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허연 시인의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일상 속 거룩함을 포착하는 일
[인터뷰] 허연 시인의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일상 속 거룩함을 포착하는 일
  • 김보관 기자
  • 승인 2020.07.15 01:06
  • 댓글 1
  • 조회수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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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음주의자’ 허연 시인이 출간한 다섯 번째 시집
허연 시인의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그런 것들이다 내가 아쉬운건
트램펄린에 오를 때
나는 이미 처지가 정해져 있었고
그걸 누구에게 묻지는 못했고

트램펄린 밖으로 떨어진 소년
최선을 다해서 태연하고 최선을 다해서 일어서는 소년

그런 것들이다 언제나
어른들은 타협하고 소년들은 트램펄린에서 떨어지고

그런 것들이다 내가 아쉬운 건

-허연 시인, ‘트램펄린’ 중에서.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익숙한 많은 것들이 달라진 요즘, 일상을 바라보는 날카롭고도 따듯한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우리는 쉽게 가까운 주변을 잊고 지내지만, 그 안에서 여느 문학 작품만큼의 ‘거룩함’을 찾아내는 이야기하는 시인이 있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허연 시인은 다섯 번째 시집인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로 다시금 독자를 찾았다. “불온한 검은피”에서 시작한 그의 발화는 2020년, 새로운 노래가 되어 손을 내민다. 뉴스페이퍼는 허연 시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허연 시인 [사진 = 본인 제공]

Q. 다섯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한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량 1위를 했다는 기쁜 소식도 있습니다. 시집을 출간한 지 서너 주가 지난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 시집이 나오면 언제나 그렇듯 묘한 공허감에 시달립니다. 마치 호리병에 가득 차 있던 어떤 것이 모두 빠져나간 느낌이랄까. 한 시절이 빠져나간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지탱했던 특정 시기의 에너지가 빠져나간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제 그 호리병을 새롭게 채워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암담하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모든 시인이 그럴 테지만 사실 시집의 서점 반응은 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저 현상일 뿐이고, 따라서 시인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생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냥 현상이라는 생각뿐입니다.

Q. 시집의 발문을 써주신 박형준 시인님과는 등단 동기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 답변을 그대로 옮기며 해설과 일화, 시 등을 인용한 글에서는 애정이 담뿍 느껴졌는데요. 박형준 시인님께 발문을 부탁한 특별한 사연이 있으실까요?

- 일단 해설을 맡기지 않고 발문으로 하기로 한 건 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수록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발문 저자로 형준이를 생각한 건 ‘나와 대척점에 있는 듯한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형준이와 나는 절친이지만, 많은 면에서 다른 스타일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도시 출신이고 형준이는 아니고, 시 세계도 다르고, 살아온 내력과 관계 맺고 살아온 사람들도 다르고, 취미도 가치관도 다르고.... 심지어 입맛도 다르고... (웃음) 그러면서도 서로를 인정하면서 30년을 친구로 지내온 그 시선에 나를 맡기고 싶었어요.

허연 시인, ‘역전 스타벅스’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아침이면 지정석이 채워진다 커피는 주문하지 않는다 이곳은 시험장처럼 조용하고 역대급 사연들이 눈을 깔고 회상에 잠겨 있다 알바생이 지나가면 헛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한 두어 달 말 한마디 안 했을 것 같은 얼굴들이 찰흙처럼 앉아 있다 어깨를 버리고 온 사람들은 누구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세상이 당장 멸망할 것 같지만 문만 열고 나가면 세상은 여전하다 세상은 여기서만 무겁다 간혹 누군가 가벼워졌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이내 먼지가 소식을 덮는다

해가 중천에 뜨면 밀랍인형들이 일어나 노파의 주름 닮은 골목으로 사라진다

선캄브리아기 생명체들이 바다를 떠나 세상으로 기어오르는 것이다

-허연 시인, ‘역전 스타벅스’ 전문.

 

Q.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가 소주병을 깨 세상의 옆구리를 한번 찌르는 심정으로 썼다면, 이번 시집은 ‘시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세상에 그냥 있었던 거구나 하는 인정’으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래서인지 일상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이 특히 많습니다. ‘구내식당’, ‘역전 스타벅스’, ‘24시 해장국’, ‘용궁설렁탕’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의 장소들을 끌어온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으실까요?

- 저는 시는 영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시인의 타고난 DNA와 후천적인 공부와 경험... 이런 것들이 우주를 떠돌던 어떤 언어들과 만나 나오는 것인데, 그 결정적 분출구가 일상인 거 같아요. 모든 거룩한 것들이 일상 속에 다 있더군요. 길거리에서 아이 젖을 물리는 걸인 여인에게선 피에타의 성모에 버금가는 거룩함이 있어요.
 
