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관련 긴급 현안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 [사진 = 김보관 기자]](/news/photo/202008/75470_48039_5636.jpg)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20일 대한출판문화협회 대강당에서 도서정가제 관련 긴급 현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좌장을 맡은 송성호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는 그간의 경과를 보고한 뒤 하루 전 30여 개 단체와 함께 출범한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를 소개했다.
현장에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 1인출판협동조합 박옥균 이사장,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조진석 사무국장,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안찬수 사무처장, 한국웹소설협회 김환철 회장, 한국작가회의 신현수 사무총장이 자리해 각자 발언을 이어갔다.
토론에 앞서 윤철호 회장은 “이번 토론회는 더욱 많은 분과 함께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는 말과 함께 “당면한 현안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동시에 결의를 다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인사를 전했다.
![발언 중인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조진석 사무국장 [사진 = 김보관 기자]](/news/photo/202008/75470_48040_575.jpg)
가장 눈여겨볼 만한 발언은 출판 산업 현장을 겪은 이들의 실질적 고충에 대한 부분이었다. 2009년부터 책방을 운영한 전국동네책방네트워트 조진석 사무국장은 2014년 이전의 법 제도를 ‘정글’에 비유했다. 당시에는 10% 직접할인에 10% 간접할인이 허용되었으며 18개월 이상 도서는 무한 할인이 가능했다.
조진석 사무국장은 “그때 인터넷 서점에는 반값으로 할인하는 도서가 있었다. 출판사는 50%가 할인된 가격보다 더욱 낮은 금액으로 책을 공급한 것이다. 이에 출판사에 같은 공급률을 요청하자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인터넷 서점에서 사서 팔아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공급률이 높은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 10% 할인에 10% 적립을 하면 임대료, 인건비, 세금을 부담할 수 없어 이윤이 남지 않았다는 후일담이다.
이후 10% 직접할인과 5% 간접할인이 허용되는 제도로 바뀌었지만, 부분적인 한계가 있다. 조진석 사무국장은 “온라인 서점이 제공하는 무료배송 금액을 환산하면 도서 가격의 20%가량이 추가 할인된 것과 같다. 더욱이 새로운 강자 ‘굿즈’가 등장하며 도서를 사면 굿즈를 준다는 사실이 상식과 같이 자리 잡았다.”는 말로 동네책방의 부담을 호소했다.
조진석 사무국장은 이어 “지금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017년 도서정가제 개정 시기에 앞서 2016년 11월 발표된 “개정도서정가제 영향 평가 및 향후 방향 연구보고서”를 들어 보였다. 2020년 재개정 시한에 맞춰 작년 동일한 보고서가 나왔어야 하는데,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도 보고서가 공개되거나 온라인상에 탑재되지 않은 연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7월 15일 진행된 도서정가제 공개토론회도 언급됐다. 하루 전날인 7월 14일 문체부 보도자료로 공지된 해당 토론회는 이해 관계자들에게 제대로 된 안내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진석 사무국장은 “이후 개최된 전자책과의 간담회도 비공개로 진행됐다. 언론 취재도 관련자들과의 정보공유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작금의 상황에 의문을 표했다.
나아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문체부의 안일한 발상으로 지금과 같은 사태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도서정가제 논의에서도 네이버와 카카오에 로비를 받은 게 아니라면 지금과 같은 태도를 이어가선 안 된다. 문화 발전에 의지 없이 그때그때 사업을 쪼개고 예산을 사용해 국민을 통제하려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날 선 발언을 이어갔다.
![1인출판협동조합 박옥균 이사장 [사진 = 김보관 기자]](/news/photo/202008/75470_48041_5735.jpg)
1인출판협동조합 박옥균 이사장의 경우에는 출판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출판 산업이 최대 변곡점의 시기를 맞았다.”는 말과 함께 온라인 서점이 10년 만에 2배가 넘는 성장을 할 때 제자리에 머무는 출판사 상위 업체들의 매출과 웹 콘텐츠 산업의 폭박적 증가, 갑-을 관계로 재편되어 가는 유통업체와 출판사의 위치 등을 언급했다. 박옥균 이사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출판사가 웹 콘텐츠 기획력을 갖추고 4차 산업혁명에서 비롯된 기술적 도입에 나서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도서정가제와 관련해서는 “여러 논의가 헤매고 있는 이유는 프레임을 할인율에 잡아서이다. 원래의 목적인 ‘공정한 유통 문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위해 ‘공급률’에 대한 안전장치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표준 공급률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의 제도를 소개하는 동시에 그간 ‘할인’이 아닌 ‘표준화된 공급률’을 놓고 싸워야 했다고 첨언했다.
박옥균 이사장은 각 출판 산업 주체들의 책임을 정리하며 출판사의 경우 공유화된 정보 플랫폼의 구축을, 서점은 투명한 회계 거래와 유통 시스템의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대로 간다면 점점 대형 출판사의 이익마저도 줄어들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전한 박옥균 이사장은 ‘출판계의 결합’을 중요시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온·오프라인 공공 플랫폼을 마련하고 ‘빅데이터 정보 유통 서버’를 구축해 독자의 편익과 접근성을 증진하는 내용이 제시됐다.
