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 소설, 평론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박덕규 시인의 데뷔 40주년을 맞아
[인터뷰] 시, 소설, 평론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박덕규 시인의 데뷔 40주년을 맞아
  • 송진아 기자
  • 승인 2020.06.30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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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의 문학,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환하게 웃는 박덕규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난 뒤, 4학년 복도에 진열된 방학숙제 ‘나의 문집’들을 봤어요. ‘아, 내가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동시, 수필, 동화 등을 다양하게 쓰기 시작했어요. 색지에 글을 쓰고 두꺼운 흑표지를 입혀 철끈으로 묶는 방식으로 직접 문집을 만들었죠. 인상적인 작품에 감동해 문학에 젖어 든 보통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게 저는 처음부터 ‘글 쓰고 책 내는 재미’에 빠져들었어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거의 10권의 문집이 만들어졌어요. 글 수준이야 말할 게 없지만요.”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박덕규 시인은 어릴 적부터 줄곧 문학과 함께해왔다. 문집 만들기에 매료된 시절을 지나 중학교 3학년 때에는 당시 전국 문학 청년들이 모이던 학생 대상 종합 잡지 “학원”에 글을 실으며 문학도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학원”은 1952년 대구에서 출범한 학생 잡지로 1970년대 후반까지 이 ‘학원문단’에서 많은 중견 문인들이 청년 문사로 활약했다. 박덕규 시인은 “당시 “학원”이 내게 포문을 열어줬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그는 문예반에 들어가 선배들에게 자극을 받으며 성장했다. 특히 소설 분야로 공모전 입상 실적을 쌓았고, 그 덕에 대학에 특기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소설가로서의 이른 데뷔 역시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유신 말기로부터 5공 정부로 이어지는 시국에서 사학비리에 저항하는 학내 시위, 5.18 등의 사회 분위기를 문학에 반영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박덕규 시인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소설에 담으려니 진전이 어려웠다. 당대의 현실을 시에 담을 수 있으리라는 꿈으로 열심히 시를 썼다.”고 덧붙였다. 

박덕규 시집 “골목을 나는 나비”

시인으로서의 데뷔 기회도 빠르게 찾아왔다. 1980년 7월, 계엄령에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문학과지성”에 투고한 시가 뽑혔다는 연락이 왔다. 가을호에 시가 실리게 되었는데, 발간을 보름쯤 앞둔 8월 초 계엄사령부의 ‘81언론 통폐합 조치’가 내려졌다. “문학과지성” 등 다수의 방송, 신문, 잡지가 폐업 당함에 따라 박 시인의 데뷔 지면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그해 12월 신춘문예 당선을 한 동료들과 함께 창간한 것이 “시운동”이다. 박덕규 시인에게는 바로 이 창간호가 데뷔 지면이 된다. 

박덕규 시인은 동인 활동을 하는 동시에 못다 한 소설을 쓰는 한편, 선배들의 평론집들을 읽으며 평론도 썼다. 그의 첫 평론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혔다. 같은 해 10월 다시 월간 “한국문학” 신인상 평론에 당선하며 시와 평론을 겸하게 된다. 그로부터 10여 년, 박덕규 시인은 “세속적인 삶에 찌들기 시작하면서 이런 삶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소설 아닌가 하는 자각이 일어 새롭게 소설을 쓰리라 마음먹었”고 계간 “상상”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4년의 일이다. 

그 후 20년간 그는 시를 단 한 줄도 쓰지 않고 소설에 매달렸다. 자신의 소설이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더불어 소설가가 된 이후 여러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신설하면서 소설가 교수가 필요해짐에 따라 박 시인도 소설가로서 대학에 적을 두게 됐다. 박덕규 시인은 “처음에는 소설을 열심히 썼는데 점차 힘이 달려갔다.”며 “10년, 20년, 결국 소설 쓴다는 이유로 시를 참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됐다. 그래서 다시 시를 썼고, 첫 시집 이후 3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골목을 나는 나비”, 그리고 5년 뒤 작년 말 “날 두고 가라”를 이어 냈다.”고 전했다. 

