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와 칸타의 장』: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환상
『시하와 칸타의 장』: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환상
  • 알량한(필명) 에디터
  • 승인 2020.07.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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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뉴스페이퍼 = 알량한(필명) 에디터]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인구자연증가분이 1983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제 출산율 문제는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면 신생아 수가 현재의 절반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출산율 문제는 단순히 경제나 정부 차원의 위기를 넘어, 하나의 생명체로서 부자연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자꾸만 헛발질을 반복한다. 혹시 우리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 판타지 문학의 대표 작가 이영도의 신작 『시하와 칸타의 장』이 출간됐다. 판타지 장르와 환상의 의미에 대해 되묻는 메타적인 작품이기에, 기존 판타지 소설이나 이영도 작가의 팬이라면 더 많은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소설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장르와 작가에 문외한인 독자들을 소외시키지는 않는다. 새로운 명칭들과 개념들에 익숙해질 준비만 되어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경험은 날카롭게 풍자된 현실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에 완전히 낯선 것도 아니다.

요정과 용, 캇파 같은 이른바 ‘환상종’과 인간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어우러지는 미래 세계. 주인공 시하는 멸망 이후에 살아남은 인류에 대해 증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혹독한 환경 속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을 죄악으로 여긴다.

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인류의 멸종이 유예되지. 하지만 그 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길어지는 건 인류의 혼수상태야. 그게 지금의 우리지. (136~137쪽)

그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출산율 저하 문제’에 대해 냉소하는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다. 

때문에 인류의 재건을 꿈꾸는 ‘마트족’은 시하에겐 눈엣가시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마트퀸’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생물학적 최소 요구 숫자인) 만 2천 명까지 인구수를 늘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았다. 인류의 재건에 꼭 필요한 또다른 요소는 인류가 쌓아올린 문학적 축적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아카이브가 시하의 머릿속에 있었다. 모든 희망이 시하에게 달린 것이다. 그녀는 마음을 바꿔 인류의 재건을 도울 것인지 갈등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야기는 출산율 문제를 넘어 인류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무엇인가를 사유하게 한다. 단순히 인간의 생물학적 번식만이 인류의 생존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 이상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소설 속 세계관에 의하면, ‘환상종’이 인간 앞에 나타나는 것은 인류 멸망의 증거이다. 마치 죽어가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헛것 같은 것. 그렇다면 인류에게 환상은 피해야 하는 경고가 된다. 하지만 작가는 과감하게 그 환상을 끌어안는 것만이 인간이 가진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요정 ‘데르긴’은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낸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발정제 정도로 사용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시하는 그것을 (환상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을 확증하고 긍정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누군가는 그 두 가지(발정제와 사랑의 묘약)가 동일한 것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물학적 번식만으로는 ‘인류의 혼수상태’가 길어질 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작가는 생존의 문제에서 다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출산율 저하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적어도 발정제 같은 건 아닐 것이다. 기성세대의 발상은 아직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연애, 결혼, 출산 등등 N가지 삶의 조건을 포기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태의) 젊은 세대에게는 사람답게 사는 삶을 보장하는 게 우선이다. 사랑이란 환상을 허락하는 것. (그리고 소설가가 계속해서 소설을 써내는 것) 나머지는 그 다음에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소설 속 요정 데르긴의 말처럼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수준이겠지만 말이다. ‘기대해도 되나?’(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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