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과 이곳의 폭력이 예수의 발아래 묶이다, 이승하 시인의 『예수·폭력』
먼 곳과 이곳의 폭력이 예수의 발아래 묶이다, 이승하 시인의 『예수·폭력』
  • 정고요 에디터
  • 승인 2020.06.02 18:57
  • 댓글 0
  • 조회수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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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뉴스페이퍼 = 정고요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새 시집이 나왔다. 문학들 시인선의 세 번째 시집, 『예수·폭력』이다. 시인은 자신의 다른 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에서 채 끝맺지 못하였던 ‘예수에 관련된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예수·폭력』은 『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로부터 시작해 『감시와 처벌의 나날』(2016)을 지나며 예수에게 행해진 집단의 폭력과 이 폭력을 사랑으로 갚은 예수 생애를 추적한 결과물인 셈이다.

수록된 시들은 모두 60편이다. 제 1부의 시들을 읽으면 시인이 보는 예수가 독자에게도 보인다. 분노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 희로애락 안에서 여느 인간과 다를 것 없는 예수다. 시인은 예수의 생애를 다루면서 예수의 죽음에 대해 불가사의함을 느낀다.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밀라고 하였으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예수임에도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걸 시인은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아들을 잃고 비통해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피에타」, 「성모성월의 어머니」를 거쳐 「부활절에 진혼곡을 듣다」에서 세월호 3주기의 풍경과 겹치기도 한다. 제 2부와 3부에 실린 시들은 세계 곳곳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구체적인 고통을 그린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라고 외친 것처럼 시인이 바라보는 인간의 세계는 신에게서 버림받은 듯 고통과 폭력이 넘친다. 시인은 특히 예수가 태어난 땅과 그 근처에서 행해지는 폭력에 관심이 많아서 여기가 아닌 중동의 고통을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낀다. 시인의 말에 직접 밝혀놓기도 하였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교리인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수십 년째 극한의 대립 상태에서 살육을 일삼고 있습니다. 저는 중동의 폭력 사태를 외신으로 수시로 접하면서 이 땅의 사계절이 아름답다고 예찬하고 인정 미담들이 훈훈하다고 미소 지을 수 없었습니다.” 

시인은 그림, 기사, 사진과 통계를 시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고통과 폭력의 물성을 높인다. 텅 빈 거리에 주저앉아 카메라를 노려보는 티베트 난민 아이의 사진을 제시한 「노려보다」, 아동 성폭력 사건 경찰 접수현황의 연도별 통계를 넣은 「슬픔의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아동 학대 가해자 유형과 아동 학대 현황의 통계를 넣은 「아픔의 나라에서」 같은 시들이 이 예다. 한편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눈앞의 임산부와 파키스탄, 인도 등지에서 일어난 명예살인의 비극을 잇는 「생명에 대한 예의」 같은 시를 통해 시인은 이국의 고통과 여기를 연결하기도 한다. 시인이란 멀리 있는 것도 가까이 느끼는 자질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시집에 관하여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20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폭력과 광기의 나날이며 공포와 전율의 나날이며 감시와 처벌의 나날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난폭한 시를 말입니다. 언젠가는 제 목에서 까마귀의 비명이 아닌 꾀꼬리의 노래가 나올 날이 오겠지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유명한 시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시집을 덮으면 “별 한 개 보이지 않는 이 어둠 속에서/ 두 눈 부릅뜨고/ 날 밝기를 기다리리(「태초의 어둠」)”라는 시구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간절히 기도하는 시인의 두 손이 느껴진다. 

이승하 시인은 고문 정국을 다룬 시로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4·19와 5·18 이야기를 쓴 소설로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하였으며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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