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훈 칼럼] 구두 뉴스의 역사 - 아주 오래 되고 영원한 커뮤니케이션
[공병훈 칼럼] 구두 뉴스의 역사 - 아주 오래 되고 영원한 커뮤니케이션
  • 공병훈 교수
  • 승인 2020.07.2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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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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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영원한 미디어, ‘말’

찰스 다윈은 인류의 말의 기원에 대해 “언어가 다양한 자연의 소리와 다른 동물들의 소리, 그리고 인간 자신의 본능적 울음소리들을 모방하고 수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만큼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미디어는 말(language)이며, 인류가 영원히 사용할 미디어이기도 하다. 인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을 통해 소통하고 의식을 지닌 최후에까지 망을 통해 소통한다. 인류에게서 말이 사라지는 날은 지구가 진공의 상태가 되는 그날일 것이다. ‘말’은 자기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리 기호로서 인류가 처음 사용한 메시지 전달방식이자 영원히 사용할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동물들 가운데도 여러 형태의 목소리와 억양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동물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목구멍 벽과 혀뿌리를 마찰하여 내는 소리(喉頭 音)를 분명하게 발음하여 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입으로 하는 언어로 발성하는 목소리 조절법을 습득하여 사용한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진화 과정의 어느 순간엔가 원시적인 언어 수단 또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수단에서 말을 통한 의사소통 체계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언어의 기원을 10만 년에서 5만 년 전으로 추측하고 있다.

최초로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호모 에렉투스를 묘사한 그림
최초로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호모 에렉투스를 묘사한 그림

말은 목구멍을 통하여 나타나는 소리라서 그 장소 그 시간에서만 들을 수 있다. 문자는 말을 기록하기 위해 생겨나거나 만들어졌다. 뜻이나 소리와 결부되는 기호와 상징을 될, 진흙, 나무와 같은 물체의 표면에 기록하면서 문자가 탄생한다. 그림으로 된 기호를 쓰거나 사물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약속된 뜻을 전했을 것이다. 그림 기호나 그림문자는 미적인 의도로 꾸며 만드는 그림과 가르게 단지 의사전달을 중시했다. 그림 기호는 사실 및 사람이나 사물을 확실하게 구별할 목적으로 쓴 기호이다. 어떤 기호와 사물 사이에 상관관계가 세워지면 점점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사물은 말로 이름이 있기 때문에 글로 쓰인 기호와 그에 대응하는 이름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만들어진다.

‘말’은 자기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리 기호이다. 하지만 말은 그 장소 그 시간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써 사용되었듯이 현재에도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오지에서는 여전히 말을 통해 정보와 지식이 전달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인공지능 기술 또한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 행동하는 방식에 대해 큰 노력과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지구가 진공상태가 되더라도 말은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문자 이전의 시대, 뉴스의 역사 

문자 없는 사람들도 얼마나 빠르게 뉴스를 전달시키는지에 대한 사례가 미첼 스티븐스(Michell Stephens)의 『뉴스의 역사(A history of news)』에 소개되어 있다. 19세기 남아프리카 지역의 줄루족(Zulu)과 살았던 한 유럽인은 하인이 쓰는 그릇에 악어 고기를 끓여 먹는다. 줄루족에게 금기시된 일이었다. 하인은 당장 일을 그만둔다. 하지만 유럽인은 하인을 새로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아주 먼 곳으로 이주하여 하인을 구할 수 있었는데 그 하인도 자신에게 악어 고기를 먹게 하지 말라는 조건을 붙였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아침에 벌어진 일을 매우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거의 모든 부족이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말을 통해 새로운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을 구두 뉴스 체계(oral news systems)라고 부른다. 줄루족의 구두 뉴스 체계는 그들의 사회적 관계, 즉 소셜 네트워크에 기반한다. 지구의 모든 사회적 집단의 구성원들은 뉴스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뉴스를 가지고 토론을 하고 놀라고 기뻐하고 슬퍼하거나 당황하거나 분노하며 욕설을 퍼붓는다. 

1903년에 촬영된 줄루족 사진

빨리 달려 전하는 뉴스의 원조, 마라톤

역사적 자료로서 찾기는 어렵지만, 고대에 뉴스를 전하는 사람은 달리기 잘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뉴스를 전달한 역사적인 사례는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의 전투 때이다. 마라톤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북동쪽 약 30Km 떨어져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서, 이곳에서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다. 당시 아테네의 병사들은 마라톤 평원에서 전력이 더 뛰어났던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친다. 

