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현우 시인, "3월에 만난 이 시집을 9월에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인터뷰] 구현우 시인, "3월에 만난 이 시집을 9월에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 권창섭 에디터
  • 승인 2020.05.27 00:52
  • 댓글 0
  • 조회수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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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너는 가을옷이 필요하구나 나는 봄옷을 생각하면서
양화대교를 건너고 있어

선유도에서는 볼 수 있을 거야 차마 겉으로는 구분되지 않는 계절

나의 9월은 너의 3월

- 구현우 시, 〈선유도〉 中

[뉴스페이퍼 = 권창섭 에디터, 시인]

 

6개월 차이. 

12개월을 주기로 갖는 우리의 시간 셈법에서, 정반대에 위치하는 두 지점 사이의 차이이다. 그래서 1월과 7월은 서로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하나는 가장 차가워서 가장 두껍고, 하나는 가장 뜨거워서 가장 얇다. 5월과 11월도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하나는 가장 푸르고 곧 가장 무성하며, 하나는 가장 붉고 곧 가장 초라해진다. 6개월 차이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있는 두 시점은 절대적으로 서로 반대일 수밖에 없는 거울상과 같다.

하지만 3월과 9월은 어떨까. 서로 반대라고 단정해 말하기엔 너무나 유사하다. 기후를 느끼는 감각이 유사해 우리는 3월에 입었던 옷을 9월에 다시 꺼낸다. 혹독한 추위, 그리고 더위를 지나, 서서히 몸의 움직임이 많아진다.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시작의 감각도 공유하며, 어쩐지 올해의 지나온 날과, 혹은 남은 날들을 손꼽아 세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지난 날들, 혹은 남은 날들을 세어보게 되는 순간, 다시 3월과 9월은 반대의 상으로서 마주한다. 3월은 오르막을 오르는 사선의 중간점, 그리고 9월은 내리막을 내려가는 사선의 중간점. 어쩌면 가장 닮았기에 가장 정확한 반대, 그래서 가장 확실한 타자일지도 모른다.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두 존재 역시 그렇지 않은가. 거울을 마주할 때 만나게 되는 가장 정확히 닮은 반사상은, 그래서 가장 쉽게 외부의 것으로 인지할 수 있다. 1인칭에서 분기되었으되 2인칭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시집의 나의 9월과, 너의 3월은 마치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가장 닮았지만 가장 닿을 수 없는, 가장 닮았지만 정확한 반대의, 그렇지만 가장 닮은. 그 두 지점에 나와 너를, 9월과 3월을, 나의 9월과 너의 3월을 배치해 놓은 구현우 시인, 그리고 그의 첫 시집, 《나의 9월은 너의 3월》. 

봄의 색이기도 하되 가을의 색이기도 할 듯한 붉은 시집을 들고, 구현우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사진=권창섭 에디터, 편집 한송희
[사진 = 최봉기 ,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창섭 : 정말이지 오래 기다리던 첫 시집이 나왔다. 이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이미 여러 차례 인터뷰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분이 어땠나?

현우 : 나를 찾아주신다는 사실 자체로 감사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터뷰는 적지 않은 품이 드는 일이니까. 다만 비슷한 시기에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하다 보니 동어반복을 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대중음악 작사가라는 이력이 그렇게 만드는 지점도 있었을 테고 말이다. 
그래도 신기하고 재밌는 지점도 물론 있었다.

창섭 : 무엇이었나?

현우 : 시 한 편 한 편이 아니라 시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시' 또는 '이별시'를 쓴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시는 사랑시이기도 할 테니, 의식하고 쓴 적은 없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묶어놓고 보니 소위 말하는 '사랑'에 천착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더라. 시보단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것들을 알게 되었다.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창섭 : 사랑에는 대개 “나”와 “너”가 등장할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이 시집에선 “나”(1인칭)와 “너”(2인칭)를 서로 다른 시공간에 위치시켜 이격해 둔다. 고로 서로간의 거리감이 느껴져야 할 것 같으나 오히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내에서의 갈등으로 느껴지더라.

