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다 돼가는 고공 생활...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는 언제 땅에 발을 딛나
1년이 다 돼가는 고공 생활...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는 언제 땅에 발을 딛나
  • 김보관 기자
  • 승인 2020.05.23 21:10
  • 댓글 0
  • 조회수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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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작가회의 높이 25m 지름 1.5m 철판 위의 외로운 싸움에 연대하다
- 연이어 무산된 협상, 악화하는 김용희 씨의 건강
강남역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김용희 씨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지난 5월 11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있는 강남역 사거리 철탑 위 김용희 씨를 찾았다. 82년 삼성항공(테크윈)에 입사한 김용희 씨는 95년 노조를 결성하려 한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었다. 그는 차들로 붐비는 도로 한가운데, 25m CCTV 교통관제철탑 위에서 일 년 가까이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여러 연대체가 강남역을 찾은 이 날은 고공농성 337일 차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지 닷새 뒤였다. 국정농단과 관련한 뇌물·횡령 혐의 등을 받은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은 지난 1월 네 번째 공판 기일 이후 석 달간 멈춰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에서 권고한 ‘기업범죄를 차단할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이행한 것으로 삼성 창사 82년 만에 마련된 외부 감시기구다. 타 대기업에서는 이사위원회 내 감사위원회가 존재하며 삼성 역시 해당 기구가 있었으나 국정농단 논란 이후 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다.

11일 연대문화제에서 함께 들고있는 피켓들 [사진 = 김보관 기자]
11일 연대문화제에서 함께 들고있는 피켓들 [사진 = 김보관 기자]

말을 듣지 않으면 ‘범죄자’나 ‘간첩’으로... 끔찍한 억압의 방식

6일 사과문을 발표한 이재용 부회장은 80년 넘게 지속한 ‘무노조 경영’ 원칙을 버리겠다고 언급했으나 정작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핵심 피해자 중 하나인 김용희 씨를 비롯한 수많은 해고노동자는 각각의 자리에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근 십여 년간 삼성은 ‘노조 와해 공작’으로 꾸준히 논란이 됐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나 작년 말 ‘삼성 2인자’로 알려진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은 노조 와해 공작 혐의로 기소되어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법정 구속에 이르렀다. 이외에도 서른아홉 명의 삼성 전현직 고위 임원들이 노조 와해에 연루되어있었으며 당시 확인된 삼성 미래전략실 내부 문건에는 노조 설립 초기부터 이후까지 와해를 위한 순차적 방안이 세세하게 표기되었다.

뿐만이 아니다. 김용희 씨를 비롯해 노조를 설립하려 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테러, 간첩 및 범죄 누명, 회유와 협박 등을 겪어왔다. 김용희 씨의 경우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생겨난 부산·울산·경남지역 첫 노동자 조직인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에 가입해 활동하다 90년 6월 경남지역 노동조합 추진본부장으로 추대됐다. 이후 같은 해 7월 각목 테러를 당하고 12월 과장과 부장에게 납치된 데 이어 91년 3월에는 누명을 쓰고 해고된다. 

김용희 씨의 주장에 따르면, 해고무효확인 소송 진행 중 사측은 목포에 사는 아버지에게 방문해 ‘복직투쟁을 접으면 광주에 시계 대리점을 내주겠다’고 회유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김용희 씨의 무죄를 입증해줄 결정적 증거인 공증서는 2심에서 제출되지조차 않았고 이에 상고심에서 김용희 씨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직접 공증서를 제출한다. 

상고심을 15일 앞둔 이때, 김용희 씨는 “삼성 비서실과 사측(삼성시계) 임원으로부터 ‘상고 취하서 작성 시 계열사에 1년만 근무 후 원직 복직’이라는 제안을 듣고 대법원에 상고 포기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삼성종합건설로 발령, 러시아 지부로 이동한다. 러시아에서도 고초는 계속됐다. 몇 가지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과장과 대리에게 줄로 묶여 간첩 신고를 당하고 다시 싱가포르 현장으로 발령이 났다. 단식과 투쟁 끝에 95년 5월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출근날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근무지 변경과 ‘노조 활동을 안 하겠다는 각서를 쓰기 전에는 근무할 수 없다’는 통보였다. 김용희 씨는 5년간의 핍박을 거쳐 해고 통보조차 받지 못한 해고자가 된 것이다.

삼성의 사과가 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이러한 불법 행위를 구체적으로 인정,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일 열린 “삼성그룹 교섭촉구 연대문화제”에서 마이크를 잡은 많은 이들은 물론 함께 연대하는 여러 단체들은 “6일 이재용의 사과는 진정한 반성이나 실질적 개선 조치가 없는 알맹이 빠진 사과”라고 분노했다. 

