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집회 열려... 친일문학상 논란 속 제31회 수상자는 구모룡 평론가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집회 열려... 친일문학상 논란 속 제31회 수상자는 구모룡 평론가
  • 김보관 기자
  • 승인 2020.06.20 01:14
  • 댓글 0
  • 조회수 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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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동인 중심으로 진행된 팔봉비평문학상, 문학비평계를 오도된 방향으로 이끌어”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집회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집회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마침내 ‘선전포고’다!/ 영·미의 두상(頭上)에 폭탄의 피를 퍼부어라! ……/ (중략) 극동의 해가 찬란한 해가 뚜렷한 일장기가/ 아침 하늘에 빛난다 이글이글 탄다/ 황공하옵게도 조서(詔書)가 내렸다! ‘선전포고’다!/ 1억의 국민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기약하지 않고 일치해 버렸다.”

-팔봉비평문학상이 기리는 친일 문인 김기진, ‘아세아의 피’ 일부.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광복 후 75년이 흐른 지금, 일제강점기 친일 잔재 청산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법무부는 친일파 이해승, 임선준의 후손이 물려받은 2만여㎡ 토지 환수 절차에 착수했다. 전국광역시‧도의회의장은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 이장과 이미 수여된 훈장의 취소를 담은 법률 개정안을 요구했으며 수원시의회에서는 친일파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와 관련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처럼 국가적으로 친일행위자들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한때, 문학계는 여전히 친일 문인을 기리는 상을 주고받아 논란을 빚고 있다. 19일 친일문인기념상인 팔봉비평문학상의 시상식에 맞서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촉구 집회”가 열렸다. 올해로 31회차를 맞는 팔봉비평문학상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친일 문인 김기진을 기리는 상으로 꾸준한 논란이 되어왔다. 

이번 수상자인 구모룡 평론가는 뉴스페이퍼와의 통화에서 “그간 내가 걸어온 길을 봐주지 않고 수상 사실 자체로만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현재의 비판 방식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며 소아적이기까지 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팔봉비평문학상을 친일문인기념상으로 생각하고 받은 게 아니다. 국내 유일하다시피한 비평상이다. 30명이 이어온 전통에 내 이름을 얹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팔봉비평문학상의 폐지 논란과 관련해서는 “상의 제정이나 운영 등은 나와 관계가 없다. 운영 주체와 이야기해야 한다.”라는 답변을 전했다.

팔봉비평문학상을 운영해온 한국일보사에 ‘즉각 폐지’와 ‘국민 사과’를 요청한 이번 집회는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주최했다. 주최 측은 “팔봉 김기진은 생애에 단 한 번도 자신의 친일 행적을 반성하지 않았”음을 명시하면서 “이와 같은 친일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공공선과 사회정의를 추구해야 할 언론사가 제정”하는 일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제31회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장 앞 [사진 = 김보관 기자]
제31회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장 앞 [사진 = 김보관 기자]

더불어 현직 교수이자 한국작가회의 회원인 구모룡 평론가에게 “지성인으로서 친일 문인을 기리는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을 당연히 거부”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2017년 한국작가회의는 회원들에게 친일문인기념문학상과 관련된 심사와 수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친일문인기념문학상에 참여하는 행위는 과거 친일 문인의 친일반민족행위를 긍정하고 이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일조하기 때문이다. 제31회 수상자인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부산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작가회의 신현수 사무총장은  “김기진의 공과 과가 있겠지만, 과의 지점이 분명하다.”며 “굳이 친일 행적이 확실한 사람을 기리는 상까지 만들어 주고받아야 하는가.”라는 말로 친일문인기념상에 대한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팔봉비평문학상에 대한 문제 제기는 친일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촉구 집회”에서는 이른바 ‘상 나눠 먹기’와 같은 행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집회 측은 “팔봉비평문학상의 수상자나 심사위원의 면면을 검토해 본 결과 이른바 ‘문학과지성’ 동인들에 의해 기획되고 진행됐다.”며 “특정 문예지나 출판사의 인사가 한국의 문학비평계를 잘못된 방향으로 좌지우지하는 일이 극복”되어야 함을 직시했다.

제1회 수상자인 김현을 비롯해 역대 수상자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은 “문학과지성” 창간 멤버다. 각각 제11회, 21회, 25회, 28회 수상자인 정과리, 우찬제, 권오룡, 김형중 등은 “문학과지성”의 후신인 “문학과사회” 편집 동인으로 지냈다. 실제로 팔봉비평문학상의 수상자 상당수가 문학과지성 동인인 것이다. 

더욱이 “문학과지성” 편집 동인으로 지낸 정과리 평론가가 수상한 제11회 팔봉비평문학상 심사위원에는 “문학과지성” 창간 멤버인 김주연 평론가가 심사를 맡았다. 마찬가지로 “문학과지성” 편집 동인이었던 김형중 평론가가 수상한 제28회 팔봉비평문학상 심사위원에는 김주연, 정과리 교수가 모두 들어간다. “문학과지성” 또는 그의 후신인 “문학과사회” 동인이 심사자인 동시에 수상자인 사례다. 역대 수상자였던 정과리 교수와 우찬제 교수 또한 오형엽, 김동식 교수와 함께 이번 팔봉비평문학상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뉴스페이퍼는 논란이 된 팔봉비평문학상의 심사위원장 정과리 평론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현재 전화를 받을 상황이 못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집회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집회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한편, 일제강점기 김기진은 조선 청년들을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에 참전하도록 여러 차례 독려했다. 특히 1943년 10월 학도병제도가 시행된 이후 매일신보에 발표한 ‘나도 가겠습니다 – 특별지원병이 되는 아들을 대신해서’에서는 학병으로 나가는 아들의 목소리를 빌려 일제강점기 징병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사실이 나타난다.

“한사람에 천년의 목숨 없고/ 천 살을 산들 썩어 살면 무엇에 씁니까!// 대대로 받아 내려온 제 몸의 이 더운 피/ 이 피는 조선의 피이며 일본의 피요,/ 다 같은 아세아의 피가 아니오니까/ (중략) 지금, 아세아의 지도를 동포의 피로써 새로이 그릴 때―”

팔봉 김기진은 글쓰기와 사회활동 모든 면에서 적극적인 친일 인사로 활동해 해방 직후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반민족 인사로 수배되었으나 체포되지 않았다. 그는 생애 친일 행적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이를 회고록에서 반복적으로 복기하며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으며 한국펜클럽 고문과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하면서 무탈한 말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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