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생명의 서사이지 죽음의 서사가 아니다’ 조율 시인의 시집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와 함께
‘시는 생명의 서사이지 죽음의 서사가 아니다’ 조율 시인의 시집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와 함께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20.05.2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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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의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를 읽고
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뉴스페이퍼 =김상천 에디터]신화시대, 시는 전통적으로 권력(자)를 찬양하고 자연을 노래하였다. 권력(자)의 시종侍從, 따까리로 그의 ‘말씸言’을 받들어 ‘뫼시侍’던 시인! 신의 사자이자 노래하는 시인을 대표하는 헤르메스Hermes와 호메로스Homeros도 그리스어 ‘herme 말하다’에서 나왔다. 그는 고래로 종속적subordinated 신분을 벗어나지 모했다

그러나 ‘영웅’으로 상징되는 신적 권력은 공룡처럼 사라지고, 그러니 그를 뫼시던 노래의 형식도 갑자기 사라졌다 그러나 자연을 노래하던 시의 기능은 긍정적인 의미로 살아남았다 그것이 뭐든 끌어다 붙이는 '메타포metaphor'다 그리하여 나는 특이한 제목을 달고 있는 조율의 시집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를 본다 

제목이 하나의 상징으로 그 무엇인가를 대표하는 간판 역할을 한다먼, 여기 조율의 시집 제목 또한 하나의 상징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사람은 오는데 사랑은 없는' 것처럼 치레와 형식만 난무하고 알맹이와 내용이, 감동이 없는, 코스프레만 있고 자기의 표정이 없는 만개한 속물사회snobcracy의 문법을 비틀고 있는 기호다

그리하여 전래의 문법을 '찢고' 있다는데 낯설게 하기로서의 현대시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그러니까 일상의 어법과 문법으로 볼 때 그의 시가 좀 난해한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시는 일상어에 가하는 조직 폭력(로만 야콥슨)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시가 난해하다는 건 그만큼 새롭고 도발적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즉 그는 기성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시적 방임'으로 전편을 수놓는다 시적 방임, 그것은 ‘탈-영토화’를 통한 ‘재-영토화’의 시적 기도try다

그리하여 하나의 비유이자 메타포로서, 우리는 '영토territory'라는 근대적 범주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시의 담쟁이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조율의 장기가 십이분 발휘되고 있다

모서리 깨진 기와 한 장, 마당에 버려져 있다
한때는 하늘을 받쳐 들고
처마 밑에 제비도 키우던 검은 기와,
누가 모서리를 베어 먹었을까
햇빛을 갉아먹던 등이 검게 굽었다
나는 어금니에 금이 간 어머니를 의심했다

국수 같은 장대비가 지붕을 두드리던 날
어머니는 부엌에서 자글자글 기와를 구웠다
어머니의 기와에는 이끼가 가득 끼어 있었다
또 김부각이야? 내 목소리는 비 오기 전
제비처럼 꽁지 내리고 밥상 위를 낮게 날아다녔다
한 장 한 장, 접시 위에 기와 집이 지어진다
나는 젖가락으로 김부각의 모서리를 부서뜨리며
빗물에 내려앉은 천장을 걱정했다
지붕의 기와에 금이 갈수록 어머니는
어금니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월세가 밀린 어머니 품속에서
새끼제비처럼 입을 내밀고 묵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빛나는
김부각을 고독고독 씹어 먹는다
뱃속에 고래 등 기와집을 짓고 있나
어머니가 어머니를 먹는다

-조율의 '어머니가 기와를 먹는다' 전문

이 시의 기조는 엄정한 종결어미 '-다'로, 노트럴한 중성적 어조로 일관되어 있어 시인의 표정은 자못 이성적으로 절제되어 있다 그러나 시어의 안쪽 표정은 이와는 사뭇 다른 속내를 보이고 있다 즉 그는 지금 김부각을 굽고 있는 어머니를 시적 화두의 중심에 놓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금니에 금이 가 있고 기와장이 깨져 천장에 빗물이 새고, 월세가 밀려 생활은 금이 가 있다 그는 김부각처럼, 아니 모서리가 깨져 마당 한쪽에 고독하고 쓸쓸하게, 무의미하게meaninglessly 버려져 있는 기와 조각으로 이미지 처리 되어 있다 그러니까 여기 김부각-금이 간 어금니-빗물이 새는 천장-깨진 기와 조각을 통해 드러나는 지배적 심상에서 우리는 삶의 중심에서 어긋나 변두리를 돌고 있는 하나의 가족 서사를 마주하는데, 그것은 곧 '결핍deficiency' 모티브에 다름 아니다 바로 여기에 너와 결코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동시대의 통점痛點이 있고, 공명共鳴이 있고, 비유의 가치가 있고, 메타포의 힘이 있다 

메타포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끈끈한 연대를 전하고 있는 이 시에서 하나의 전복적 메시지로 결핍을 보충해주는 판타지(‘고래 등 기와집’)를 느끼게 되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다 시는 메타포이자 꿈으로 생명의 서사이지 죽음의 서사가 아니다

시는 신화이다 전체의, 유기적인organic 언어다 거기 생명이 깃들어 있고 솔리데리티한 연대의 언어, 메타포가 있다 여기, 조율의 시편을 통해 우리는 낯설면서도, 그러나 거기 나를 넘어meta 너에게로 가phor 타자를 빛나게 하는 원초적 시의 아름다움을 읽는다

비근대-전근대가 아니다-의 언어, 시는 생명을 품고 있다

난 그렇게 읽는다
 

*글쓴이; 김상천(대중문예비평가)/<명시단평>,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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