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톺아보기 03] 김수영문학관의 재현과 체험, ‘함께 거닐기’의 공간
[문학관 톺아보기 03] 김수영문학관의 재현과 체험, ‘함께 거닐기’의 공간
  • 송진아 기자
  • 승인 2020.07.30 23:40
  • 댓글 0
  • 조회수 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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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찬 감동 사이 아쉬운 ‘해석’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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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문학관 외부 전경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수영 문학관 외부 전경 [사진 = 김보관 기자]

온몸으로의 시학을 주창했던 영원한 젊은 시인, 김수영의 삶과 문학이 생생히 재현된 곳이 있다. 김수영 시인이 시작 생활을 하고 지낸 도봉구 작은 동네에 자리한 김수영 문학관은 생전 그가 작성한 육필원고와 지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같은 공간이다. 도봉구에는 김수영 시인의 본가와 묘,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문학관 입구에 들어서는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김수영 시인의 시 ‘풀’과 관객의 동선에 맞춰 일렁이는 그래픽 초원이다. 관객들은 ‘풀이 눕는다/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라는 시구를 읽으며 자연스레 시인이 거닐었을 법한 초원을 따라 걷게 된다. 

김수영 문학관 제1전시실 입구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수영 문학관 제1전시실 입구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수영 문학관이 환기하는 김수영 시인의 발자취는 그의 시 창작과 연계되어 꾸준히 관객을 끌고 간다. 1층의 제1전시실에서는 김수영 시인이 살아온 치열한 시대적 상황을 중심으로 그의 시가 창작된 구체적인 배경을 전한다. 

김수영 시인은 6.25 한국전쟁 당시 의용군에 지원, 포로수용소에 끌려가는 등 혼란한 정세 속에서 사회 참여와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모더니즘’ 또는 ‘참여시’로 명명되기도 하는 그의 시편들은 전쟁체험과 혁명을 거치며 구체적 현실을 마주한다. 김수영 시인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며 정권에 대한 공격과 혁명 정신을 숨기지 않는 한편, 삶과 멀지 않은 언어로 시를 그려냈다.

김수영 문학관 제1전시실 내부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수영 문학관 제1전시실 내부 [사진 = 김보관 기자]

6.25 한국전쟁, 4.19 혁명, 5.16 군사 정변으로 이어지는 전시 구성은 역사적 사건에 치중하기보다 해당 시기를 그려낸 그의 시편을 소개하는 데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시 공간에는 그의 사유와 창작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육필원고가 나란히 놓여있다. 영상 상영 공간 옆에 마련된 전시장 한켠에는 일상의 언어를 끌어온 김수영 시 세계에 걸맞게 그의 시에 쓰였던 단어들로 시어 막대를 구성해 관객들이 직접 시를 지을 수 있는 벽면이 있다.

김수영 문학관 제1전시실 내부 벽면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수영 문학관 제1전시실 내부 벽면 [사진 = 김보관 기자]

이러한 전시 구성은 교과서나 작품 속에서 김수영 시인을 접하고 그를 사랑해온 독자들에게는 가슴 벅찬 경험이겠으나 반대로 김수영이 낯선 독자들에게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김수영 문학관 김은 실장은 “김수영 시인을 잘 모르는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방문했을 때에는 대강당에서의 영상 상영이 선행되기도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처럼 대중에게도 자못 친숙한 작가의 생애는 물론이고 창작 과정과 공간을 비롯한 현장을 재현한 사례는 국내외 곳곳에 존재한다. 작가가 살아온 삶이 흔적을 보존하고 이를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그의 삶과 창작을 더욱 가깝게 매개하는 방식이다.

이는 앞선 이야기와 같이 문학을 신성한 대상 내지는 향유해 마땅한 존재로 바라보는 독자들에게는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관객은 자신이 추상적으로 떠올려 온 김수영 시인에 대한 이미지와 생각을 구체화함으로써 스스로의 경험과 사유를 실존했던 시인에 덧붙이게 되기 때문이다. 

제2전시실에 전시된 김수영 육필원고 [사진 = 김보관 기자]
제2전시실에 전시된 김수영 육필원고 [사진 = 김보관 기자]

하지만 이제는 문학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해석과 명명의 공간으로 발돋움하는 추세다. 단순한 전시물 또는 유작·유품의 나열만으로도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문학’이 위대한 무언가여야 한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문학 외의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때로 이것은 문학의 영향력을 초월한다. 21세기의 문학 전시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있는 독자와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목소리를 포함해야 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문학관보다 전시물의 가치와 보존에 치중한 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박물관을 탐방, 연구한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은 그의 저서에서 “눈으로 보는(Eyes On) 박물관에서 체험하는(Hands On) 박물관으로, 이해하는(Minds On) 박물관에서 느끼는(Feels On) 박물관으로” 흐르고 있음을 명시하기도 했다.