또한, 박옥균 이사장은 “지금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도서정가제 논의에서 존재감조차 없을 정도로 전략도 내용도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갈팡질팡하다가 출판 산업 주체들과 대립하고 있다.”며 공공기관에서 출판 산업에 관한 전문성과 전략 비전을 보유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한기호 소장이 “출판산업의 진흥을 위해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없어져야 한다.”는 표현으로 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비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한국웹소설협회 김환철 회장 [사진 = 김보관 기자]](/news/photo/202008/75470_48042_589.jpg)
도서정가제의 필요성과 강화의 의견을 중점적으로 전한 이들도 있다. 한국웹소설협회 김환철 회장의 발언에서는 지난해 20만 명의 동의를 얻는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을 반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20만 명의 인원이 과연 도서정가제를 이해하고 서명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운을 뗀 김환철 회장은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여러 우려는 사실과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도서정가제가 작은 서점을 망쳤다는 이야기와 반대로 많은 서점이 도서정가제를 지지한다.”며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서점의 감소율이 오히려 줄어들었으며 독립서점은 2015년 97곳에서 2020년 650곳으로 증가했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더불어 “독서인구의 감소가 도서정가제 때문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독서인구가 감소한 가장 큰 요인으로 ‘환경변화’를 꼽았다. 여유 있는 시간이 줄고 독서 습관이 형성되지 않은 데에는 유튜브의 발달 등 다양한 콘텐츠의 영향이 크다는 주장이다. 김환철 회장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유튜브를 일주일에 5일 이상 사용한다’는 응답자는 2016년 24.1%에서 2018년 38%로 증가했다.
김환철 회장은 이외에도 도서정가제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관점을 전면으로 반박하며 ‘출판문화생태계 발전을 위한 도서정가제 개선안 토론회’에서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에서 저자, 서점, 도서관, 도서구매자 모두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우세했음을 밝혔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안찬수 사무처장 [사진 = 김보관 기자]](/news/photo/202008/75470_48043_5845.jpg)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안찬수 사무처장은 현행 도서정가제에서 ‘독서 진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하여 정가의 15% 이내에서 가격할인과 경제상의 이익을 자유롭게 조합하여 판매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제22조 5항 전체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판산업진흥법을 둘러싼 논의의 첫 번째 원칙은 독자”라고 방점을 찍은 그는 “책 읽는 사람들의 편익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책값이 싸다고 독자의 편익이 생기는 게 아니다.”며 “가장 핵심은 관심이 생기는 문제가 있을 때, 관련 정보를 담은 도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안찬수 사무처장은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썼을 때 누구든 출판이 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을 이었다.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를 예시로 든 그는 영화관에 똑같은 영화만 걸려있다면 결국 시장의 다양성 보장은 물론이고 소비자들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 아래에서는 ‘잘 팔리는 책’만 출간된다는 게 안찬수 사무처장의 시각이다.
그는 “특정한 분야 또는 특정 단체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편익, 소비자의 편익, 독자의 편익이 정말 증대되었는가 하는 관점으로 평가할 때 만이 도서정가제를 더 진전시킬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출판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할인율을 전면 제한해야 한다는 논지를 지속했다.
뉴스페이퍼와의 취재에서 안찬수 사무처장은 “할인율이 올라간다고 해도 생산자가 가격을 정하는 구조이므로 최종 도서 구매 가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공급률, 도서 가격 책정 등에 관해 업계의 합의나 논의가 필요하다.”며 “언제든 책을 출판할 수 있고 독자들이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외에도 한국작가회의 신현수 사무총장이 한시적 지원 사업 외에 “작가와 출판사와 서점을 지속해서 돕는 정책이 도서정가제”라고 이야기하며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라는 이름처럼 출판은 문화이기도 하고 산업이기도 하지만, 문화 쪽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나마 있는 현행 도서정가제마저 흔들린다면 출판계는 천박한 정글자본주의가 횡행해 결국 거대한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출판사만이 남고 모두 공멸할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도서정가제 관련 긴급 현안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 [사진 = 김보관 기자]](/news/photo/202008/75470_48044_595.jpg)
2부에서 진행된 “도서정가제 논란과 출판·문화계의 미래” 토론에서는 독자와의 소통이 한층 강조됐다. 1인출판협동조합 박옥균 이사장은 “중요한 것은 독자다. 책의 발견성을 확보해야 한다. 동네책방은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등 열심히 발견성을 확보하고 있지만, 독과점에 가까운 온라인 서점이 하지 않는 것이 이 부분이다.”라며 빅데이터를 이용한 다양한 도서 추천 알고리즘을 이야기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조진석 사무국장은 “민관협의체가 있었다, 회의하고 있다는 풍문만 듣고 문서상의 합의 내용은 최근에 처음 보았다. 16차례 회의 과정과 논의 내용 등에 대한 백서가 나와야 한다. 업계 내 관계자와 소통이 너무 안 된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더했다.
더욱이 “독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지금 토론회 생중계를 보는 인원은 60명 남짓이다. 현장에서도 비슷한 연령대의 4, 50대 남성들만이 모여 이야기를 한다.”며 독자의 자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촉구했다. 조진석 사무국장은 “출판계가 주장하는 바를 기자회견처럼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독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그간의 한계와 개선 방향을 짚었다.
해당 발언에 힘을 실은 한국웹소설협회 김환철 회장은 “독자들이 화가 나는 이유는 할인을 더 할 수 있는데 안 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렇지 않은 상황을 알리고 공감대를 끌어내야 한다. 독자들도 작가와 출판사가 망하는 걸 보고 싶진 않을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독자와 업계가 같은 틀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내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이야기 공간 필요하다. 소통의 기회가 더 많이 열려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책은 상품이 아니라 문화다.’라는 의견이 모이는 한편 내외부적 한계와 미래 방향성이 논의됐다. 토론회 말미 대한출판문화협회 송상호 상무이사는 “청와대와 문체부에 의견을 모아 요구한다. 지금 우리들의 목소리를 듣고 당장 밀실 행정 중단하라.”는 말과 함께 “도서정가제 협의안대로 집행하지 않을 시 그 어떤 행동도 불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