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 강북지부 문학강연 개최! 이승하 시인, ‘재소자와 소년원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다’
한국문협 강북지부 문학강연 개최! 이승하 시인, ‘재소자와 소년원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다’
  • 송진아 기자
  • 승인 2020.07.1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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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에 있는 이들에게도 빛을 전해줄 수 있어야
사회를 맡은 국중홍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사회를 맡은 국중홍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지난 8일 한 카페에서 한국문인협회 강부지부가 주최하는 문학강연이 개최됐다. 사회를 맡은 국중홍 시인은 “문우들에게서 이승하 선생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모시게 되어 감사하다.”며 이승하 시인의 이름으로 삼행시 노래를 선보이며 즐거운 시작을 알렸다. 

강연을 진행한 이승하 시인은 약 10년간 교도소, 구치소, 소년원에 시 창작 수업을 이어온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10년 전, 안양교도소 소장님의 부탁을 받아 처음으로 교도소 내 시 창작 교육을 하게 됐다. 이승하 시인은 당시를 떠올리며 “방문 전날 했던 우려와 달라 이웃집 아저씨, 총각 같은 외모의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강연 중인 이승하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강연 중인 이승하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첫날 시인이 교도소 안에 들어서야 대부분 재소자는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고 한다. 시인은 “멀끔하게 입고 온 나를 보며 ‘우리랑은 살아온 모든 게 다른 너는 우리의 입장과 처지를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이 사람들이 시를 쓰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난감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시인과 그의 어머니가 살아온 험난한 생애를 이야기하자 금세 달라졌다. 

‘여러분 저는 고등학교 퇴학당했습니다. 집의 돈을 훔쳐 가출한 후 서울 구경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광화문 독서실에서 웅크려 자며 가출 청소년으로 10대 후반을 보냈습니다. 대한민국의 큰 도시 대부분이 제 가출 장소였습니다.’ 

그제야 재소자들의 눈빛이 이승하 시인을 향했다. 그는 자신의 내밀한 삶을 전하며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갔다. 이승하 시인은 청년기 명석한 머리로 경성여자사범대학교 진학하지만, 한국전쟁 시기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납북으로 소녀 가장이 된 어머니의 이야기부터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에 관한 내용까지를 모두 풀어냈다.

“여러분, 형사나 경찰 싫어하시죠? 제 아버지가 20년 넘게 재직한 경찰관입니다. 제 형은 5살 때 신문을 읽을 정도로 수재였습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도 손쉽게 들어가서 대학교 2학년 때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하죠. 이 무렵 아버지는 경찰관을 그만두십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아버지는 직업이 없고,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와 가게를 꾸렸습니다. 그러던 중, 형이 폭탄선언을 합니다. ‘나는 법조계로 가지 않겠다.’ 큰 병에 걸린 것이죠. 이른바 ‘문학병’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형 대신 아버지의 화와 매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더이상은 안 되겠다’하는 생각이 들쯤 집을 나왔어요.”

시인의 진솔한 이야기에 재소자들은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승하 시인은 윤동주의 시편을 소개하며 시가 마냥 어려운 것이 아님을 설명했다. 윤동주 시집에 실린 동시처럼 ‘소박한 아이의 생각도 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그는 재소자들에게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써볼 것을 주문하며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기뻤던 일’, ‘어머니와의 기억’ 등 가깝게 연상할 수 있는 주제를 내주었다. 

다음 수업 때, 놀랍게도 수업을 듣는 재소자 전원이 숙제를 해왔다. 몇몇 재소자는 낭독 중간에 눈물이 북받쳐 동료 재소자가 대신 읽기도 했다. 이승하 시인은 “한 주 한 주 변해가는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시가 마음을 움직인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했다. 대학 강단에서도 못 느꼈던 감정을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문학 강연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문학 강연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재소자들과 있었던 소소한 일화도 소개됐다. 하루는 무슨 이야길 해줄까 하고 갔는데 60대 후반의 재소자가 원망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 저희 가르치러 오는 목사님, 신부님, 스님들은 떡을 잘 해오시는데 교수님은 월급도 많으면서 어떻게 한 번도 뭐를 안 사 오세요?’ 말을 들은 시인은 ‘잘못했나 보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무엇을 드시고 싶은지를 물었다. ‘어릴 때 먹었던 소보로빵’이 먹고 싶다는 대답에 이승하 시인은 빵을 한 아름 짊어지고 가는가 하면, 유명 프랜차이즈의 빵을 궁금해하는 재소자들의 주문을 받아 다시 전달하기도 했다. 

