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훈 칼럼] 종이길이 전세계를 연결하다
[공병훈 칼럼] 종이길이 전세계를 연결하다
  • 공병훈 교수
  • 승인 2020.07.2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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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의 밤, 이슬람권에 열린 종이길

“아라비안 나이트”로 유명한 천일야화(千一夜話)는 왕비가 노예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목격한 샤리야르(Shahryar) 왕은 왕비를 죽이고 여성에 대한 강한 불신을 지니게 되어, 처녀와 하룻밤을 잔 후에 다음날 처형하기 시작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거리와 나라에서 여성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샤리아르의 학살이 멈추지 않자, 대신의 딸인 셰헤라자드(Scheherazade)는 아버지에게 간청하여 일부러 왕과 결혼한다. 

밤마다 그녀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에 감탄한 샤리아르 왕은 낮에는 나라일을 보고 난 후, 밤에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셰헤라자드가 한 이야기들은 그녀가 창작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들에는 인도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 등의 설화가 포함되어 있는데 연애, 범죄, 여행담, 신선담,역사, 교훈담, 우화 등 당시 이슬람 제국의 발달된 화려한 문명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천일야화에 나오는 칼리프인 하룬 알 라시드(Harun al-Rashid)의 치세 동안 바그다드는 큰 번영을 누렸다.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상선들이 이 도시를 드나든 것은 물론 군함과 물놀이를 위한 유람선도 있었다. 특히 중국 배들은 갖가지 물품을 가지고 와서 팔았으며, 또 그만큼의 상품을 싣고 떠나기도 했다. 말하자면 당시 세계의 부가 이 도시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룬 알 라시드는 천일야화처럼 호화 생활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인이나 학자들을 후원해 바그다드 문화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바그다드의 제지공장은 이 시기에 세워진 것이다.

종이 제조 기술은 8세기 경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를 대체하고 사마르칸트 종이보다 더 좋은 품질로 생산된다. 그리고 10세기와 12세기 사이에 북아프리카 파티마 왕조의 치세 기간에 종이 제조가 발달한다. 파티마 왕조는 튀니지에서 이집트, 팔레스타인, 그리고 시칠리아까지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니다. 이때부터 이슬람권의 모든 공식 문서는 종이로 작성된다. 천일야화의 이이야들은 종이 제작기술이 확산되며 문화와 상업, 지식의 중심지로 번영하던 바그다드를 보여주고 있다.

하룬 알 라시드의 치세 동안 바그다드는 문화, 상업, 지식에서 세계의 중심지였다.
하룬 알 라시드의 치세 동안 바그다드는 문화, 상업, 지식에서 세계의 중심지였다.

종이 제조 방법은 8세기에 이르기까지 1천년 동안 동북 아시아의 기술로서만 사용되어 왔다. 종이는 비단길을 이동하던 상인들에 의해 중요하게 거래되던 상품이었다. 6세기부터는 중동의 제국들이 상당한 양의 종이를 소비했다고 하는데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왕이 보낸 답장이 아직 전해지고 있다. 알라를 유일신으로 하는 이슬람교는 동쪽으로는 인도의 인더스(Indus)강에서 서쪽으로는 스페인의 피레네(Pyrenees)산맥에 이르는 지역의 정치와 경제를 운영하면서 이슬람 제국의 지식인들을 통해 자신들의 지식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슬람권은 종이 제조법을 알고 있지 못했고 물론 제지 공장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751년 탈라스 전투를 통해 사마르칸트를 점령하여 당나라의 제지업자들을 포로로 잡으면서부터 대마(大麻)와 아마(亞麻)를 재료로 한 최초의 종이가 생산됩니다. 이 “사마르칸트의 종이”는 삽시간에 유명해져 이 지방을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부흥하게 만들어 준다. 하룬 알 라시드 칼리프가 다스리던 786년에서 809년 사이 바그다드(Baghdad)에 제지공장이 세워진다.

유럽에 열린 종이길

유럽에서는 중세의 교역을 주도하던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아랍의 종이를 수입해 유럽에 판매하여 훌륭한 수업원으로 삼았다. 그후 13세기 중반인 1276년에 이탈리아 중부 내륙의 파브리아노(Fabriano)라는 작은 마을에서 제지 공장이 세워진 기록이 있다. 아마도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도 종이가 생산되었겠지만,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는 않는다. 파브리아노가 유명한 것은 이곳에서 일어난 기술 혁신 때문이다. 사람이나 가축의 힘을 이용하여 식물이나 넝마 조각 찧던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수력을 사용한 기술을 적용하여 수직으로 나무 망치가 내려 치도록 개발되었던 것이다.

