다고 강제하던 것에서 벗어난다면 자기를 묶어두던 보이지 않는 끈에서 풀려난 기분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는 말도 내게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뉴 노멀로 살아가기: 따로 또 같이

이 책을 읽은 내가 유독 출가정신을 유난히 강조한 이유는 우리가 지나온 코로나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고 자꾸 그때로 회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말하듯 이제는 코로나 19 이전의 삶이란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일명 뉴 노멀에 익숙해져야 한다. 출가 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개척해나가기를 바란다.

언제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완전히 종식될지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사람들과 부대끼고 북적거리는 삶으로는 당분간 돌아가기 힘들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안녕을 고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힘들다.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고 싶고, 살이 맞닿는 행위에서 친밀감을 느끼곤 했던 삶에서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갑작스러운 변화는 마음이 멀어지는 것만 같아 괜히 뭔가 허전해진다.

우리의 거리두기는 마음으로부터 멀어짐이 아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홀로 있음에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영원히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이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을 가져보면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가 더 쉬워진다.

 

예를 들어 법정 스님은 「어린 왕자」를 경전처럼 여기며, 「화엄경」과 같이 꼭 가지고 싶은 종이책으로 꼽았다. 그는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왠지 믿음이 간다고 했는데 거꾸로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는 마음이 가지 않는다고도 했다.「어린 왕자」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 구절을 읽고 법정 스님과 마음이 통한 것만 같아 괜히 혼자 뿌듯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꼭 살을 맞대지 않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독립된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나로 존재하고 싶다. 우리가 홀로 있음을 즐길 수 있을 때, 우리는 따로 또 같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청량한 숲 속을 걷듯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이 든다. 자꾸 소유로 점철되려는 내 마음을 돌아보며 다시 깨끗해지는 과정 같다고나 할까? 읽기만 한다고 해서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법정 스님의 글을 마음으로 새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심삼일, 이런 결심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날 그때의 결단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이런 비장한 결단 없이는 일상적인 타성과 잘못 길들여진 수렁에서 헤어날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64-65)” 게다가 “실패가 없으면 안으로 눈이 열리기 어렵다. 실패와 좌절을 거치면서 새 길을 찾게 된다.(45)”고 하셨으니 비록 실패와 좌절을 하더라도 내게 “새로운 도약과 전진을 가져오기 위해 딛고 일어서야 할 디딤돌(45)”로 여기고 다시 시도해보련다.

날씨가 좋을 때 길상사에 가서 거닐며 법정 스님이 모셔진 곳을 찾곤 했는데 이번 봄에는 가지 못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걱정이 사그라지는 날이 오면, 법정 스님이 계셨던 길상사를 또 다시 거닐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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