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곳곳 이웃을 찾아 나선 김승일, 주영헌 시인의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낭독회”
동네책방 곳곳 이웃을 찾아 나선 김승일, 주영헌 시인의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낭독회”
  • 김보관 기자
  • 승인 2020.05.23 15:51
  • 댓글 0
  • 조회수 476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면(紙面)에서 지면(地面)으로, 문학적 영향력을 퍼뜨리는 시인이 되고 싶어”
골목책방 랄랄라하우스에 모인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수원의 동네책방 랄랄라하우스에 두 시인이 떴다. 매번 반복되는 비슷비슷한 유명 시인의 낭독회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한 시인들의 새로운 시낭독회를 위해 의기투합한 김승일, 주영헌 시인은 사뭇 다정한 모습이었다. 

주영헌 시인은 가슴 따뜻한 시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데워왔다. 그는 일상 속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 독자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힘쓰고 있다. 반면, 김승일 시인은 학교폭력 등 일상에서 마주한 폭력을 강렬하고 진솔한 시의 언어로 풀어내 시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언뜻 정반대의 시 세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글 너머 사람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시인이라는 점에서는 데칼코마니와 같이 닮아 있었다.

이들이 함께하는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낭독회”는 ‘누가 불러줘서 가는’ 형식을 뛰어넘어 두 시인이 직접 책방으로 찾아간다. 세 번째 순서인 랄랄라하우스 역시 시인이 먼저 방문해 계획을 논의하고 일정을 짰다. 

김승일 시인은 “내가 생각하는 시인은 책 속 지면(紙面)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모두가 발 딛고 있는 지면(地面)으로 가야 한다.”며 “문화허브로서의 역할을 하는 동네책방 위주로 낭독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들의 의도에 걸맞게 지난 12일 펼쳐진 낭독회에는 어린 학생부터 환갑을 지나고 있는 이웃 주민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여 시를 읽고 감정을 공유했다.

시에 대해 설명하는 주영헌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온몸에 가득 찬 슬픔은
눈물이 아니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흐르는 것은 잠시 멈춰 있거나 어딘가로 다시 흘러가 처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들을 찾아가는 것들
내 어머니가 첫아이를 잃었든 나도 첫아이를 잃었다
슬픔도 윤회하는가

-주영헌 시인 ‘윤회’ 중에서.

누군가 모든 글쓰기의 시작은 ‘아픔’이라고 했던가. 주영헌 시인과 김승일 시인은 자신의 아픔에서 기인한 시를 소개했다. 첫 순서로 낭송된 주영헌 시인의 ‘윤회’는 첫아이를 잃은 개인적 아픔에서 기원한 시다. 그는 “돌고 돌아서 내게 돌아오는 아픔과 눈물”에 대해 생각하며 이 시를 쓰게 되었다. 시를 읽은 한 관객은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시가 적잖은 위로가 됐다.”고 생생한 소감을 전했다. 

이건 멀리 가는 배가 아니에요
집 벽에 머릴 쿡 찧으면
오후 내내 햇빛으로 마르는 배에요
책가방과 보온도시락만 들어가거든요
친구가 발 한쪽만 넣어도 바들바들 찢어지는 종이배에요
자꾸 코를 문지르고 소매를 뒤집어 올리지만
배를 반듯하게 접을 수는 없어요
맑은 콧물이 내려오면 퍼다 버립니다

-김승일 시인의 ‘종이배’ 중에서.

김승일 ‘종이배’는 어릴 적 겪었던 학교폭력과 무력했던 자신을 드러내는 시다. 시집 “프로메테우스” 서두에 실린 ‘종이배’는 그 뒤로 이어질 강한 이야기들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때로 욕설을 내뱉고,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를 ‘연필로 찍지 못한’ 자신을 되짚어보는 자아는 숱한 폭력 속에서 인내하고 웅크려 왔기 때문이다.

객석에 앉아 있던 관객은 “시만 읽었을 때는 센 표현들이 불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의 설명을 듣고 함께 읽으니 많은 구절이 이해됐다.”는 말로 낭독회의 전과 후를 이야기했다.

한편 똑같이 괴롭힘을 당한 또 다른 관객의 경우 때로 공격적이거나 직설적인 화법을 가진 김승일 시인의 시에 깊이 공감했다. 관객은 이어 “나를 심하게 괴롭히던 남자애를 찔러 준 적이 있다. 그 이후에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라고 고백했다. 

이에 김승일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은 의문을 던지는 일이다.”라며 “왜 피해자는 항상 당하고만 있어야 하지? 왜 피해자는 아무렇지 않다고 여기지? 하는 의문을 가졌다. ‘넌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와 같은 말들은 가해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손이 살짝만 베여도 아프듯이 심리도 똑같다. 물론 복수나 분노는 좋은 것이라 할 수 없지만,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는 말로 위로를 전했다.
 

시에 얽힌 이야기를 전하는 김승일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시에 얽힌 이야기를 전하는 김승일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두 시인의 시선은 자신 안에서 머물지 않고 타인의 아픔으로 나아갔다. 김승일 시인의 ‘죽은 자들의 포옹’은 학교폭력으로 투신하는 이들과 슬퍼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시인은 “내가 영웅이 되어 미리 위험을 감지하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하는 바람에서 이 시를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말 없는 너를 보고 있어
녹화된 화면 속
말없이 뒤돌아서는 너를 보고 있어
네가 살고 싶다고 말한다면
네가 행복하고 싶어서 붉은색 꽃 장식이 달린 난간에 가 선다면
나는 듣고야 말 거야 나는 너의 이야기를 안고 더 멀리 걸어가고 말 거야
노을은 날아가는 새들의 귓불을 가볍게 쓰다듬고
구름은 구름대로 너의 눈동자를 위로하겠지

고개를 들 거야 나는
손바닥을 치켜든 그 개새끼 앞에 서고야 말 거야
울먹이던 나를 하나하나 모조리 기억해 내고

김승일 시인의 ‘죽은 자들의 포옹’ 중에서.

