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피해자와 함께 걷다 - 야마카와 슈헤이의 『인간의 보루』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함께 걷다 - 야마카와 슈헤이의 『인간의 보루』
  • 문종필 문학평론가
  • 승인 2020.05.2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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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여 다시 내 곁에서 함께 걷자
“역사의 틈새기에 새겨진 가족의 비애를 일본인인 내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사진= 한송희 에디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뉴스페이퍼 = 문종필 에디터, 평론가] 야마카와 슈헤이의 『인간의 보루』는 죽었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광주에 살고 있었던 14살의 곱고 고운 이 소녀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현해탄을 건넌다. 그 이유는 일본에 있는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되면 급료도 챙겨주고 학교도 보내준다는 ‘となりぐみ(隣組)’ 조장의 권유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그곳은 소녀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빈약한 식사가 나왔고 하루 종일 중노동에 시달렸다. 14세의 소녀가 버티기에는 너무나 버거웠다.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려도 될까? 그러나 불행은 행운과 함께 찾아오지 않았다. 불행은 더 지독한 불행과 동시에 빨려 들어왔다. 1944년 ‘도난카이 지진’이 엄습하게 되었을 때, 이 소녀‘들’은 떨어지는 벽돌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다. 

카메라를 목에 건 김중곤 (『인간의 보루』 140쪽)

소녀의 오빠 김중곤은 이 아픔을 평생 잊지 못해 몸을 웅크리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말한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모든 사연을 덮어 줄 수 없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모든 사연을 설득시킬 수 없다. 그는 단호히 말한다. 

인간이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스스로 나이를 먹어보니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의 체험이란 것은 역으로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선명한 기억으로 나타납니다. 

실제로 그는 죽는 순간까지 이 말을 지켰고 온몸으로 싸웠다. 14살 소녀 순례의 억울한 죽음을 달래기 위해 일본 정부의 법 제도와 불합리를 매섭게 응시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들은 어떠한 주장도 할 수가 없다고 항변하는 한”” 원고에 대한 청구를 명할 수 없다는 일본 사법의 입장에, 개인 청구권은 여전히 소멸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중곤의 이러한 노력은 한 개인에게 머물지 않는다. 전쟁 속에서 벌어진 인간의 모순과 괴물적인 본성을 문제 삼는다. 문제의 초점을 외부로 기울게 놔두지 않고, 전쟁에 참여했던 우리‘들’ 내부의 모습도 쳐다보게 만든다. 더 나아가 죽었지만 죽을 수 없었던, 그래서 망자(亡者)로 평생 떠돌아다녀야 했던 순례‘들’의 상처를 끌어안아 준다. 

추도기념비
추도기념비 (『인간의 보루』 157쪽)

이 책은 야마카와 슈헤이의 관점에서 쓰였다. 그는 일본인으로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 번은 17세에 찾아온 폐결핵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대학 졸업 후 출판사를 차렸을 때다. 그때 그는 갚을 수 없었던 부채(負債)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던 찰나 우연히 텔레비전에 비친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의 복음 영상을 보게 되고, 다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 이후 그는 주택 산업계에 투신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다. 그때 한국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 여행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주었다. 제주도에서 일본어 교습소를 차리고 살아가던 김중곤을 어느 한 다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야마카와 슈헤이는 점차적으로 김중곤의 사연에 귀를 열게 되고 이 계기로 오랜 시간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멤버로 참여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짠하게 담았다.   

전단지를 배포하는 야마카와 슈헤이 
전단지를 배포하는 야마카와 슈헤이 (『인간의 보루』 329쪽)

그는 전후 배상 항목 중에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에 보다 더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이 10대 중반의 순진무구한 소녀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중학생이다. 겨우 자아에 눈뜨기 시작한 소녀들이다. 이러한 소녀들에게 어떤 죄악감도 갖지 않고 여학교에 통학시켜 준다고 거짓말을 해서 일본으로 끌고 와 군수공장에서 혹사시켰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믿고 싶지 않을 만큼 비정상적인 사실이다. 이렇게 명백한 범죄인데 왜 사죄와 배상을 할 수 없는가?

하지만 위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야마카와 슈헤이는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권력에 기댄 법(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연적인 ‘양심’에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에서 맺은 ‘해결 완료’를 관철시키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고야 근로정신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원고단(왼쪽부터 박해옥, 김성주, 김혜옥, 양금덕, 진진정)과 이들 소송을 이끈 이금주 태평양전쟁의생자 광주유족회장(나고야시 미나토구 미쓰비시중공업 순직비 앞에서, 2002년) 
나고야 근로정신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원고단(왼쪽부터 박해옥, 김성주, 김혜옥, 양금덕, 진진정)과 이들 소송을 이끈 이금주 태평양전쟁의생자 광주유족회장(나고야시 미나토구 미쓰비시중공업 순직비 앞에서, 2002년) (『인간의 보루』 165쪽)

이 책을 의자에 앉아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메모해 가며 읽었다. 패소 판결을 받은 직후, 애타게 부르짖었던 양금덕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한을 누가 풀어줄까? 아버지,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 없지.

 에세이 특유의 형식은 저자와 독자의 거리를 무화시킨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양심에 호소한 저자의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는 것 같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아래의 생생한 ‘목소리’다. 이 책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 故 김중곤 씨의 최후 증언 원고(303~306)와 야마카와 슈헤이의 발언(333~338), 한•일간의 평화 기반을 다지기 위해 최봉태 변호사가 강연한 내용,  다카하시 마코토가 『아사히신문』 주부판에 기고한 글(146~149)은 독자분들과 함께 꼭 나누고 싶다. 

양금덕 할머니. (『인간의 보루』 314쪽)

*
となりぐみ(隣組)는 네이버 일본어 사전에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최말단의 지역조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야마카와 슈헤이의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 김정훈 선생님의 노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번역 행위는 그림자 같아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번역가들의 땀방울로 인해 우리들은 누군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오늘은 5월 18일입니다. 故 김중곤 씨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끝맺습니다. “고통의 체험이란 것은 역으로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선명한 기억으로 나타납니다.”  

 

글쓴이: 문종필 인천에서 태어났다. 산책하는 것과 영화(만화) 보기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바다 수영에 도전해 무사히 완영했다. 잔잔한 사연이 있는 인디음악을 좋아한다. 2017년 《시작》 신인상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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