전 온 세상이 모두 가여워요. 일단 나 자신이 가엾고,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이 가여워요. 세상에 내던져진 가여운 존재들이죠. 그들이 한 컷의 크로키로 나를 흔드는 순간이... 해장국집, 늦은 지하철역, 어떤 거리, 옥상... 뭐 이런 데인 것 같아요. 어떤 평론가가 제게 던진 농담처럼 저는 ‘가엾음주의자’예요.

Q. 이와 더불어 ‘강’과 ‘바다’의 이미지가 즐겨 등장합니다. ‘당신’이 잠기고, ‘누군가 떠나가는 소리들이 들리곤’하는 강변과 ‘신’이 사라지는 바다나 ‘덜 아문 흉터’를 가진 파도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소멸과 이별의 감각인데요. 선생님께 ‘강’과 ‘바다’는 어떠한 공간인가요? 두 곳과 얽힌 개인적인 일화가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 어렸을 때 할머니가 했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해요. 너무 와 닿았거든요. “가뭄 끝은 있어도 홍수 끝은 없단다.”라는 말이었어요. 

가뭄은 모든 것을 말리지만 그대로 남겨 놓죠. 하지만 큰물은 모든 걸 쓸어가요. 사연도 묻지 않고...

강 근처에 산 적이 꽤 있었는데... 홍수가 났을 때 강에 가보면 엄청난 슬픈 내력들이 떠내려와요. 물론 그들이 자발적으로 강에 몸을 던진 건 아니죠. 지붕도 떠내려오고 텔레비전도 떠내려오고... 앨범이나 상패도, 깨진 변기도, 죽은 돼지도, 간판도 모두 떠내려와요. 인생이 그런 거 아닐까요. 결국, 가담하지 않은 어떤 물결에 쓸려 운명처럼 어느 곳에 당도하는 일....

파도도 마찬가지죠. 섬에서 태풍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천지간이 구분이 안 되어요. 파도가 하늘까지 올라가고, 땅이 날아가고... 

인간은 물살(운명)에 쓸려가는 존재에요. 사랑도 죽음도 그 물살처럼 왔다가 가죠. 예고 없이, 이유 없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냉혹하게.

허연 시인 [사진 = 본인 제공]

돌진하는 건 재미없는 게임이야. 잘 생각해. 너는 중독되면 안 돼.

중독되면
누가 더 오래 살까? 이런 거 걱정해야 하잖아.
뻔해,
우리보다 융자받은 집이 더 오래 남을 텐데.

가끔 기도는 할게. 그대의 슬픈 내력이 그대의 생을 엄습하지 않기를, 나보다 그대가 덜 불운하기를, 그대 기록 속에 내가 없기를.

그러니까 다시는 가슴 덜컹하지 말기.
이별의 종류는 너무나 많으니까. 또 생길 거니까.

-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중에서. 

 

Q. 제목의 ‘당신’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겠지요. 시집 전반에서 등장하는 ‘애인’이나 ‘당신’, ‘그’는 비단 한 명의 특정인이 아닌 시인의 애정 어린 눈 끝에 닿은 무수한 타인들로 다가왔습니다. 표제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를 결정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 고민했던 제목들은 ‘어떤 거리’ ‘우리의 생애가 발각되지 않기를’ ‘트램펄린’ ‘블랙’ ‘무반주’ 등이었어요.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를 최종 선택한 건 우선 리듬이 있어서 좋았어요. 짧지만 노래 같았고... 또 다른 이유는 영어 같은 외국어로 번역을 하면 좋은 문장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어로 번역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있거든요. 

살아보니 바로 ‘당신’이 내 스승이자 환희였으며 악마이자 지옥이었더군요... 그래도 ‘당신’이 있어서 생을 배웠고, 그리움도 배웠고... (웃음)

Q. ‘사랑은 식’고 ‘젊었을 때만 좋’은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죽음’들과 떠도는 ‘저주’ 속에서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시는 주술 같은 것 같아요. 어떤 에너지 같은 것이기도 하고... 불교식으로 이야기하면 우리 안에 이미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시는 기운을 앗아가는 매력이 있죠. 환희에 들뜨고, 기운이 넘쳤던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 봄비 내리는 밤 가로등 앞에서 고개를 떨구게 하죠.
 
어떤 목적을 가지고 뽑았던 칼을 다시 칼집에 넣게 하는 힘. 시의 힘이죠. 칼을 칼집에 넣고 망연자실하게 무엇인가에 골몰하게 하는 힘. 시의 힘이죠.

앞서간 자들이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저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섬뜩한 존재 그게 시죠. 앞서간 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존재.

Q. 끝으로 이번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 독자들의 눈이 가장 두렵고, 독자들의 관심이 가장 따뜻합니다. 기운을 앗아가는 제 시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시에는 아픔과 비와 흙과 햇살과 구름과 생각이 존재합니다. 이것들과 더불어 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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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2020-07-16 05:45:10
박형준 시인님 시도 읽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