헤로도토스(Herodotus, BC 484-42)의 저술에 따르면 기원전 490년 아테네가 페르시아군이 마라톤에 상륙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령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를 스파르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파견하였으며 페이디피데스는 약 200Km의 거리를 이틀에 걸쳐 달렸다고 한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위급한 상황을 듣고 원군을 파병하는 데 동의하였으나 스파르타의 전통에 따라 만월에 출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도움 없이 몇몇 동맹 도시의 도움으로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30km 떨어진 아테네에 뛰어가 전달한 후 기력을 잃고 죽은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는 뜻에서 1896년에 올림픽 육상 경기 종목으로 채택된다.

기원전 490년 페이디피데스의 전설
기원전 490년 페이디피데스의 전설

시와 낭독의 형태를 지녔던 뉴스발라드

오랜 시기 인류에게 시(詩)는 서정과 자연풍경와 함께 전쟁과 지진 같은 재해, 민담, 도덕적 교훈, 사랑, 재미있는 이야기, 음담패설을 기록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시의 형태를 갖춘 뉴스 발라드(news ballad)가 신문이 자리 잡던 시기 이전에 뉴스 전달의 주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발라디스트(balladist, 저널리스트)가 뉴스를 시의 형식으로 기록하여 대중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던 뉴스 발라드는 구두 뉴스와 관련되어 있다. 

뉴스 발라드는 노래하기 쉬운 문체로 작성되었고 크기 또한 손으로 잡기 편하게 제작되었다. 자연스럽게 뉴스 발라드 작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아 인기를 끄는 방향으로 출판되었을 것이다. 전해지는 뉴스 발라드 문헌자료들을 살펴보면 1588년 영국에는 스페인 군대와의 전투 내용을 담은 시가 책으로 발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뉴스 발라드들은 왕실 결혼, 왕의 행차, 왕족과 유명인들의 스캔들과 사망 소식, 엽기적인 범죄 사건과 사고 등을 많이 다루고 있다.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욕구의 대상으로서 왕족과 같은 유명인들에 대한 이야기의 뉴스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신문이 출현 이전에 시와 낭독의 형태를 지닌 뉴스 발라드
신문이 출현 이전에 시와 낭독의 형태를 지닌 뉴스 발라드

필립 시드니(Philip Sidney) 경이 31세 때 총탄을 맞고 사망했고, 헨리 왕자가 18세에 급사했다거나, 헨리 8세의 왕비 앤 볼린(Anne Boleyn)이 젊은 나이에 남편에게 처형당했다는 소식은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 만했다. 16세기 후반에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살인 사건을 다룬 뉴스 인쇄물이 등장했다. 가정에서 부인이나 프랑스에서 이민온 여성이 자신에게 성병을 옮긴 남편을 살해한 사건, 집단 살인, 토막 살인 사건까지도 다루었다. 이 시대의 뉴스 발라드의 내용은 뉴스 미디어가 대중들에게 감각적이면서 선정적인 관심을 끌고 자극하고 판매에까지 연결되는 옐로우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의 한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명한 발라디스트로서 토머스 들로니(Thomas Deloney, 1543-1600)가 있다. 그는 흥미로운 주제에서부터 역사적 사전, 사회적 쟁점, 시사 문제에 이르는 다양한 시를 뉴스 발라드로 시를 짓고 출판했다. 그의 작품을 수집한 편집자는 토머스 들로니에 대해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발라드 저널리스트였다고  설명한다.  들로니의 작품 세계는 『들로니의 재미있는 역사 읽을거리(Pleasant Historic of Thomas of Reading; or, The Size Worthy Yeoman of the West)』에서 엿볼 수 있다.