유럽에 전파된 종이 제작 기술은 프랑스 남부 에로(Hérault) 지역의 제지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기계적 도구에 의한 의한 초지법을 발명하면서 제지공업으로 발전한다. 독일에는 1336년 뉘른베르크(Nürnberg)에 처음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진다. 1450년경 인쇄기가 발명되자 종이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으며, 영국에는 1498년에 제지공장이 세워졌으며, 미국에는 1690년에 네덜란드인에 의하여 제지공장이 설립된다.

전세계로 펼쳐진 종이길
전세계로 펼쳐진 종이길

1798년에 프랑스의 니콜라스 루이스 로베르(N. L. Robert)가 최초의 초지기를 만듭니다. 움직이는 체 벨트를 이용해 틀 또는 형틀을 체 바닥과 함께 펄프 통에 담가 1번에 1장씩 종이를 떠냈다. 몇 년 후 헨리와 실리 푸어드리니어 형제가 로베르의 기계를 개량했으며, 1809년에 존 디킨슨이 최초의 원압제지기를 발명한다. 19세기초에 이르러 나무와 다른 식물성 펄프가 종이제조를 위한 주요 섬유공급원으로 사용되면서 넝마를 대신하기 시작한다.

급속하게 발달한 인쇄 기술과 설비가 빠르고 간편하게 인쇄할 수 있는 종이와 만나면서 유럽에서 전성기를 맞은 제지공장들의 성장은 르네상스와 유럽의 정치적, 종교적, 산업적 대혁명이라는 운명과 함께 한다.

채륜, 종이 제조법을 발명하다

종이의 발명자인 채륜(蔡倫)은 농경 대신이었다고 하고 궁중의 용도(用度) 관계 장관과 수공업 분야의 주임직을 겸하고 있었다고도 한다. 이 시기에 궁중에서 채륜의 업무가 수공품을 조달하는 것이었으므로 비능률적인 재래방법에 대하여 연구하여 제지술을 발명한 것이다. AD 105년 중국 후한(後漢)에서 채륜은 행정와 종교 문서를 보급할 목적으로 종이를 개발하여 황제에게 보고하여 포상을 받는다. 당시 중앙 권력은 종이를 제국 내에서 문서 표기의 재료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나무껍질, 헌 어망, 비단, 낡은 헝겊 등을 물에 갠 다음 절구통에 찧어 종이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사용되는 초지법(抄紙法)도 같은 원리로 만든다. 기존의 방법과 달리 다른 재료들을 혼합하여 사용하였으며 초지를 위한 편리한 도구들을 개발하여 종이 제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방법을 대중화시킨 것이다. 채륜의 종이 제작 과정은 2세기와 10세기에 걸처 후한 제국 전 지역에 확산되었다. 지역의 특산 자원에 따라 섬유 성분은 대마, 뽕나무, 등나무, 대나무, 쌀이나 밀 짚단, 비단 고치, 아마와 황마 섬유, 백단향, 부용, 리안느, 이끼, 해초 등 여러가지 다른 재료들과 혼합되었다. 원료는 거의 폐물 을 이용하여 많은 양을 값싸게 생산할 수 있다는 놀라운 방법이었다.

역사적으로 한(漢)나라가 재건된 후 50여 년이 지났기 때문에 통일 왕조로서 기초가 다져진 때였으므로, 정치적, 문화적으로 기록 재료가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종이 이전에 사용하던 죽간과 비교해보더라도 사용하거나 휴대하는 것도놀라울 정도로 편리했을 것이다. 그의 종이 제조법 개발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받아들어졌는지는 보듯이 채륜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었든 모습을 그린 7~9세기의 당나라 시대 그림에서 알 수 있다. 채륜의 종이는 황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고 그가 넝마와 낡은 그물망으로 만든 점착물(粘着物)이 수도로 운송되어 황제의 보물로 관리되었다. 

처음 중국에서 개발된 종이 제작 기술은 대개 펄프 반죽, 낱장 제조, 건조, 풀칠하기 등 네 가지로 구분되어 진행된다. 놀라운 사실은 현대의 종이 생산 방법도 원리에서 동일하는 점이다.

