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숙 소설가의 「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 상처 이후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당신의 몫,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김동숙 소설가의 「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 상처 이후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당신의 몫,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 강윤슬 에디터
  • 승인 2020.06.0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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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송희 에디터
사진 = 한송희 에디터

 

또 망쳤는데 어쩌면 좋죠? 삶이 파괴되는 상처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뉴스페이퍼 = 강윤슬 에디터] 망했다, 또 망했어. 아니 대체 이게 뭐람? 뭐가 망했느냐고? 이것저것 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곧잘 하곤 하는 말이다. 잘 그리려고 할수록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것보다 어째 더 망치는 것 같다. 이런 것은 그림뿐만이 아니다.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 하면 대충할 때보다 더 잘 안 되는 느낌이 들곤 한다. 요리든 뭐든 열심히 만들다 순간의 실수로 앗 하는 사이에 이미 일은 그르쳐버린 후다. 이런 경험 나만 하나요?

“어쩌죠? 또 망쳐버렸어요. 저는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만 저지를까요? (...) 왜 저는 마음을 쓸수록 자꾸 망가뜨려버리는 걸까요.”(「숲꽃마리」, 229) 여기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여자가 있다. 잘해보려 애쓰지만 애를 쓸수록 일을 그르치는 여자. 이 여자 역시 “마음을 쓸수록 어그러지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216) 한다. 나는 그녀의 말을 통해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위안을 얻는다.

이 이야기가 수록된 「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는 2011년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매미 울음소리」로 등단 후, 2019년 경기문화재단 문학창작집 출간지원에 선정된 소설집으로 김동숙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위에 넋두리처럼 쓰인 「숲꽃마리」라는 작품 외에 7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8편은 오랜 시간을 들여서 숙고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드는, 깊은 고민의 흔적이 담긴 날카로움을 품고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주로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폭력과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인생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사람들이 겪게 되는 폭력의 양상 역시 각양각색인데, 그 모습이 주위에서 볼 법한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소시민적 욕망과 각종 딜레마 사이에서의 고민 등을 담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주체성의 회복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답을 정해주지 않는다. 작중 인물들은 고민 속에서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그 나름대로 각자 자신의 삶을 고민하며 살아간다.

표제작인 「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는 가족들에게서조차 외면당하는 사람이 외국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며 겪는 이방인에 대한 만연한 폭력을 담는다. 「M, 결국 당신」에서는 작가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볼 법한 직업적 윤리와 도덕적 윤리 사이에서의 양심의 갈등을 다루며,「매달린 스푼과 포크 사이로 보이는」에서는 낭만적 사랑과 이해타산적인 사랑 사이를 오가며 느끼는 양심의 갈등과 딜레마가 현실적이라 흥미롭다. 

 

우리를 파괴하는 폭력, 그 근원은 무엇인가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각기 다른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에서는 칼자국을 가지고 태어났다며 가족에게서 거부당하고, 그 대안으로 간 외국에서 이혼하고 외국인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매달린 스푼과 포크 사이로 보이는」에서 남자는 자기 사업이 망하고 저를 도와주시던 아버지 역시 형편이 어려워진다.「폐허 산책 추락사건」에서는 시인과 여학생은 서로 작고 왜소하다, 뚱뚱하다며 외모와 태도 등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며 상처 준다.「한밤의 스메그 쇼룸」에서는 집안이 망해서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그때의 첫사랑과 친구가 결혼하며 그 친구는 자기가 그리던 것을 모방한다. 결혼했지만 난임이라는 이유로 시아버지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그를 돌보고 뒤처리를 해야 한다.「입속의 검은 새」에서는 딸과 어머니가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며 살다가 딸은 성폭행에 저항하다 죽는다. 「숲꽃마리」에서는 어렸을 적부터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진다. 모두 어딘가에 쉬이 발견할 수 있을 법한 상처다.