시인은 “장기수들의 경우 그들의 집과 방은 교도소 안이다.”라며 “가슴 아픈 사연부터 사소한 이야기까지, 몇 주 몇 달을 지내다 보면 정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출소해도 갈 곳이 없다고 한다
기다리고 있는 가족도 친구도 없다고 한다
아주 큰 집인 여기

철커덩

철문 닫히는 소리
일곱 개가 닫혀야
방에 갈 수 있다 나올 수 있다
내 집, 나의 방

-이승하 시인의 ‘집’ 전문. 

시 창작 수업이 끝나는 날 시인은 “지금까지 시를 열심히 써오셨습니다. 앞으로 계속 써서 보여주세요. 제가 나간다고 중단하지 말고 보내주세요. 첨삭지도 해 드리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적었다. 수강생 20명 가운데 대여섯 명은 한동안 열심히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중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해진 한 재소자는 제법 시를 잘 써 시인이 열심히 첨삭을 지도했다. 그러나 실력이 주춤하던 어느 날 시인이 건넨 충고 이후로 답장이 오지 않는다. 강연에서 이승하 시인은 편지 건너편에 있을 재소자의 상황을 헤아렸다.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방 한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시를 쓰는 재소자의 사정을 이해한 것이다.

문학 강연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문학 강연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승하 시인은 춘천소년원에서의 경험도 이야기했다. 어머니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던 성인 교도소와는 달리 소년원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이승하 시인이 ‘엄마랑 있었던 일 중 기억 나는 일’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희 엄마 새 아빠랑 잘살고 있을걸요? 여기 한 번도 면회도 안 왔어요. 외국에 가셨는데, 전 잊어버렸어요.’ 

시인은 현재 우리나라 소년원 재소자 중 상당수가 성인이 되어서도 전과자가 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부모의 따뜻한 손길이나 품을 겪지 못한 아이들을 보살피고 다독이는 것이 어른들의 몫”임을 주지했다. 그는 이어 “소년원에서 개최된 백일장에서 상을 탄 아이들의 대부분은 상은커녕 칭찬조차 받아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라며 “면회 온 엄마에게 자랑할 것이 생기고 표정이 밝아지기도 했다. 한 편의 시로 그 아이와 가족의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사회가 밝아지려면 응달의 아이들에게도 빛이 가야 한다는 것이 이승하 시인의 생각이다.

내 아이 열일곱 그중 7년을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은 나
집에 안 들어가고 방황을 하던 나
훔치고 때리고 빼앗을 때마다
부모님 가슴에 하나하나 박히던 못
이제 나의 꿈은
그 못을 하나하나 빼는 것이다

-소년원 백일장에서 우수상을 받은 ‘꿈’ 전문.

한국문인협회 강부지부 [사진 = 김보관 기자]
한국문인협회 강북지부 [사진 = 김보관 기자]

10여 년의 시간 동안 수백 명의 재소자를 만난 이승하 시인은 강연 말미 “벽 속의 사람들이 어떤 시를 쓰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수용자 종합 문예지 “새길”과 소년원 재소자들의 시 모음집 “꿈을 향하여 날아오르다”을 들어보였다. “꿈을 향하여 날아오르다”의 경우 발간비를 후원하던 삼성꿈장학재단의 지원이 끊긴 관계로 단 두 권의 책만이 출간되었다. 법무부에서 발행하는 “새길”은 1948년 4월 1일 창간호를 냈으며 최근 통권 450호를 발간했다.

2012년부터 “새길”의 심사를 보고 있는 시인은 “새길은 오로지 재소자들과 교도소 안에서 생활하는 교도관들, 법무부의 몇몇 인사만이 볼 수 있는 계간지다. 계절마다 전국의 교도소, 구치소, 소년원의 사람들이 쓴 테마 수필과 용서의 글 100편 정도가 모인다.”며 곳곳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연을 접한 경험을 전했다.

그는 이어 시상이 떠오르면 깊숙이 몰두하는 자신의 버릇과 이로 인해 면허를 따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며 “운전을 하다 시상이 떠올랐다면 나 역시 교도소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누구든 한순간의 잘못으로 상황이 바뀔 수 있음을 직시한 부분이다.

이승하 시인은 “우리는 어떠한 이유들로 교도소에 다녀온 사람에게 손가락질하지 않는지 질문을 던지며 “그들과 사회를 분리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다독여주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시인은 끝으로 소외된 이들을 대하는 문학인들의 자세를 나누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여러분은 이 지역의 소중한 문학인들입니다. 창간호 “강북 문학”과 함께 앞으로 이 문학회가 큰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글을 읽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회가 되면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기를 바랍니다. 우리 문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소외된 이들이 글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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