가만히 곁에서 시를 들을 주영헌 시인은 “시의 힘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연못에 던진 작은 돌이 만드는 파장과 같아서 마음에 던져진 작은 파편은 크게 번져나가 뜻밖의 영향력을 발휘하곤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김승일 시인의 시를 접한 학생들은 ‘학교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시인에게 다가와 그 감상을 전해주거나 교실에 존재하는 따돌림을 고발하기도 했다.

현재 용신중학교 운영위원회로 활동하는 두 시인은 학교폭력문제와 관련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고 있다. 김승일 시인은 학교에서 뛰쳐나가는 학생을 도와준 사례를 언급하며 “한 사람의 힘이 너무나 커서 누군가를 완벽히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반대로 완벽하게 무너뜨릴 수도 있다. 시낭독회에서 역시 서로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첨언했다.

이날 평택에서 수원까지 찾아온 한 학생은 ‘김승일 시인의 팬’이라고 밝히며 커오면서 겪은 숱한 폭력과 아픔을 담담히 열거했다. 그는 이어 “극한의 상황에서는 ‘힘내라’, ‘수고했다’ 하는 말이 더 힘들 때도 있다. 자극적인 시 구절들은 어떠한 말보다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며 “너무 오고 싶은 자리였으나 사전 정보가 많지 않아 SNS를 통해 시인에게 조심스레 문의했는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대화 이어나가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김승일 시인은 “도리어 내가 위로를 받았다. 학생 안에는 분명 무언가 지켜낼 만한 힘이 있었을 것이다. 잘 견뎌주셔서,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고맙다.”는 말로 화답했다.

‘춤추는 나무’를 읽는 주영헌 시인(좌)과 듣고 있는 김승일 시인(우) [사진 = 김보관 기자]
‘춤추는 나무’를 읽는 주영헌 시인(좌)과 듣고 있는 김승일 시인(우) [사진 = 김보관 기자]

주영헌 시인 역시 자신의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시 ‘춤추는 나무’는 사랑과 관심을 갈망하는 개인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아내와 딸의 주의를 끌기 위해 춤을 추는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며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한 몸짓’을 조명했다. 주영헌 시인은 최근 “대중들에게 더욱 편안히 다가가는 시를 쓰겠다.”고 결심한 이후 독자에게 어렵지 않은 대중시, 서정시를 지향하고 있다. 

나는 나무
흔들리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인
직립을 하였으므로
팔을 펄려 작은 그늘 만들 수 있는 나는 나무

당신 앞에선 흔들리는 것이 전부인
나는 춤추는 나무
당신이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잎사귀 하나 없는 나신의 몸으로도 부끄럼 없이
진심으로 흔들린다

주영헌 시인의 ‘춤추는 나무’ 중에서.

더욱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두 시인의 몸짓과 더불어 낭독회 중간 독자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시인의 시를 읽기도 했다. 직업으로 시 낭송을 하고 있다는 한 관객은 “주영헌 시인의 시는 아프면서도 따뜻하다.”는 말과 함께 ‘밥상’이라는 시를 읽었다. 그에 이어 또 다른 관객은 김승일의 ‘달이 없는 밤’을 낭독하자 김승일 시인은 “새로운 목소리로 들으니 다른 시를 읽는 것 같다. 스스로 모르던 정취를 발견했다.”며 웃어 보였다.

시 낭송에서 나아가 관객들이 쓴 글귀나 시를 함께 즐기기도 했다. 곳곳에서 책방을 찾아온 이들은 각자의 경험은 물론이고 ‘경비원 자살 사건’ 등의 사회적 이슈를 담은 글을 공유하며 시인과 동등한 자리에서 다양한 생각을 주고받았다.

직접 써온 글을 읽는 한 관객 [사진 = 김보관 기자]
직접 써온 글을 읽는 한 관객 [사진 = 김보관 기자]
낭독회 중간 쉬어가는 시간으로 연주를 들려주는 주영헌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낭독회 중간 쉬어가는 시간으로 연주를 들려주는 주영헌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낭독회가 끝날 무렵 책방에 모인 이들은 ‘힘든 하루 속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시인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생겨 좋았다.’, ‘아들이 겪은 학교폭력과 함께 견뎌낸 아픔이 떠오르며 실질적으로 힘이 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책 속에서 사람이 걸어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금이 신기하다.’ 등의 소감을 나누며 아쉬움을 달랬다.

다양한 강연을 진행하고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는 김소라 작가는 “앞으로의 문화 트렌드는 틈새 여가, 취향 소비, 느슨한 연대다. 저희 책방은 오늘처럼 이 세 개가 공존하는 모임을 계속 열려고 한다.”는 말로 앞으로를 그렸다.

세 번째 낭독회를 마친 김승일 시인과 주영헌 시인 역시 “오늘의 모임이 끝난 다음에도 서로 연락할 수 있길 바란다.”며 SNS 주소와 연락처를 전달했다. 이들은 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이웃사촌’과 다를 바 없이 서로의 귀가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였다.

두 시인이 함께하는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낭독회”는 동네책방을 문화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시작한 행사로, 오늘 5월 23일 오후 6시 용인 원삼면 ‘생각을 담는 집’, 6월 20일 오후 2시 도봉구 ‘도도봉봉’ 등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두 시인은 “작은 서점 입장에서 먼저 시인을 초청하는 데에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금전적 걱정은 내려놓으시고 언제든 편히 연락 주시길 바란다.”는 말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