판화로 전해지는 토머스 들로니
판화로 전해지는 토머스 들로니

들로니의 뉴스 발라드들을 모은 책으로 판단되는데, 여기에는 우스꽝스러운 일화, 민간의 지혜, 환락, 간통, 살인, 여행, 운명적 사랑, 왕위 계승 자간의 세력 싸움, 교묘하게 처벌을 피해 달아나는 도둑 등이 등장하는 내용으로서 예리한 사회 비판을 담고 있다. 잉글랜드 서부 지방에서 온 여섯 명의 직조공의 운명을 따라가며, 그들의 코믹한 모험과 몰락한 귀족의 딸 마거릿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함께 짜 넣는다. 그녀는 직조공들을 찬양하면서 그들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들을 경멸한다. 자비와 덕성을 겸비한 직조공들은 그들만의 긴밀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지만, 귀족들은 이와 동떨어진 삶을 영위한다. 상류계급 친구들이 그녀를 멀리하자 마가렛은 하층 계급이 가장 본받을 만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가렛은 여섯 직조공 중 한 사람의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일하며 생활하지만, 왕의 동생과 사랑에 빠져 함께 도주하면서 다시 귀족 사회로 돌아가게 되지만 결국 파멸을 맞는다.

뉴스 발라드는 노래하기 쉬운 문체로 쓰였고 손에 잡기 편안한 크기로 제작되었다. 문자 커뮤니케이션보다 쉽고 편리하며 구두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대중을 재미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발라드 노래하는 사람들의 절만은 뉴스 배달부(newsboy)였고 반은 거리의 음악가들이었으며 거리나 진영대에서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뉴스 크라이어(news crier)의 활약

달려가서 뉴스를 전달하던 방식은 중세시대에서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신문과 라디오가 매스미디어로자리흫 잡기 이전인 20세기 초반까지도 뉴스 크라는 것이 어가 활동해 왔다는 다양한 그 사실들이 있다. 뉴스 크라이어들은 미리 정해진 경로와 시간에 따라 움직이며 지방 권력자 또는 국왕으로부터 직접 받은 뉴스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미국의 중서부의 인디언들도 매일 아침 추장 회의를 하여 뉴스 크라이어들을 통해 집회, 명령, 규칙에 대해 알렸다는 기록이 있다.

뉴스 크라이어의 외침은 화려했다고 전해지는데 아마도 뉴스를 듣는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하고 잘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스토리텔링을 하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리듬과 음조, 높낮이, 강약이 보태졌을 것이다. 그 사실은 아직도 영국에서 벌어지는 타운 크라이어(town crier) 대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국왕이나 법원의 명령이나 전쟁과 사건·사고 소식을 전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의무교육과 신문, 라디오가 보편화하는 20세기 초반까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국 해스팅스 거리에서 중세시대 복장을 한 남성이 벌이는 타운 크라이어 2012년의 경연대회

구두 뉴스의 재발견

뉴스를 교환하지 않고 사는 사회는 없고 뉴스 교환을 확산시키는 수단과 기술은 그 사회의 의식과 관습에 뿌리 내리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은 뉴스를 교환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다.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원주민에서부터 뉴욕과 서울의 시민에 이르기까지. 뉴스는 전쟁의 위협에 처해 도움을 요청하거나 구성원을 규합하는 용도에서부터 재난과 사건·사고를 알려서 미리 대비하는 역할을 한다. 또는 누군가의 탄생, 경사, 죽음을 알려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게 한다. 

어느 강어귀에 연어 떼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올해 옥수수 수확이 좋지만 쌀 수확이 형편없으며 부족이 얼마 전에 벌인 사냥에서 무엇을 많이 잡았는지. 애인의 집을 서성이다 빗물 통에 빠진 이야기에서부터 젊고 패기 있는 청년에게 홀려서 도망친 귀족 부인의 이야기, 그리고 국왕의 스캔들까지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깜짝 놀라고 격분하고 슬퍼하거나 즐거워하며 정보를 바탕으로 장사를 하기도 하며 뉴스를 통해 자신의 상품을 널리 알리기도 하고 다가올 어려움을 준비하기도 한다. 뉴스는 공식성을 띠기도 하지만 흥미성을 띠기도 하며 때로는 수용자들의 놀이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문자가 전혀 없던 시절이나 문자가 개발된 이후에나 매스미디어가 활성화된 최근까지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사람이 움직이면 뉴스도 움직이고 확산할수록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는 공통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1909년 메사추세츠 우편엽서에 나온 타운 크라이어

 

공병훈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 학회장.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앱(App) 가치 네트워크의 지식 생태계 모델 연구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디어 비즈니스, PR, 지식 생태계이며 저서로는  『광고는 어떻게 세상을 유혹하는가?』,  『4차산업혁명 상식사전』 등이 있다.

유튜브 채널 : 공병훈 지식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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