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불공정 관행 09] 이기호 작가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작가노조 형성 시급”
[문학계 불공정 관행 09] 이기호 작가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작가노조 형성 시급”
  • 이민우 기자
  • 승인 2020.06.3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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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제도 및 공공 영역에서의 개선이 우선 과제
이기호 소설가

이상문학상 사태로 대표되는 저작권 양도 문제와 더불어 매절 계약, 출판 위계 문제 등 여러 불공정 사례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요청은 ‘중견 작가, 유명 작가들의 목소리가 절실하다.’는 이야기였다. 문학계 내 불공정한 상황 대부분은 인지도나 권력을 갖고 있지 않은 신인 작가들에게 벌어졌으나 신인 작가의 문제 제기는 현실적 한계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에 뉴스페이퍼는 이상문학상 폭로의 주역 중 하나인 이기호 소설가를 만났다. “기성 작가나 원로 문인보다도 젊은 세대의 예비 작가, 신인 작가에게 먼저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뗀 그는 정부의 문학 지원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우선 언급했다.

국가 지원 정책의 재점검 필요성

이기호 소설가가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간 부분은 공적 영역에서의 불공정 사례다. 그는 상당한 규모로 배분되는 각 지자체의 문학 분야 예산을 이야기하며 “이것이 어떤 식으로 분배되고 책정되는가?”를 반문했다. 지역 예산 중 중 문학 단체에 주는 보조금이 연간 2, 3억으로 책정 경우도 있지만, 이것이 예술가 개개인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원금이 개별 예술가들이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보다는 특정 단체들의 나눠먹기식 ‘친목 도모’에 사용된다.”라고 비판했다. 이기호 소설가에 따르면 시낭송회 한 번에 수천만 원이 지원되지만, 원고료가 아닌 행사 진행비로 나가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는 “제도의 기반부터 틀어져 있다.”는 말과 함께 예산 배정 문제로 시의원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일부 문인 단체들의 행태를 고발했다. 지역 내 세력을 가진 단체들의 경우 공무 집행 과정에까지 개입해 부당한 지원금을 타간다는 것이다.

이기호 소설가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문화 영역이 멈춘 지금, 그간 문학 정책이나 지원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며 “보여주기식 행사나 기성 문학 단체 위주로 예산이 편성되어 실질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작가를 지원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번 기회를 통해 문학 분야 지원 정책의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기호 소설가는 행사, 기성 문인, 단체 중심의 지원 아래 젊은 작가들이 소외되어 있음에 안타까운 목소리를 냄과 동시에 “국제 행사나 문학관 설립보다 후속 세대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기호 소설가는 “물론 중견 작가의 관점에서도 출판계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사례가 많다고 느낀다. 다만 국가가 개별 작가에게 가하는 불공정 관행, 문학을 등한시하는 시선과 제도 등을 깨고 나야 출판사가 그 뒤를 따를 수 있다.”는 이야기로 문제 해결의 순서를 강조했다. IT 발전을 위해 기초과학에 예산을 지원하듯 기초예술 분야인 문학에 대한 지원도 확대되어야 한다는 말도 함께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최저원고료

올해로 데뷔 21년 차인 이기호 소설가는 신인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소설 한 편의 원고료는 원고지 한 장당 8,000원에서 10,000원 선이었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 고료는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한편, 90년대 말 한 권에 8,000원 내외이던 단행본 가격은 근래 13,000원 선을 오간다. 98년 택시 기본요금은 1300원이며(2020년 서울시 기준 3,800원) 짜장면은 3,000원(2018년 서울시 평균 6,714원)인 사실을 감안해보면 유독 책만 낮은 비율의 상승률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이기호 소설가는 “작가에게는 생계비와 같은 원고료를 마냥 자본의 영역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출판사가 일반 물가 상승률만큼 고료를 올린다면 적자로 이어져 운영이 힘들 확률이 높다. 그러한 상황은 작가도 원하지 않는다. 국가 제도적 틀 안에서 같이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첨언했다. 그가 예시로 든 참여정부 시절에는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기초예술 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직접적인 원고료 지원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이 문제의 핵심에 정부가 있다고 직시했다. 정부의 예산 확보를 통해 출판사와 작가에 대한 각각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기호 소설가는 “원고료 지원의 성격을 띤 문예지진흥기금은 출판사를 거쳐 지급되는 만큼 더욱 직접적인 작가 지원 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시스템의 허점을 꼬집었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 2차 저작권 개념 정립은?

나아가 원저작물의 번역, 편곡, 변형, 각색, 영상제작을 포함하는 ‘2차 저작권’을 둘러싼 불분명한 제도 설정도 지적됐다. 이기호 소설가는 “1차 저작권 문제인 인세의 경우 흔히 알고 있는 비율이나 관례들이 있지만, 2차 저작권은 애초에 통용되는 상식이 없다. 영화 판권이 팔리면 출판사와 작가가 어떻게 나누는지, 전자책은 어떤지, 평균화된 숫자 개념은 물론이고 정해진 규칙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2차 저작권 조항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나같이 경력이 있는 작가도 정확히 내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며 “특히 2차 저작권 문제를 제기했을 때, 단행본 출간 문제까지도 계약이 안 될 것 같은 압박이 있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 발생할지 아닐지 모를 저작권 수익 때문에 당장 계약을 포기하긴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고 말을 이었다.

