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 우리가 기억하고 연결해야 할 빛
나희덕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 우리가 기억하고 연결해야 할 빛
  • 정고요 에디터
  • 승인 2020.05.2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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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정고요 에디터
사진 = 정고요 에디터

 

[뉴스페이퍼 = 정고요 에디터]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까. 열 사람에게 물어 열 개의 답이 나올 것 같은 질문이지만,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를 읽은 독자라면 이렇게 답할지도 모른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연결하기 위하여 책을 읽습니다.” “타인과 나를 연결할 수 있을까 싶어 책을 읽습니다.” “내가 몰랐던 세계와 나를 연결하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저 불빛들을 기억해』는 2012년에 출간하였던 동명 산문집의 개정증보판이다. 새로운 산문 11편을 보태고 캐나다 화가 스콧 버기 Scott Bergey의 그림을 함께 넣었다. 스콧 버기의 그림은 시인의 글과 형제자매처럼 어울린다. 총 46편의 산문은 점, 선, 면이라 이름 붙인 구성으로 나뉘어 점층적 세계를 구축한다. 1부에서는 고아원 총무의 딸이라는 정체성을 빼놓을 수 없었던 시인의 유년 시절이 읽힌다. 아내 혹은 엄마로서의 모습도 점처럼 찍힌다. 2부를 통해서는 학생운동과 생명운동, 문학이라는 세 개의 꼭짓점을 중심으로 한 시인이 타인과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보인다. 사랑이 많고 세계에 힘껏 관심을 쏟는 시인의 모습이다. 3부에 다다르면 인간과 환경,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좀 더 둔각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사유한 글들이 독자를 기다린다. 

시인이 산문집에 배치한 불빛을 따라서 걷다 보면 독자는 과거의 자신이나 가족, 이웃을 마주할 것이다. ‘환대와 적대 사이’를 진동하는 삶 속에서 서투르기만 하였던, 혹은 가까이 있지만 가깝게 느끼지 못하였던 존재들이 발하는 미약한 빛을 향해 비로소 손을 뻗어보고 싶을 것이다. 이뿐인가. 생태에 눈이 밝은 시인의 시선을 빌려, 지구에 세 들어 살기는 인간과 마찬가지인 작은 생명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이르기도 할 것이다. 

새롭게 추가한 산문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얼마든지 새롭다. 예를 들어 칠십 년 만의 폭설이 내린 날, 폐쇄된 고속도로에서 고립된 채 새벽을 맞은 경험에 관해 쓴 마지막 산문(「폭설이 우리 곁을 지날 때」)은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는 2020년의 우리에게 사뭇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산문 속 시인의 표현을 빌려 생각해본다. 삶이란 ‘등반과 정복의 기록’이 아니라 ‘정체와 정지의 기록’에 가깝다고. 말하자면 『저 불빛들을 기억해』는, 정체와 정지의 순간을 지날 때 우리가 기억하고 연결해야 할 빛에 관한 책이다. 오래전 시인은 아이가 입원한 병원의 맞은편 병동을 바라보다 연결하고 싶은 불빛들을 발견하였다. 시인은 아픈 아이에게 말했다. “저 수많은 창문들을 보렴. 지금은 병원에 있으니까 주변에 아픈 사람들뿐이지만, 퇴원하면 너는 건강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해. 그러다 보면 왜 나만 이렇게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 거야. 그때 저 불빛들을 기억해. 저렇게 수많은 방 속에서 병과 싸우고 자신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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