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
  • 강윤슬 에디터
  • 승인 2020.07.13 23:16
  • 댓글 0
  • 조회수 159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대로 애도하고 일어나는 방법과 위로에 관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 느끼는 스트레스

[뉴스페이퍼 = 강윤슬 에디터]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 그런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별이라든가 멀어짐, 그런 것들을 비롯해서 우리의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경험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대개 그런 경우는 마음이 아프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이별이 죽음으로 인한 것이라면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고 할 수 있다. 정신 건강 측면에서는 사별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 지수가 100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변화에 적응하는 스트레스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참고로 지수가 200이상이면 질병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이렇게 심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한 번은 죽게 되어있기 마련이므로 살아 있는 이상 주변인의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터부시 되어 있는 문화 탓에 사별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함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육체적 상해처럼 쉽게 꺼내어 이야기할 수 없곤 하다. 사별을 경험한 사람은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고, 그 주변 사람들은 그를 어떤 식으로 위로해야 할지 잘 모르고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가 병을 키운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부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인 ‘줄리아 새뮤얼’은 영국 최고의 심리치료사로, 30년 가까이 사별의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전문으로 치유하고 있다. 부모와 사별한 아이들을 도운 공로로 2015년에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을 정도. 그녀는 배우자, 부모, 형제자매, 자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케이스별로 다루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음의 힘을 키워주는 여덟 가지 기둥(고인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슬픔을 표현하는 법, 시간의 힘, 몸과 마음 챙기기, 한계를 느낄 때, 삶의 기틀 세우기, 집중하여 들여다보기)과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친구의 역할을 소개한다.

각각의 항목에는 그에 맞는 자신이 맡았던 환자들의 케이스들이 실려 있다. 물론 배경은 영국이지만, 고인과의 관계라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으로 인한 슬픔 등 시간과 공간을 떠나서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이해하기 쉽다. 

 

 

‘고통을 이겨내기’가 아닌 ‘고통과 함께 살아가기’

프로이트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극심한 슬픔이 가라앉아 상처는 끝내 아물지 않고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설령 그 무엇이 빈자리를 채우더라도, 가득 채우더라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고 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듯이, 한 사람이 남긴 궤적이란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가까울수록 그 빈자리로 인해 생기는 상처는 깊고 클 수밖에 없다.

그저 고통을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저자는 그 반대로 고통과 함께 하는 삶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다.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슬픔을 제대로 슬퍼하지 않는다면, 그 상처는 오래도록 남아서 곪아버린다. 오히려 슬퍼할 때는 슬픔에 집중해서 제대로 슬퍼해야 일어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을 신체가 다친 것으로 치환해본다면 다친 곳에 대한 집중 치료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앞에서 말한대로 삶의 궤적을 같이 했던 이가 우리 삶에 남긴 발자국을 없애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줄리 델피가 하는 말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 그 나름대로의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타인으로는 대체될 수 없는 각자만의 고유한 개성이 그들을 더욱 그립게 만든다. 비록 그들이 죽었을지언정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의미가 있고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무작정 그런 것들을 잊으려하기보다는 그 추억을 간직하고 계속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제대로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저자는 상담을 통해서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정과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혹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으면 그냥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허황된 약속보다는 지킬 수 있는 선 안에서 진심어린 마음을 나누는 것이 낫다. 

치유란 개인차가 있다. 같은 것을 경험하고도 느끼는 고통의 정도는 각자 다르기에 이겨내는 방법과 시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빨리 원상복귀’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극심한 고통과 같은 변화를 경험하고 나면 사람은 변한다. 이것은 일종의 대지진과도 같아서 그 일대의 지형이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게 일어나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책에서 나오는 각각의 케이스 역시 상담을 하고나서 바로 좋아지는 게 아니라 변화와 적응의 시간을 가진다. 더 나빠지는 상황도 있었다가 차츰차츰 나아진다. 하지만 나아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그 충격이 몇 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별 이후에는 원래 삶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고통 후 새로운 삶을 재건하는 것과 같다. 저자는 이는 결코 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주위의 지지를 받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다양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사별을 경험한 사람 역시 빨리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려고 애쓰기보다는 스스로를 잘 살피라고 한다. 운동이라든가 단순작업,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지는 활동(마사지, 꽃 사기, 요리 만들기, 독서, 음악 감상 등) 충분한 수면, 명상 등이 효과적이라고 권유한다. 꼭 제사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 역시 고인과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기에 헤쳐 나가는 방법과 시간 역시 다 다르다고 한다. 그러니 일률 단편적으로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담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내담자들은 도움을 받았고 거기서 얻은 케이스들을 뽑아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는 반려동물이나 종교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10여 년 전에 20여 년간 내 곁을 지켰던 아주 가까운 사람을 잃었다. 그건 그 때를 비롯하여 지금까지도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일이었다. 나는 내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고, 내 주변 사람들 역시 나를 돕고 싶어 했지만 동시에 어려워했다. 때로는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위로하려 했지만, 그게 통하지 않아 좌절감을 느끼는지 몇 달이 지나자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날 수는 없느냐는 말까지 했다. 그 사람의 본심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이 어렸던 만큼 나도 어렸기에, 나는 굉장히 상처받았다. 그 사람도 나도 이 책을 진작 읽었더라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방법이 좀 달라졌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의 사별로 나는 몹시 외롭고 우울했지만 돌아보면 항상 이런 안 좋은 이야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곁에는 가족 같이 가까운 좋은 친구들이 내 곁을 묵묵히 지켜줬고, 진심어린 애도의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그런 기억들이 있었기에 죽을 만큼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고, 누군가 그런 상실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졌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좀 더 건강한 방법으로 슬픔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고, 주변에 그런 괴로움을 겪는 이가 있다면 위로의 방법을 배우고 조심하며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죽음 뒤 존재는 소멸이 아니라 주변인의 기억 속에서 영생

갑작스러운 죽음이든 아니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옆에서 숨 쉬고 있던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다. 존재의 허무함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마음까지 어두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종교를 갖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어떤 종교가 아니더라도 죽는다고 해서 바로 그 사람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키케로는 ‘죽은 자는 산자의 기억 속에 산다.’고 했다. 그러니 고인들을 기억하는 동안에 그들은 결코 죽어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이 ‘소멸’을 의미하는 거라면, 에밀리 디킨슨의 말처럼 사랑은 불멸하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곁을 떠난 고인들이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계속 우리와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짧든 길든 내게 주어진 평생이라는 시간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으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