2차 저작권 협상 시 작가마다 출판사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 작가에게 혼란을 주는 때도 빈번하다. 이기호 소설가에 따르면 종이책 인세의 경우 10% 내외의 비율이 공공연한 사실로 자리 잡았다면 2차 저작권의 배분 비율은 대형출판사 사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기획회의 제501호(2019)”에 실린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여전히 서면계약 없이 출판하는 경우가 남아있는 데다 계약 내용이 단순하고 모호해 각각의 권한을 따지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2차 저작권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는 대부분 이와 관련이 있으며 현행법상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받아 별도로 작성되어야 할 2차 저작권 계약서는 대부분 추가 조항 정도로 표기되고 있다.

새로 등장한 전자책, 오디오책 등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도서 월 정액제 무제한 다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에서의 저작권이나 인세 설정은 각각의 회사, 작가, 시기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근 몇 년 새 등장한 신생 매체에 관한 표준계약서 내지는 권고안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기호 소설가는 “공용되는 정보와 기준선이 없고 이런 걸 정리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까지 2차 저작권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이제 중요해진 문제가 되었는데 그에 따른 제반이 못 따라오고 있다.”며 앞서 언급한 사안 중 제일 시급한 부분으로 2차 저작권 문제에 관한 개념 정립과 법률적 기반 마련을 꼽았다.

법적인 한계 속 ‘예술인권리보장법’과 작가노조’ 절실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제정은 필수적이라는 게 이기호 소설가의 입장이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중구난방으로 설정된 출판 계약 조항과 2차 저작권 문제 등에 관한 표준안을 제시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이기호 소설가는 “작가의 권익 침해에 대응하는 제도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제21대 국회에서 하루빨리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통과돼 법적 규제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문학 환경 속에서 다층적으로 침해받는 작가들의 권리를 우려했다.

그는 나아가 ‘작가노조’ 설립에 찬성의 뜻을 전했다. 젊은 신인 작가들이 소외된 기성의 단체가 아닌 새로운 방식의 작가 권익 보호 단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작가를 ‘노동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옳은지에 관한 의문이 있기는 하지만, 근래 들어 젊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창작’도 ‘노동’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현재 웹툰·웹소설·일러스트 작가들은 전국여성노조 산하 ‘디지털콘텐츠 창작노동자지회’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제20대 국회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무산된 현재, 작가노조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법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임의단체가 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한편 “국회의원의 잘못보다도 문체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발로 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시급히 법안이 처리되어 법적 권리를 보장받는 작가노조가 탄생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특정 단체나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작가들을 ‘노동조합’이라는 틀 안에 규합하기에 몇 가지 해결과제가 남아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술 창작 활동을 과연 고용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노동’으로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의 법사위 검토보고서에서 역시 예술인으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항목을 언급하며 “제정안은 근로자가 아닌 예술인에 대하여 근로자의 권리를 인정하려는 것으로, 현행 법체계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현행법상 근로자에 대한 판단 기준은 “노무제공자의 소득이 주로 특정 사업자에게 의존하는지, 노무제공자와 특정 사업자의 법률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적․전속적인지, 사용자와 노무제공자 사이에 어느 정도 지휘․감독관계가 있는지 등”이므로 개별 청탁을 받는 작가에게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의 공공성을 염두에 둘 때, 예술가는 실상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고용관계를 가진다는 의견도 있다. 

이기호 소설가는 “흔히 오해하는 내용과 달리 작가노조는 출판사와 작가 사이의 권리를 따지기 위함이 아니라 작가와 국가와의 관계에서 기능하기 위함이 크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책에 많은 영향을 받는 예술가들은 국가와의 협상 과정에서 목소리를 직접 전달할 단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기호 소설가는 “한국의 대표 문인 단체들은 모두 가치 연대지 작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가 아니다. 국가에서 정책 세울 때 그들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정작 작가 권리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개별 주체로서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작가들의 입장을 규합할 수 있는 단체로서의 ‘작가노조’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기호 소설가는 “그간 문학으로 여태 혜택을 받았던 우리 중견 작가들이 신인 작가들을 위해, 혜택을 사회에 돌려주는 차원에서 작가노조를 구성해야 한다.”며 “많은 신인들이 말할 때 윗세대는 무얼 하고 있었나?”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나름대로 인정받는 주요 작가들이 목소리를 냈을 때 들어주는 이들이 더욱 많을 거다. 지금은 중견 작가가 해야 할 책무가 크다.”는 이야기로 문학계 불공정 관행 타파의 단서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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