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의 공간에 색과 향을 덧붙이다! - 진도 박남인 시인 두 번째 시집 ‘몽유진도’
공감각의 공간에 색과 향을 덧붙이다! - 진도 박남인 시인 두 번째 시집 ‘몽유진도’
  • 김기준 에디터, 시인
  • 승인 2020.07.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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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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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기억도 넘기거나 나누어야 한다. 홀로 너무 깊이 새기면 상처가 되고,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시를 쓰는 것도 사실 기억의 형상화다. 나는 쓰기보다는 (시를)그린다. 공감각의 공간에 색과 향을 덧붙이고자 한다. 내 방식의 불협화음을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어색하지만 누군가 다시 음률을 다듬어 독화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기대한다. <박남인 시인의 말>

[뉴스페이퍼=김기준 에디터, 시인] 남녘 섬 진도의 박남인(본명 박종호) 시인이 첫 시집 ‘당신의 바다’에 이어 두 번째 시집 ‘몽유진도’(문학들 刊, 173쪽)를 출간했다. 그는 만들어진 시인이라기보다는 생래적으로 타고난, 천생 시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송태웅 시인은 “그를 시인으로 이끈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진도의 바다와 들녘과 사람들이었다”라며 “이번 시집은 진도에 부는 바람에 대한 헌사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뭐랄까? 그의 시에 대한 느낌은... 우선, 남녘 바다 냄새가 났다. 이 비릿한 바다 냄새는 삼베옷에 묻어있는 육지 사람들의 순박한 땀 냄새이기도 했고, 바다를 소재로 그린 풍경화에서 진하게 퍼져 나오는 물감 냄새 같았다. 시인은 그렇게 도화지에 색칠하듯 시를 그렸고, 다양한 향을 피워냈다. 그것은 기억을 나누거나 형상화하는 일을 통해 얻어낸 삶의 고백과 같았다. 

분홍치마가
가사도 바다에 물든다
소리 질러 산을 부른다는 
진도 여자들은
제 소리에 놀라 애기를 낳고
바다도 흥청흥청
흥타령에 노을을 건넌다
누군들 차마 눈물을 지우랴
세방리 바다에 뜬다는
동백 처녀 주지도 장삼도
부처섬 손가락섬 발가락섬
등신공양 보석이 된 섬 
휘청휘청거리는 백수광부
마침내 그 바다를 건넜을까

<세방낙조> 부분

진도의 시인은 진도 제일의 풍경이자 관광 상품으로 꼽히는 ‘세방낙조’를 보면서 다양한 상상력을 끌어올린다. 곽재구 시인은 ‘전장포아리랑’에서 진도 위쪽에 자리 잡은 섬들을 ‘서러운 우리나라 눈물’로 보았다. 이 시에서도 가사도, 장삼도(장산도), 주지도(손가락 섬), 양덕도(발가락 섬), 부처섬(부채 섬) 등 여러 섬이 등장한다. 그러나 섬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섬들을 나열한 것뿐이다. 즉, 공감각의 공간에 색과 향을 덧붙이면서 섬들을 끌어모았다. 시인은 그렇게 그림을 그리듯 자신만의 시를 꾸몄다.

가난도 설움도 흥그레 타령에 그칠 뿐이었다
온갖 잡놈들이 초상집 저녁을 뒤틀린 소리로 수놓는 다시래기
땡중은 봉사 마누라 배때기를 감싸면 상주 설움도 달빛에 녹았다

<다시래기 최홍림전> 일부

그의 시는 죽은 자를 위한 놀이가 정작 산 자들을 위한 놀이가 되는 진도의 ‘다시래기’를 닮았다. ‘다시래기’는 진도 지역에서 출상 전야에 상주를 위로하기 위해 펼치는 가무(歌舞)를 말한다. 어쩌면 ‘다시래기’를 아는 진도 사람들은 진도와 주변 섬들의 질기고 애잔한 역사를 담으려고 한 시인의 세상을 훨씬 잘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아래의 시는 감칠맛 나는 시적 표현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 시적 표현이 소소한 시인의 일상과 과거의 기억을 절묘하게 분리해 놓는다. 때론, 자신이 아닌 지인들이나 가까운 시인들의 이야기를 물감으로 도화지에 산등선을 그리듯 터치하는 여유도 살려낸다.

참 복 많은 나는 선착장 노두에
뜰낚시 찌처럼 건들건들거리다가
오후엔 진료가방을 메고 막대기로 풀을 흔들며
반 오리 산길을 넘어 출장 진료를 다녔다

<관사도 2> 부분

시집을 받는 일이 높새바람 맞는 듯하다
광주 사는 김완 선배가 지방선거를 앞둔
며칠 전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라고 속삭였다.
언제 천안으로 부표를 옮긴 김해자가
‘해자네 점집 김해자’표 택리지를 보냈다

<해자네 점집> 부분

임동확 시인은 “‘슬픔도 첫눈처럼 반가운’ 진도의 ‘만정상회’를 신전(神殿) 삼아 못다 한 그리움의 잔을 채우고 비우는 시인이다”라고 박 시인에 관해 평했다. 그러면서 “진도의 홍주처럼 붉고 투명한 영혼을 지닌 ‘영원한 소년’”이라고 표4에 적었다.

진도에서 태어난 박남인 시인은 유학과 노동운동 시절을 제외하고 평생을 진도에서 살았다. 1991년 문예계간지 ‘노둣돌’에 작품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첫 시집 ‘당신의 바다’를 출간했고, 인천노동자문학회장과 진도민예총 지부장, ‘진도문화’ 편집장 등을 했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인 ‘몽유진도’를 비롯해 61편의 시가 실려 있다. 앞서 ‘문학들’은 고재종(고요를 시청하다), 한승원(꽃에 씌어 산다), 이승하(예수·폭력) 시인의 시집을 이 출판사 시인선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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