박덕규 시집 “날 두고 가라”

시집 “날 두고 가라”는 이익과 권력을 맹목적으로 좇는 이들에 대한 선언적 제목을 달고 독자를 찾았다. 시집 제1부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제2부는 해외에서의 경험을 통한 디아스포라 삶과 모순을, 제3부는 서정과 유년의 시절을, 제4부는 세속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제5부는 일상의 풍경과 상처를 담았다. 박덕규 시인은 특히 ‘풍속을 드러내는 시’에 대해 “한 사람의 인생을 함축적 서사로 서술해 살아온 시대를 대변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시인으로 데뷔한 지 40년을 맞이한 박덕규 시인이 시, 평론, 소설을 모두 쓰게 된 사연은 이러하지만, 여기에 그친 게 아니다. 동화도 손을 댔고 공연 극본 쪽으로 잠깐 눈을 돌리기도 했다. 그렇게 ‘다장르 작가’란 말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박덕규 시인은 “어떤 곳에서는 ‘쟤 시인이잖아.’라고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저 사람은 소설가지.’ 해서 손해 보는 것도 많지만, 때로 생기는 이득도 아예 없진 않다.”며 웃어 보였다.

박덕규 시인이 기획한 책, “미국의 수필폭풍”

박덕규 시인은 문학 교육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면으로 나섰다. 그는 2014년부터 꾸준히 해외 한인들에게 강의를 진행하며 국내외를 오갔다. 시인은 “해외 한인들이 모국어로 문학을 한다는 자체에 관한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꼈다.”며 “주로 수필 강의를 하는데 수업 준비를 위해 장르적으로 수필을 깊이 읽고 고민했다.”고 부연했다. 미국과 호주 등 여러 나라의 한인들과 함께한 경험은 여러 편의 시가 되어 시집에 수록돼 있다. 

환하게 웃는 박덕규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국제적으로 책을 전달하는 데에는 빠르면 한 달, 늦으면 몇 달이 소요됩니다. 일목요연하게 지속적인 전달할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능하다면 ‘다양한 지역을 모을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유튜브를 시작했죠.”

이처럼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온 그가 작년 여름부터는 유튜브 ‘곰곰나루’에서 문학 코너를 운영한다. 종이 출판물의 한계를 생각해 더욱 다양한 형태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박덕규 시인은 해외를 다니던 때를 떠올리며 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콘텐츠로서의 유튜브를 이야기했다.

박덕규 시인은 “문자를 잘 보여주는 게 책이다. 인류가 필요에 따라 발명해 몇천 년 지속해 온 만큼 종이책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라면서도 “책은 비싼 명함과 같다. 한 권의 책으로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는 각자의 환상과 만족감이 담겨 있지만, 많은 사람이 찾지도 않는 책들이 매우 많다는 기본적인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직시했다.

그렇기에 박덕규 시인에게 유튜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 작가들의 통로다. 그는 ‘유튜브 신춘문예’ 같은 방식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시, 동시, 수필, 동화 등 화상 전달이 쉬운 짧은 글을 공모해 당선작을 유튜브로 게재하고 전 세계 한인들과 공유”하는 절차를 설명했다. 박덕규 시인은 “조회수가 많은 작품에 상금을 더 주는 식으로 홍보 효과를 키우면 문학 장려와 동시에 곧 수익이 되는 일이 이뤄질 수 있다. 아직은 꿈에 불과하다.”라고 덧붙였다.

박덕규 시인이 기획한 책,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

새로운 시대의 문학을 고민하는 박덕규 시인의 문학관은 어떤 것일까? 시인은 이청준 소설 「소문의 벽」을 떠올렸다. 그는 “소설 속에서 어두컴컴한 밤에 누군가 갑자기 전짓불을 비추며 ‘좌냐 우냐’는 질문을 던진다.”는 말과 함께 “우리 사회는 끝없이 그런 강압적인 질문을 되풀이하며 서로가 그 논리 속에 함몰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아가 시인은 “집단가치에 편승하는 건 문학이 아니다. 집단가치만 얘기하다 보면 먼 미래를 바라보며 고민해야 할 문학이 되레 위축한다.”며 “그 사이 문학의, 소위 권력적이고 상업적인 지위만 옹호되고 방임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박덕규 시인에게 문학은 기존의 지엽적인 틀을 벗어난 또 다른 형식으로의 ‘질문’이다. 기존의 체재를 고찰하고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근래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여러 사회 문제를 연상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자본에 소외된 수많은 사람이 드러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이름 아래 끝없는 욕망의 탑을 세울 게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살펴보며 ‘과연 이 방식이 옳은가?’를 반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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