종이 제조법의 효율성과 성과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당나라에 채륜을 신처럼 떠받드는 데서 알 수 있다.
종이 제조법의 효율성과 성과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당나라에 채륜을 신처럼 떠받드는 데서 알 수 있다.

고구려와 신라에 열린 종이길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종이는 4~5세기경 유물로 추정되는 평양시 청암동토성에서 출토된 마지(麻紙)와, 대성산성에서 발견된 불경(佛經)이 적혀진 종이다. 종이제작 기술이 들어온 시기에 대해 3세기, 4~5세기, 6~7세기 세가지 학설이 있다. 가능성이 높은 학설은 4~5세기 무렵에 중국에 의한 불교의 전래(372년)무렵 불교의 포교를 위해 들어온 서적류와 더불어 종이 제작기술이 전해졌다는 주장이다. 불교의 확산과 함께 불경의 대량출간 사업으로 제지술이 발전했을 것이다.

353년 중국 동진(東晋)의 서예가인 왕희지(王徽之)가 쓴 난정집서(蘭亭集序)가 고구려 종이인 잠견지(蠶繭紙)에 쓰여졌다는 기록이 있다. 4세기 무렵 고구려 고분인 안악 3호분의 서쪽 측실 벽화에 신하가 보고를 하기 위해 종이로 된 문서를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중국의 제지술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우리 민족은 발달된 종이 제작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과 고구려 승려인 담징(曇徵)은 610년 우리의 우수한 종이 제지술을 일본에 전해준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0년(751년)에 간행된 불경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이다. 이 다라니경은 한 장당 폭이 약 5.3cm인 종이 12장을 이어붙여 길이가 6m30cm에 달하며, 한 장당 39~63항으로 인쇄한 권자본(卷子本: 두루마리 형태)이다. 또한 610년 고구려의 담징이 일본에 채색, 종이, 먹, 연자방아 등 만드는 방법을 전해주었다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이 있다. 이 시기에 중국에서는 맷돌 등을 이용하여 섬유를 잘게 갈아 종이를 만들었고, 담징이 함께 전했다고 하는 맷돌은 종이와 관련된 용구로 추측된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두루마리 형태의 목판 인쇄물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두루마리 형태의 목판 인쇄물

채륜의 발명과 종이길이 만든 혁신의 세계적 확산

평생에 걸쳐 한 사회나 조직 내에 새로운 혁신이 어떻게 확산되어가는가를 연구한 에버렛 M.로저스 그의 저서 『혁신의 확산』(Diffusion of Innovations)에서 혁신은 이렇게 설명한다.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 행동, 제품, 메시지를 채택하는 것을 의미하며 기술적 우월성만을 가지고 확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혁신은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정한 채널을 통해 소통하는 과정이다.

채륜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 사용되면 방법들을 기반으로 종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와 그 제조 기술을  발명하였다. 광대한 지역을 운영하던 중국의 후한 제국은 종이가 개발됨에 따라 효율적인 명령 체계가 가능해지고 지식과 문화의 기록이 가능해졌다. 문화의 문명이 기록되고 전달되는 데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졌다. 수나라와당나라, 그리고 중국의 중세를 여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의 혁신인 종이와 제작 기술은 중국에서 시작된 종이길이 사마르칸트와 이집트 북아프리카 그리고 이탈리아를 거쳐 유렵 전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고구려를 통해 열린 종이길이 일본으로 이어졌다. 혁신의 확산은 종이길이라는 채널을 통해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타고 전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종이길이 열리는 곳마다 문화, 상업, 지식이 꽃을 피웠다는 점이다. 종이가 지식과 정보를 기록할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학습하고 공유하는 관계를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확산되는 국가들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제조 기술을 발달시키고 산업 차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이때문이다. 열리고 연결된 종이길은 문화, 상업, 지식이 확산되고 이동하는 경로가 되고 또다시 새로운 종이길을 만들어 나갔다.

혁명적인 발명이 사회적, 문화적, 산업적 혁신으로 이어지고 전달되고 공유되면서 또 다른 혁신의 허브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반복한다. 종이길을 통해 결국 종이 기술은 유럽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만나 종교 개혁과 르네상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신문과 잡지라는 최초의 매스미디어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공병훈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 학회장.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앱(App) 가치 네트워크의 지식 생태계 모델 연구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디어 비즈니스, PR, 지식 생태계이며 저서로는  『광고는 어떻게 세상을 유혹하는가?』,  『4차산업혁명 상식사전』 등이 있다.

유튜브 채널 : 공병훈 지식공유

공병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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