관객들이 이해하고 느끼는 문학 전시를 위해서는 ‘레미제라블’을 집필한 프랑스 위고문학관의 사례를 참고할만하다. 위고문학관에서는 동시대 예술 작품을 통해 위고의 문학세계를 제시하는가 하면 현대의 NGO 활동을 보여줌으로써 위고가 주창해온 ‘자유’의 정신이 근래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정신을 당대의 예술 또는 현대의 상황에 접목해 재해석한 일례다.

반면 김수영 문학관의 경우 김수영 시인이 갈망해온 ‘자유’의 정신이 각각의 텍스트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현대에 어떠한 가치를 갖는지가 모호하게 제시된다. 더욱이 김수영 시인의 시적 정신이 ‘현실’에 맞닿아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거의 전시에 그치기보다 매 순간의 현실을 김수영 시 세계에 접목하고자 하는 시도를 꾀해야 한다. 이는 세속적인 자신의 생활과 비속어를 시에 담기를 주저하지 않은 김수영의 삶과 문학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김수영 문학관 제2전시실 내부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수영 문학관 제2전시실 내부 [사진 = 김보관 기자]

다행히 2층에 자리한 제2전시실에서는 이 같은 설명과 해석이 한 발 더 개입한다. 2층 전시장 안쪽에는 김수영 시인이 글을 써온 서재의 모습이 꾸며져 있으나 단순한 물리적 재현을 넘어 하나의 일화를 소개한다. 

김수영 문학관 제2전시실에 재현된 서재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수영 문학관 제2전시실에 재현된 서재 [사진 = 김보관 기자]

시인은 평소 남들이 귀중히 여기는, 그래서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들을 못마땅해해 생전 아내 김현경 여사가 구매한 가구를 지겨워했다. 술에 취한 김수영 시인은 돌을 메고 와 가구에 달려들 정도였다. 하지만 문학관에 진열된 고풍스러운 긴 테이블에서 그는 에세이와 번역의 구역을 나눠 집필하는 등 실상 요긴하게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테이블도 많으면
걸린다 테이블 밑에 가로질러놓은
엮음대가 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은
미제 자기(磁器) 스탠드가 울린다

(중략)

닿고 닿아지고 걸리고 걸려지고
모서리뿐인 형식뿐인 격식뿐인
관청을 우리집은 닮아가고 있다
철조말을 우리집은 닮아가고 있다
바닥이 없는 집이 되고 있다 소리만
남은 집이 되고 있다 모서리만 남은
돌음길만 남은 난삽한 집으로
기꺼이 기꺼이 변해 가고 있다.

서재 옆에는 관련한 사유를 연상할 수 있는 시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의 전문이, 테이블 너머의 액자에는 ‘상주사심’이라는 김수영 시인의 생전 좌우명이 걸려있다. 이는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비극적 정서와 그 근간을 파악할 수 있다. 

김수영 문학관 제1전시실 내부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수영 문학관 제1전시실 내부 [사진 = 김보관 기자]

우리는 김수영 문학관의 사례를 통해 문학 전시가 어떤 방식으로 관객에게 가닿는지를 확인해보았다. 특정 작가 또는 문학 작품의 코어 독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에는 단순한 실자료의 나열만으로도 충분한 이입을 도출할 수 있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큐레이터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이는 비단 추가 설명의 기술에서 나아가 전시의 기획과 구성, 공간의 활용까지도 포괄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문학 역사는 물론이고 한국 문학사의 무수한 작가들을 다루게 될 국립한국문학관에서는 관련한 고민이 더욱 치열할 것으로 예상한다. 문학이 가진 힘이 줄어들고 있는 근래 작가의 위상과 인지도는 예전과 같지 않다. 

더이상 ‘김수영’을 기억하는 이들이 없는 세상에서의 문학관은 어때야 할까? 문학의 자리가 좁아진 지금, 문학관은 ‘문학’과 ‘작가’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각 작가의 생애와 작품, 관련 자료를 해석하고 재배열하는 전략적 방식에 대한 고민 속에서 또 하나의 당면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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