주로 외부로부터 오는 폭력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지만 항상 피해자로 남는 게 아니라 가끔은 역으로 가해자가 될 딜레마에 처하기도 한다.「매미 울음소리」에서는 남편이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새댁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도는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를 선택할지 소시민적 속물성과 정의 구현 사이에서 고민한다.「M, 결국 당신」에서는 현실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의 직업적 윤리를 택하다 인간적 윤리, 양심을 배반할 위기에 놓인다.「매달린 스푼과 포크 사이로 보이는」역시 낭만적 사랑과 현실적 조건에 맞는 이해 타산적 사랑을 저울질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의 상황에서 상반되는 것을 동시에 선택할 수 없기에 끊임없는 딜레마를 경험하게 된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 최선을 택해야 한다는 상황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폭력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근원은 자신을 우위에 놓는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을 억압해서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려 한다. 오히려 사회에서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일명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 패스가 많다는 말을 하곤 한다는 점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악, 폭력은 너무나 쉽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선택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세계를 사는 짐승과 차별되는 구석이 없어 보인다. 언젠가 김연수 작가의「소설가의 일」을 읽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야기를 하며, ‘악은 천박하고, 선은 숭고하다’라고 한 게 기억에 남는다. 그는 ‘악은 선의 결여’라고 하며,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아주 기나긴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간은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지만, 선이란 주로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이다. 적어도 그 대상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는 알아야 하고, 그것을 행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때로는 희생이 필요하기까지 하다. 

 

우리를 파괴하는 폭력으로부터 어떻게 우리 자신의 삶을 지키고 회복할 것인가?

작가는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주체성이란 것이 늘 선한 것이라고 판단 내리지는 않는다. 적어도 운명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지 말라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주체적인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판단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다.

런던을 배경으로 한「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에서는 이주민으로 살면서 이웃 현지인들의 계란 투척과 폭언 등의 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든다.「매미 울음소리」에서는 이웃의 친한 새댁을 성추행을 저지른 것은 남편이지만,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한 소시민적 탐욕으로 그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2차 가해를 한다.

「입속의 검은 새」에서는 성폭력을 당하려다 죽은 딸을 위해 솜방망이 처분을 받은 가해자를 처벌하고자 서명운동을 한다. 「한밤의 스메그 쇼룸」에서는 집안이 갑자기 망하며 미대 진학도 포기하고 결혼해서는 애도 못 낳는 년이라고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시달리지만, 자기 옷에 모나크 버터플라이를 그려 넣고, 스메그 쇼룸에 취업해서 늦게까지 남아 스메그 쇼룸을 즐기며 첫사랑을 뺏어간 옛날 친구와 시아버지에게 복수를 꿈꾸는 등 자신만의 ‘스웨그’(?)를 잃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실수한 것은 실수한대로 그 나름의 방식을 찾아가는 삶, 상처를 받아도 삶은 계속된다.

인간은 제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어떤 상처는 자기를 괴롭힌 상대방에게 복수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상처가 복수를 꿈꾸며 아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작가는 실수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 역시 주체성의 회복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바느질이 뜻대로 안 되어서 속상할 때가 많았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내려놓게 되더라. 어느 부분은 실수한 대로 어느 부분은 부족한 대로 어우러져 완성된 작품이 나오는 게 자수더라고.”(230)

「숲꽃마리」에서 실수를 하며 푸념하는 여자를 보고 이모가 다독이며 하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씨실과 날실이 엮여 이루어지는 게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나의 인생은 여기저기 코가 꿰어 울퉁불퉁한 직물 같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수를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찢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나의 삶은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테니까. 지금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언제나 나의 선택이 100%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결정했고, 나의 주체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혹시 아나, 나중에 가면 그 나름대로 괜찮은 삶이었다고 만족할 수 있을 런지도. 

그런 의미에서, 실수를 하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나는 그림도, 다른 것들도 계속 해볼 생각이다. “태양을 더듬거려 아메리카 대륙에서 멕시코 미초아칸 마을까지 찾아가는 모나크 버터플라이의 더듬이처럼 스웨그를 잃지 않으면 언젠가 어떤 문이라도 열”(130)릴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실수하고 상처 받아도 내 인생에는 “더 이상 낯설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꿈이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148) 그리고 “모나크 버터플라이가 더듬이가 아니라 어쩌면 영혼의 땅이 기다리고 있다는 그들만의 스웨그로 5000 킬로미터를 날아가”(147)듯이 삶은 그렇게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희망을 품고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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