현우 : 아마 나 스스로가 “가까운 거리=가까운 소통”이라고는 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불화하고 불신하게 된다. 나는 나를 볼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아는 내 목소리와 남들이 듣는 내 목소리가 묘하게 다른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어쩌면 그런 관점에서 나는 '나'를 알기 위해 '너'를 찾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건 '너' 또한 너를 모르고, 너의 입맛대로 나를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있는 상황에 갈등이 더 심화되는 것도 그렇다. 사물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사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멀리 있으면 없다고 생각해버리면 되지만 가까이 있으면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노력 안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관계를 피했다 내가 아는 한 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너와 나뿐이었다 대화중에도 네가 간혹

입을 다물고 나의 뒤를 응시했다 뒤에는 친숙한 것이 사라진 것이 무서운 것이 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돌아보지 않았다 볼 것도 없이

일반적인 불행이었다 혼자서 말해도 네가 생략되지 않는 날들이었다

- 구현우 시, 〈악인〉 中

창섭 : 사실 그것이 “나”(자아)와 “너”(타자) 사이의 관계를 보인다기보다는 “나”로 칭해지는 개인적 존재 내부의 이합과 집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현우 : 정확하게 봐 주셨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려고 애쓰는 '나'는 끊임없이 분열하는 주체다. 그러다 다시 한 목소리를 내는 존재기도 하다. 시편들을 쓰며 내가 가장 기저에 두고 있던 감정은 공포다. 공포는 알지 못하는 데에서 심화된다. 인지부조화 상태에 놓인 사람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일과도 같다. 시편들 속 '나'는 '너'를, '너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나 실은 '나'조차도 모르는 '나'의 등장을 무서워한다.

[사진 = 최봉기 ,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창섭 : 또 다른 키워드는 무엇이 있을까?

현우 : 해설에서 강동호 평론가가 "방"이라는 공간이 자주 활용되는 점을 짚어주셨다, 그것은 앞서 말한 공포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도망칠 수 없다는 무력감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아름다움'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다. 아름다움이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나'이기에 자주 발화된 게 아닐까 싶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공포에 대한 패배, 도피가 아니라 자아ㅡ타자로부터 발생한 공포를 이겨내려는 움직임이라고 본다.

창섭 : 63편의 시들 중 한 편을 꼽기가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시집을 읽기 위한 첫 길잡이로서 언급되었으면 하는 시가 있는가? 인용하도록 하겠다.

현우 : 표제작인 <선유도>가 아닐까. 하나 더 꼽아도 된다면 <악인>을 이야기하겠다. “나”, 그리고 “너”는 비교적 선명한 데 반해 그 둘의 관계성은 불투명한 작품들이다. 믿을 수 있는(없는) 화자의 목소리가 조금 더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시집을 읽는 길잡이 역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창섭 : 하하, 나도 그 두 편을 매우 좋게 읽었다. 여러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을텐데, 미처 못해 아쉬운 말이 있거나 보태고 싶은 말은 없는가.

현우 : 충분하다. 이 이상의 말은 아끼고 싶다. 작가로서 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다음 시로 보여주면 될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오늘 창섭씨 덕분에 처음 꺼내는 이야기가 많았다. 감사한 마음이다.

창섭 : 저 역시 감사하다. 9월에 이 시집을 다시 펴 보겠다. 


“나의 9월은 너의 3월”은 3월의 마지막 날에 출간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시간 감각과 너의 시간 감각 중에서 결국 너의 것이 선택된 셈이다. 우린 때론 타인의 감정과 감각에 쉽게 동화되고 그것을 공감이라는 말로 호명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분열이기도 할 것이다. “너의 3월”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린 “나의 9월”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너의 3월”에 맞이하게 된 이 시집을, 9월이 되어 다시 꺼내면 우린, “나의 9월”에 방점을 찍게 될 수도 있을까. 이번엔 네가,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게 될까. 그런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 시집은 “나의 9월은 너의 3월”이겠지만. 두고볼 일이다. 곧 9월은 올 것이다. 이미 “너의 3월은 나의 9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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