집회에 사용된 깃발과 철탑 위 김용희 씨 [사진 = 김보관 기자]
집회에 사용된 깃발과 철탑 위 김용희 씨 [사진 = 김보관 기자]

수년간 이어져 왔던 인권유린 사태, 진정한 사과는 언제쯤?

이에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젊은작가포럼이 주최한 “삼성그룹 교섭촉구 연대문화제” 에 모인 이들은 허울뿐인 사과를 강하게 비판하며 삼성의 실질적 해결을 촉구했다. 현장에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대위,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 과천 철거민 대책위, 서울교통공사 노조, 삼성피해자 공동투쟁 등이 함께했다.

사무총장 부임 이전부터 줄곧 김용희 씨에게 힘이 될 방법을 생각했다는 신현수 시인은 “상식적으로 김용희 선생님를 비롯한 피해자들과 먼저 접촉한 후 사과를 하는 게 옳다.”며 “한국작가회의도 김용희 선생님의 고공농성에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삼성그룹 교섭촉구 연대문화제"에 모인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삼성그룹 교섭촉구 연대문화제"에 모인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삼성그룹 교섭촉구 연대문화제"에 모인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삼성그룹 교섭촉구 연대문화제"에 모인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삼성 교섭촉구 항의서를 낭독한 임성용 시인은 “25년 전에 해고당한 김용희 씨에게 삼성은 약속된 복직을 이행하지 않고 해고통지서도 없이 김용희 씨를 길거리로 내몰았다.”는 말로 운을 뗐다. 2000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임성용 시인은 활발히 노동자 인권 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높여왔으며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대위 등과도 꾸준한 교류를 이어왔다.

한국작가회의 연대위원장이기도 한 임성용 시인은 항의서에서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은 그간 폭행, 감금, 납치, 부당해고 등의 인권유린으로 이어졌다. 심지어는 간첩혐의를 뒤집어씌우기도 했다.”며 이 같은 노동탄압은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날 연대문화제에서는 사회를 맡은 홍기돈 교수 외에도 젊은작가포럼 위원장 김건영 시인,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 민구 시인 등이 앞으로 나와 김용희 씨를 응원하는 발언과 함께 시를 낭독했다. 그중 민구 시인은 “인간답게 살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다. 왜 누구는 철탑 위에서 농성하고 또 누구는 버젓이 다니며 사과랍시고 사기를 치고 다니는가.”라는 말로 속상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강남역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김용희 씨 [사진 = 김보관 기자]
강남역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김용희 씨 [사진 = 김보관 기자]

다시 일주일 뒤로? 거듭 좌절되는 희망...

지난 15일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가 발표한 기자회견에 따르면 4월 29일 협상이 개시되자 삼성 측은 5월 4일 또는 6일에 협상을 재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6일 약속을 이행하는 대신 이재용 대국민 사과가 발표됐다. 8일 오후 1시 협상을 재개하자는 연락이 오지만 약 2시간 뒤 취소한 후 다음날 토요일로, 토요일에는 다시 월요일로 약속을 미뤘다.

약 서너 차례에 걸쳐 미뤄진 약속은 5월 11일 월요일에도 다시금 취소됐다. 이후 약 이틀에 걸쳐 상호 합의한 협상안이 결정되었음에도 합의문 작성이 차일피일 지연되고 있다. 삼성 측은 15일 금요일 4시로 예정되었던 합의문 작성 일정을 일주일 뒤로 연기했다. 일주일이 지난 22일 오후 1시까지도 삼성 측은 일체의 연락이 없었다.

같은 날 오후 뉴스페이퍼와의 취재에서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담당 부장은 “삼성은 지금의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협상을 지속해왔다.”는 말과 함께 “김용희 씨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앞으로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협상에 임할 계획”임을 전했다.

그러나 이미 협상은 연이어 미뤄졌고 다음 달 10일이면 김용희 씨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된다. 그가 줄곧 요구하는 것은 삼성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명예 복직’, ‘해고 기간에 대한 임금 지급’이었다. 김용희 씨의 부당해고는 삼성의 노동자 탄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으로 이는 비단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용희 씨는 단식 투쟁을 병행하며 갈수록 힘들어지는 건강 상태에도 꿋꿋이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태양 아래 좁은 철판 위, 그의 농성이 끝날 날을 기다린다.

강남역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김용희 씨 [사진 = 김보관 기자]
강남역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김용희 씨 [사진 = 김보관 기자]

 

2020년 5월 23일은  투쟁 349일째다. [사진 = 김보관 기자]
2020년 5월 23일은 투쟁 349일째다. [사진 = 김보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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